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를 한 명의 예술가가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어떻게 한 편의 예술로 승화시키는지 탐구하는 메타 영화 혹은 교육 영화로만 받아들인다면 생각보다 진부하고 심심한 작품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애초부터 그런 고귀한 예술성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의 가장 큰 관심은 관객을 웃기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살아있는 육체의 액티비티를 거의 절실한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역동적인 코미디 영화다.
작중 영화감독 히구라시는 만족스럽지 않은 연기를 펼친 여배우에게 “표현하는 건 진짜가 아니잖아. 표현하는 게 아니야, 저절로 나와야지”라며 화를 낸다. 본능의 솔직한 발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공표하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화면을 뚫고 나올 듯한 그의 야수적인 호소는 날것 그대로 움직이는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이성과 논리의 배제. 그리고 본능의 세계로의 초대.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여기에 진짜와 가짜의 대립이라는 한 가지 구별을 첨가한다. 히구라시는 ‘진짜’ 무서운 곳을 로케이션 삼아 시체(가짜)에 본능만 살아 있도록 개조한 좀비(진짜)를 소환시켜 이에 즉각 반응하는 인간 본능의 순수한 감정과 반사적인 움직임을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 담아내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 처절한 리액션은 종국에 ‘영화라는 가짜 세계를 위한 현실(진짜)의 처절한 움직임’이라는 3막의 유쾌한 반란에 성실히 복무한다(삼류 좀비 영화를 1막, 영화 준비 과정을 2막, 촬영장 비하인드 스토리를 3막으로 구분하였다). 앞서 서술한 “표현하는 건 진짜가 아니잖아. 표현하는 게 아니야, 저절로 나와야지”라는 1막의 대사는 3막에 이르러 안약으로 눈물 연기를 대신하고 토사물 뒤집어쓰는 연기는 할 수 없다는 가증스런 아이돌 여배우에게 일갈하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코믹 대사로 바뀐다.
왜 좀비물일까
진짜라는 게 과연 존재할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무엇일까. 어떤 관객들은 3막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러한 철학적 물음에 자문자답하기 바쁠지 모른다(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고 그 둘 사이의 무의미를 밝혀내는 것이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진짜 목적이었다면 굳이 저예산이라는 제약 속에 좀비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오히려 좀비 영화 특유의 역동성과 기괴함은 그 진실에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이 아닐까. 그는 인터뷰에서 좀비 영화를 택한 이유 중 하나가 좀비물을 만들 때 필요한 여러 특수 장치를 작업하기 위해 허겁지겁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생방송 원 커트’ 미션까지 주어진다면 그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더 처절할 것이다.
스탭들은 생방송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흡사 한 마리의 야생 동물처럼 움직인다. 그들은 방송 중단 직전 시나리오를 급하게 수정하는가 하면 술에 취한 촬영 감독 역의 배우를 강제로 연기시키고, 대변을 보는 배우 옆에서 분장을 하고, 여배우에게 도끼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좀비 다리를 한 채 영화에 출연하고, 4m 항공 촬영을 위해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다. 그야말로 동물적인 반사 신경과 임기응변, 순발력이 아닐 수 없다. 이 간절한 역동성은 이미 1막에서 보았던 하찮은 삼류 영화에 기여하기 위함이라는 아이러니로서 종국에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좀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상당히 즐겁게 작업하는 것을 봤어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스탭들의 처절한 육체노동과 신난 얼굴 사이의 부조화 속에서 코미디를 찾아낸다. 여기서 진짜와 가짜의 의미를 되묻고 그 경계를 탐구하며 종국에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속으로 빠져들 필요는 구태여 없다. 감독은 이러한 장치들을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모션만 취할 뿐, 이에 심취해 있는 지적인 관객들에게 유쾌한 웃음으로 그들의 측면을 강타한다. 어쩌면 감독은 이미 진짜와 가짜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간소하게 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물적인 감각에 의해 저절로 몸짓이 튀어나오는 스탭들의 움직임은 본성의 작업, 즉 ‘진짜’ 세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 허구의 세계(영화)를 만들기 위한 진짜 세계 속에 사는 사람들의 처절한 본성이 바로 영화라는 것. 때문에 영화는 코미디라는 것. 감독은 코미디가 영화의, 더 나아가 세상의 밑바탕이 되는 본질이라고 말한다.
37분의 원 커트 영화의 의미
아무리 후반부에 코미디를 집중시켜 한바탕 놀아볼 계획을 세웠더라도 전체 러닝타임의 1/3이 넘는 37분여의 시간 동안 의문투성이의 삼류 좀비 영화를 보여주는 것은 큰 모험이다. 만일 관객이 그 전에 영화 보기를 중단한다면 그것은 감독에겐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재앙일 것이다(실제로 많은 관객들이 37분을 넘기지 못하고 영화 보기를 중단하지 않았을까). 이런 부담을 안고 기어이 37분짜리 삼류 좀비 영화를 계획한 감독에겐 어떤 생각이 숨어 있었을까.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20대 초반, 수천만 원 상당의 사기를 당하여 노숙자 생활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때 그는 자신의 실패담과 노숙자 생활에 대한 기록을 블로그에 남겼었는데, 사람들이 그 글을 보며 재밌어 하고 좋아하던 것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내게는 비극일 수 있으나 시점을 달리 해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재미있게 비쳐진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에게 희극이란 아무런 고통과 희생이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 관점을 달리했을 때, 비극이 희극이 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그의 희극론이며 영화 제작의 동력이다.
연이어 방송 사고가 터지자 스탭들은 스스로 망했다고 자책하며 불안에 떨지만 이를 모니터링하는 방송국 관계자들은 성공적인 방송이라며 흥분한다. 3막의 폭발적인 유희는 1막의 비극적인 결과물인 삼류 좀비 영화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1막의 보잘 것 없는 영화가 길면 길수록 3막의 희극도 길 것이며, 1막에 제시되는 영화의 수준이 참담할수록 3막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유쾌하고 재밌을 것이다. 비극은 곧 희극이고 희극은 곧 비극이며, 이 둘 사이의 불균질함에서 우리는 웃음과 희망을 얻는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비극과 희극 사이에는 관점을 바꿀 하나의 발자국, 즉 3인칭으로의 한 번의 인칭 변화가 필요할 뿐이라는 통찰을 일러 준다(영화에서 인칭의 변화는 새로운 카메라로의 전환으로서 이뤄진다). 그런 점에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누구보다 열렬한 찰리 채플린 신봉자다. 다만, 캐릭터의 아이러니보다 상황의 아이러니에 더 주목한다는 점에서 코미디의 작동 방식은 버스터 키튼에 더 가깝다. 말하자면,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채플린적인 세계에서 키튼적인 코미디를 선보이는 육체파 희극 감독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뛰어난 희극 감독의 출발을 알리는 탁월한 컬트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