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사랑

박천서

by 도서관 옆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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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희는 눈보라가 치는 겨울에 태어났다.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의 입술은 하얀 도자기 위에 매화 꽃을 그린 듯 얇고 붉었다. 아이는 고작 세네살이 되었을 때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해더니 일곱살이 되었을 무렵엔 동네에 아름다운 소녀로 부러움을 샀다. 열 네살이 되었을 땐 보는 이로 하여금 탄식이 터질만한 미색을 자랑했으니 부모로 하여금 딸을 밖에 내보내는 일이 걱정이 되게 만들었다. 다행히 설희는 큰 탈 없이, 또한 단 한 번의 역변도 없이 스무살이 되었다.


2.

대학에 들어간 설희에겐 친구가 적었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은 손에 닿기에 멀어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희를 가까이 하지 못했다. 그녀의 높은 콧대와 서리가 깃든 듯한 눈매가 차가운 인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눈보라 치는 겨울에 태어난 아이는 화롯불 같은 심장을 가지기 마련이다. 너무도 뜨거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함박눈 같이 차가운 태도로 자신을 덮고 있을 뿐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신의 하얀 생에 전체가 녹아내릴 수가 있기 때문에 그녀는 머뭇거리고 서성거렸다. 단 한 번, 자신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말이다.


3.

TV 속 뉴스 앵커는 내일이면 올 겨울 가장 많은 눈이 내릴 거라고 말하고 있다. 기상청에선 매년 올 여름 가장 많은 비, 올 겨울 가장 많은 눈을 이야기한다. 때문에 그 과장에 속지 않을 때도 되었지만 설희는 괜한 기대감을 품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겨울에 한 가지 미신 같은 믿음을 품고 있다. 흰 눈이 내릴 때 자신을 따스하게 녹여줄 겨울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옷장에서 붉은 털장갑과 하얀 코트를 꺼내본다. 그녀는 내일 약속도 없이 건대 앞 로데오 거리를 돌아다닐 생각이다. 카페에서 작설차를 마실 수도 있고, 중고서점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다면 아마 그저 거리를 돌아다니며 눈을 맞을 것이다. 설희는 내일을 생각하며 괜한 기대감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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