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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3. 2021

2화 그 남자의 애인에게 전화를 받다

노란 얼굴을 가진 숙취해소제와 꽃차

그가 식사를 제안하기 한 달 전, 회사워크숍에서 그를 만났었다. 그와 나는 서로 다른 건물에 속했었고 그 때까지 우연이라도 그를 볼 일이 없었다. 워크숍은 지방에서 이틀 동안 진행되었었다. 다섯 달 만에 본 그는 여전히 빛이 났었다. 아마도 그가 싱글이었다면 나의 심장은 체면도 없이 주책없게 쿵쾅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때 우리는 기회가 되면 사적으로 식사나 한 번 하자는 말을 나눴었다.


워크숍 첫 날, 그는 괜한 소문이 싫다며 회사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나에게 숙취해소제를 선물했다. 노란색 얼굴을 가진 귀여운 숙취해소제에 나도 미소가 생겼다. 한 때 내가 마음이 있었고 둘이서 연락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둘 사이에 크게 썸이라고 부를만한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으니 이제 나와는 정말 편한 직장동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기념품으로 샀던 꽃차를 돌아가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에게 답례로 건넸다. 


워크숍에서 돌아온 뒤 나는 그와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여자친구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너무 자기를 구속한다는 이유였고 곧 헤어질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심장이 뛰었다. 그가 따라주는 술을 받고 잔을 비우며, 나는 아직 내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빨리 끝을 내는 것이 좋을 거라는 말을 했다. 


집에 돌아와 나는 마음이 설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설렘이 우스웠다. 나는 아직 그와 몇 번 보지도 못한 사이다. 아직 그에게 많은 확신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그가 여자친구와 헤어질 거라는 말에 왜 내 마음이 움직이는 걸까. 나는 지금 그가 나의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채우지 못함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를 좋아한다면, 지금 아슬아슬하게 가득 차있는 내 마음의 댐이 무너져 버릴 것도 안다. 그가 나를 좋아했으면, 그 설렘을 담아서 나는 오랜만에 기타를 찾았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의 여자친구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앳된 목소리로 나에게 짜증을 냈다. 왜 여친이 있는 사람과 밥을 먹냐고.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얘졌고 당황해선 말을 제대로 못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라고 나를 다그치고 끊었다. 전화를 끊고도 나는 한 동안 멍했다. 나의 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을까. 그가 알려준 것일까. 그는 왜 알려준 것인가. 나와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혼란스러운 생각은 마음속에 숨기고 나는 그저 그와 별 일이 없었다고, 앞으로 그를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그의 여자친구나, 그가 아닌 나에게 화가 났다. 나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 그한테 마음이 갔던 걸까. 부끄럽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이 사람과는 인연이 아닌 거라고. 나는 종이접기하듯 나의 마음을 반으로, 또 반으로 꾹꾹 눌러 접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3_E3sGffA

그 남자를 생각하며 만든 첫번째곡, you love me


https://youtu.be/BQN3cObmx2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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