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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17. 2023

<고모라>, 범죄자의 시신에도 존엄은 있는가


범죄자의 시신에도 존엄은 있는가


<시티 오브 갓>, 그리고 <엘리트 스쿼드>를 보고 나는 훗날 가보고 싶은 해외여행 리스트에서 브라질을 과감히 누락하였다. 그리고 지금, 그 리스트에서 정확하게 나폴리가 자취를 감추었다(이 영화의 배경이 나폴리 북부 스캄피아 지역이다). 혹여 당신은 영화 한 편 본 것으로 지나치게 호들갑 떤다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모라>를 진정으로 제대로 본 관객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을 비웃을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미학적 특징, 즉 거의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사실적인 재현 때문일 것이다. 마테오 가로네는 실재하는 빈민촌을 배경으로 시종일관 인물들을 따라다니며 찍었다. 다만, 여기에 핸드헬드의 거친 움직임이나 떨림은 없다. 안정적인 스테디 캠 촬영은 소재의 뜨거움을 차갑게 가라앉힌다. 가장 흥미로운 건 뚜렷한 인과 관계 없이 전개되는 내러티브다. 영화는 단일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고 다섯 가지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전개한다. 이 이야기들 사이에 특정 사건이 공유되거나 연관되는 경우는 드물다. 영화를 보다 보면, 독립적인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를 교차 편집한 상태로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특히, <고모라>의 세계에서 그것이 감정이든 논리이든 과장은 죄악과도 같다. 이 세계는 과장이란 것이 완전히 말살된 냉정하고 엄숙한 세계이다. 만약 이것을 장르적 스타일이나 엄격한 형식주의의 산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위의 형식적 특징들은 오로지 사실적인 재현을 위한 운명적 선택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전 세계 최대 규모의 마약을 거래하고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내는 마피아 조직 ‘카모라’에 관한 실재하는 폭력과 폐해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카모라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될 수밖에 없는 빈민촌의 비극적 운명을 보고 있노라면 이 암담한 실태를 조악한 장르적 재미로 환원하는 건 빈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마피아의 실재적 폭력을 미화하는, 영화라는 방어막 뒤에서 저지르는 비겁한 폭력 행위와 다를 것 없이 느껴진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사실적인 영화다. 그렇기에 한 가지 논쟁적인 질문을 낳는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태닝샵에서의 살해 장면을 보여준다. 네 명의 남자가 차례로 총격을 당해 쓰러지면 빠른 템포의 음악은 마치 이를 즐기기라도 하듯 고조된다. 그리고 논쟁은 점화된다. 살인범들이 태닝샵을 떠나고 나면 타이틀이 올라온다. 사건은 일단락된 듯 보이는데, 타이틀이 사라지자마자 카메라는 몸에 총알구멍이 뚫린 채 죽어 있는 나체의 시신을 구태여 다시 잡는다. 이 끔찍한 형상들은 전부 부감으로 내려 보이듯 찍혔거나, 구멍이 뚫린 채 숙여 있는 얼굴을 담기 위해 단 한 번 앙각으로 찍혔다. 이때 적나라하게 보이는 첫 번째 시신과 세 번째 시신은 클로즈업과 롱 쇼트, 두 번에 걸쳐 전시된다. 축 처진 시신은 참으로 남루하고 초라하다. 가장 충격적인 이미지는 마지막 시신 쇼트다. 이 쇼트에서 카메라는 피해자의 인격을 놀리고 비웃기라도 하듯 그가 죽기 직전까지 손질 받고 있었던 손톱에 초점을 맞춘 채 접사했고 나머지 화면은 흐릿하게 처리하였다. 어떤 사연도, 관계도, 이름도, 국적도, 직업도 설명되지 않은 첫 장면에서 그들은 무참히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폭력적으로 희롱 당한다. 영화 내에서 직접 밝혀지진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들의 정체가 카모라 조직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첫 장면에 대해 즉각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한 범죄자들의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죽음의 이미지, 나체의 구멍 뚫린 시신 이미지는 일반인의 그것과 달리 노골적으로 희화화되거나 비웃음의 쇼트로서 전시되어도 괜찮은가. 심지어 이 첫 장면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장르적인 색채를 띤다. 태닝 기계는 흡사 출발하는 우주선의 내부처럼 보이고 태닝 기계의 작동음은 우주선 엔진의 굉음처럼 들린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이 장면은 도입부에서 일시적인 몰입을 강하게 유도하는 여타 장르물과 다를 게 없다. 심지어 점차 증대되는 푸른빛은 차가운 갱스터 영화의 시각적 톤을 설정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 이름 모를 카모라 조직원들의 죽음은 무엇보다 사실적으로 찍힌 이 영화가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 아니 허용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날 것이라 믿는 장르 영화 안에서의 철저히 배타적인 죽음이다.


