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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3. 2021

1화 애인 있는 남자에게 눈길이 가다

음유시인과 암호해독가의 전쟁

그에게 연락이 오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동시에 빠르게 식었다.

심장이 빠르게 뛴 이유는 단순했다. 반 년 전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호감을 느꼈었고, 그 호감이 여전히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심장이 빠르게 식은 이유 또한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사내 모든 직원이 함께 한 2016년 연말 송년회였다.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두 달이 안 된 신입이었고 그는 3년차 선배였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그에게 빠질 것임을 알았다. ‘첫 눈에 반하다’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그 안에는 어떠한 논리적인 이유가 존재할 수 없으니 느낌이나 운명처럼 실존하는지 의심스러운 단어들이 논리의 부재를 메꾼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낭만적이다. 느낌적이고 운명적이라니!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신학자 터툴리안은 신은 비합리적이기에 믿는다고 말했다. 나에게 사랑은 종교와 비슷하니 나는 이 종교의 꽤나 열렬한 신도다. 터툴리안식으로 말하자면 사랑은 비논리적이기 때문에 낭만적이다. 


그와 나는 팀이 다르지만 담당 업무가 비슷했다. 팀별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그의 번호를 얻었다. 그에게 처음 카톡이 왔던 순간은 정말로 행복했다. 우리는 한 달 가량 카톡을 주고받았다. 나는 그를 숭배하였으니 그가 보내는 카톡은 나에게 성물과도 같았다. 나는 그가 쓰는 이모티콘을 다른 사람이 쓸 때면 기분이 좋지 않았고 그가 쓰는 특유의 말투를 좋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점점 그에게서 연락이 뜸해졌다. 나는 다급해졌다. 그에게 좀 더 확실하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진전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는 거절을 하며 선을 그었다. 나는 짧은 혼란의 시기를 보냈다. 사랑에 빠진 순간 상대방은 수많은 비유와 상징을 뿌리는 음유시인으로 보이고, 자신은 암호 해독가가 된다. 그의 연락이 없어지자 밀당을 못한 나를 책망하기도, 그가 보내는 단답에 숨은 뜻이 없는지를 찾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집착과 애정의 차이를 스스로에게 되뇌는 정도가 되어서야 나는 혼자서 너무 설레발을 쳤다는 걸 깨달았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때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었다고 한다. 농구 동아리 매니저로 몸매가 좋은 여자라고 했다. 아마도 그는 나와 그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그녀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다. 그는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구나. 그걸 인정하자 마음 한편이 외로웠지만, 모든 짝사랑의 결말이 아름다울 수 없다는 걸 26살의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차라리 시작도 못한 열병에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아쉬움을 접고 새로 시작한 회사 생활에 몰두하려 애썼다.




그리고 반년이 지나 나는 그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다. 그 제안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애인이 있는 사람과 만나는 건 부도덕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 그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떠올랐다. 애인이 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면 안 되겠지만 그저 밥 한 끼 먹는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하고 그는 직장 동료이기도 하다. 손을 잡는 것도 아니고 밥을 같이 먹자는 약속인데 내가 그를 만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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