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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서관 옆자리 Mar 26. 2021

7화 헤어짐과 붙잡음, 그리고...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헤어지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 자기 집에 두고 간 내 물건이 있으니 찾으러 올 거냐며 내가 잊고 있던 몇 권의 책 이름을 말했다. 나는 드디어 내 믿음이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그와 헤어지는 순간에도 헤어짐을 상상할 수도 없었으니. 한 달 만에 우리는 어색하게 만났다. 이야기를 나누고 익숙한 식당에 들어갔다. 한참을 이야기 나누다 나는 그에게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 앞에서 그 사이 소개팅을 했으며 다음 주면 그 사람에게 고백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내가 벌써 모든 걸 다 잊고 괜찮게 지내는 것 같아서 연락을 했다는 말을 뱉었다. 나는 지난 3년의 연애를 통해서 그가 맺고 끊음에 미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별은 그와 내가 같이 했어도 그 무게는 다를 거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이별이, 나와의 사랑이 이토록이나 가벼울 줄은 몰랐다. 


그는 이별한지 한 달도 안 돼서 명품시계로 카톡 프로필 배경을 바꾸고 상태명에 하트를 걸어놓았었다. 나는 설마하면서도, 당연히 그의 형제가 준 선물이려니 했었다. 우리의 3년이 그 정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으니. 그런데 내 앞에서 다른 여자가 준 선물이라고 말하는 그가 미웠다. 코로나 시국에도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데 2주 뒤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넌 참 좋겠구나, 비꼬고도 싶었다. 그리고 도대체 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다른 여자를 만나기 전에 나를 한 번 더 저울질하고 싶었을까. 그 사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와 3년을 보낸 내가 아직도 그한테는 저울질의 대상인 것일까. 


슬프게도 나는 그런 그를 다시 붙잡았다. 정말로 우습지만 나는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를 벌써 잊었다는 것이 가슴 아프고, 도대체 나를 왜 보자고 연락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의 편에 서서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한 마디 변명조차 없는 그인데, 왜 난 그를 대신해서 변명하고 있는 것일까. 미워하고 욕하고 싶은데, 원망하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은데, 왜 나는 그를 계속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까. 


잘못이 없다 말하는 그를 잡기 위해서 내가 모든 잘못을 뒤집어 써야 했다. 그러자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내 지인들을 붙잡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날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고 회사에 나가서 실수를 할까 매일 날 추슬렀다. 난생 처음 심리 상담을 받아봤고 처음 보는 상담사 앞에서 울음이 터졌었다. 그렇게 울고 나니 조금 개운해지기도 했지만 고통이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나는 밤보다 그 뒤에 찾아오는 아침이 더 무서웠다. 정신이 깨있는 동안에는 나를 달래고 어르고 어떻게든 붙들어 맸지만, 잠이 들면 나는 무방비의 상태가 되어 너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나를 아파했다. 너를 보내고 세 달간 단 하루도 편히 자본 적이 없었다. 새벽 4시면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일어났고, 식이와 운동으로도 빠지지 않던 몸무게가 한 달 만에 이십대 중반의 몸무게가 되었다. 


미친 사람처럼 매일 무언가에 매달렸다. 글을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만든 노래에 내가 눈물을 쏟아내봤다. 가사 속에 나는 너라는 퍼즐에 맞추기 위해서 내 살을 깎고 있었고 그 모습이 너무 비참했다. 그리고 정말 절절하게 사랑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한 번 오열했다. 40분을 쉬지 않고 방 안에서 울던 그 날, 서러운 울음이 끝나자 흙탕물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던 내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바탕 울고 나니 그 동안 하지 보지 못했던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와 인연이라 믿었는데 만약 그게 아니라면? 자꾸만 지금 내가 겪는 이별에서 그의 전여자친구가 겹쳐 보였다.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리고 그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평소에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택배로 받을 수 있는 건축가를 위한 선물세트를 판매하는 링크를 보냈고, 좋은 정보가 있어 공유한다며 잘 지내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부디, 제발 날 매몰차게 거절하길 바랐다. 그런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잠시 뒤에 답장이 왔다. 그는 나에게 그 선물세트는 별로라며 뜬금없이 나에게 좋은 건축전시회가 있다 말했다. 곧이어 이런 전시회는 건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과 가야 즐거울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난가?’ 라고 나에게 물음표를 던졌다. 그 물음표에 나의 심장이 뛰었다. 그러나 이 뛰는 심장은 그와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떨림이 아니었다. 내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에 느끼는 충격, 그리고 슬픔에 의한 떨림이었다. 그는 멍청한 내가 혹시라도 헷갈릴까봐 차고 넘치게 확신을 시켜주었다. 그렇지만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정확히 확인을 하기 위해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기지 않은 건가 물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그를 놓아야함을 깨달았다. 나는 그 동안 눈먼 장님으로 그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있었지만, 삼 년 만에 그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우리의 만남과 이별이 의미가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과연 그가 우리의 이별을 슬퍼하긴 했을까. 그에게 나는 저울질의 대상이고 우리의 연애도 그저 지나간 시간일 것이다. 지난 삼 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만 소중했다. 나의 이별이 이렇게 아픈 까닭은 그가 나의 아픔에 대한 미안함도, 이별 후에 대한 배려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허탈감에 쓰러지고 싶었다. 나의 쓰러짐은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수고했다고. 이제는 쉬어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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