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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5. 2021

5화 안정기의 연애

연인 같은 친구, 친구 같은 연인

결혼으로 이어지는 몇몇의 연애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연애의 끝은 이별이다. 따라서 연애의 종착은 이별일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애를 할 수 있는 건 그 끝을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별을 예상하면서도 연애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와 연애를 한지 두 달이 막 되어갈 무렵, 그는 2년 동안 해외봉사를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오랫동안 꿈이었는데 마침 지원서를 받고 있다고 말이다. 기가 막혔었다. 이제 막 50일 정도 사귀고 700일을 기다려 달라는 것일까, 헤어지자는 말을 돌려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남자는 왜 나와 연애를 했던 것일까 의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연애 초엔 연인 같은 친구로, 또한 친구 같은 연인으로 지냈다. 그는 이전 연애의 구속에서 지쳐했고, 나 또한 그를 만날 때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연애가 좋다고 밝혔다. 그래서 우리는 편한 연인을 모토로 했고, 나는 서로에게서 자유로운 그 관계가 이상적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해외봉사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연인과 친구 사이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연인과의 마찰을 꺼려했으나 서로가 같은 길을 걷기 위해선 상대방과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는 그와 미래를 같이 하고 싶었다. 나는 그에게 날 선택할 것을 요구했고, 그는 해외봉사를 포기했다. 그 때부터 나는 그와의 만남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해외봉사를 포기한 이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했다. 아이는 딸이 좋다. 자긴 딸 바보가 될 것이다. 한 달 전까지 2년 해외봉사를 간다던 사람이지 않나. 그와 나는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었고 그의 말을 그저 농담과도 같이 여겼다. 그가 나와 사귄 것이 전 여자친구를 잊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고, 지금 결혼을 이야기하는 건 해외봉사를 포기하면서 반대급부로 떠오르는 충동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에 소극적이었고 조심스러웠다.


그러던 중 하루는 그가 술에 잔뜩 취해서 나에게 자신과 결혼이 하기 싫은 거냐며 눈물을 보였었다. 그를 보면서 나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정말 나와의 연애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혹시 내가 결혼이 무서워 그의 마음에 진지하게 답을 못하는 건 아닐까. 나는 그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따져보았다. 차분하게 그의 수입과 나의 수입을 계산하고 미래를 설계해보았다. 집에서 머물던 시간보다 그의 자취방에 머물던 시간이 길어진 것은 아마 그때쯤이었다. 


우리의 연애가 삼 년째에 접어들면서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사이 2번의 해외여행을 더 다녀왔고, 스무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세 개의 커플링을 맞췄고, 우리의 옷장엔 계절별로 커플 옷이 생겼다. 연애 초에 있던 다툼이 사라졌고 그에 대한 믿음이 강해졌다. 나는 우리의 기념일이면 금을 한 돈씩 선물했다. 매년 모아서 우리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선물로 주기 위해서였다. 그와 나는 천천히 결혼을 준비했다. 웨딩박람회를 다녀오고, 신혼부부 주택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가 나에게 이별을 고한 건, 우리가 신청한 신혼부부 주택 발표가 1주일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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