중요한 건 인물 간의 관계성


<고모라>에서 조직원들 간의 직접적인 대립과 결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카메라는 그 폭력 안에서 불안에 잠식되어 가는 인물을 포착하거나 아예 폭력 바깥의 세계를 담는다. 때로 외화면에서 들리는 총성은 폭력 이미지를 대신한다. 마테오 가로네는 조직원 간의 물리적 사투보다 소시민적인 인물과 폭력적인 세계가 연루되는 방식, 그리고 인물들 사이의 위압적이고 비극적인 관계성을 드러내는 데 애를 쓴다. 이런 연유로 마테오 가로네는 영화를 무려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나누어 병렬적으로 전개하고 각 사연마다 폭력 구조의 최하단부에 놓인 소시민적 인물을 등장시킨다.


각 사연의 독립적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은 돈 치로, 토토, 마르코와 토니, 로베르트와 프랑코, 파스꽈레이다. 중요한 건 이들 모두 특정 대상과 깊이 관계 맺는다는 점이다. 애초에 짝을 이루고 있는 마르코와 토니, 로베르트와 프랑코와 달리 독립적인 주인공처럼 보이는 돈 치로와 토토, 파스꽈레 역시 각각 친한 이웃 마리아, 절친 시몬, 회사 사장 엔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영화에서 카모라 조직의 상부나 뒤를 봐주는 제도권의 인물은 일종의 환경으로서 존재할 뿐이고 영화는 이들과 폭력적으로 연루된 소시민적 인물들,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성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돈 치로는 조직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배급하는 따뜻한 배달부이고, 토토는 슈퍼를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배달 일을 하는 어린 소년이며, 마르코와 토니는 영화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를 꿈꾸며 독립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불량 청소년들이다. 로베르트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사회 초년생이고, 파스꽈레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재단사이다. 마테오 가로네는 소시민적 주인공과 억압적인 대상을 한 화면에 담음으로써 그들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고 동시에 프레이밍과 카메라 기법을 통해 그들 사이의 분절을 드러낸다. 돈 치로와 마리아는 같은 공간에 있을 때, 역광으로 얼굴이 사라진 상태이거나 한쪽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토토와 시몬도 마찬가지다. 조직원이 되어 망을 보는 두 인물은 한 화면에 함께 앉아 있지만 시몬은 옆모습만 드러나고 토토는 흐릿하게 보인다. 더욱이 시간이 흐르면 카메라는 서서히 전진하여 시몬을 소외시키고 점점 선명해지는 토토의 얼굴만을 담는다. 마르코와 토니는 주로 아웃 포커스된 배경을 공유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지만 그들이 한 화면에 같이 담기는 순간엔 항상 한쪽 얼굴이 안 보이거나 둘 다 아웃 포커스된 상태, 혹은 한쪽이 아웃 포커스된 상태다.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뒷모습으로 나온다. 유일하게 한 화면에 두 얼굴이 담길 때는 마약과 총을 훔치거나 성매매를 하는 등의 범죄 행위에 가담할 때이다. 로베르트와 프랑코도 같은 화면에 나올 때에는 익스트림 롱 쇼트로 처리되어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수많은 사람들과 뒤섞인 상태로 등장한다. 로베르트가 프랑코의 만행을 견디다 못해 죄책감을 느끼고 떠날 때야 비로소 둘의 얼굴은 온전히 한 화면에 담긴다. 파스꽈레 역시 엔조와 온전하게 한 화면에 담기지 않는다. 둘 다 옆모습이거나 한쪽이 흐릿하게 처리되어 있다. 한마디로 <고모라>의 카메라는 친밀함 속의 균열과 비틀림, 엇나감을 찍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마테오 가로네는 대화 장면에서 인물이 발화하는 순간마다 거의 집착처럼 카메라를 돌려 한 화면에 한 인물만을 담는 방식으로 인물들을 분절시킨다. 이러한 인물 간 단절은 이 세계의 작동 원리가 긴밀한 관계 속에 잠재된, 분절된 의식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상대와 관계 맺지만, 그것은 대개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폭력적 관계다. 또는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파멸을 종용하는 관계다. 소시민적 인물들이 맺는 위압적 관계는 범죄 조직에 의한 일상의 붕괴, 소시민의 몰락, 희망 없는 암울한 미래를 암시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마피아의 체계를 탐구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로 인해 배태된 시민들 간의 폭력적 관계성과 단절에 관한 비극적 숙명을 드러내는 영화다.


다섯 번 제시되는 죽음 이미지



그런데 첫 장면에서 살해당한 카모라 조직원들에게 ‘긴밀한 관계’, ‘숙명적 단절’에 관한 전사는 전무하다. 그렇다면 다른 죽음 장면들은 어떨까. 첫 장면을 제외하고 영화에서 죽음의 이미지는 총 네 번 나온다. 찰리가 게이타노를 죽일 때와 조직원들이 마리아에게 복수할 때. 그리고 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배신자 무리가 돈 치로의 도움으로 조직원들을 죽이고 돈을 훔칠 때. 마지막으로 마르코와 토니가 조직 보스들의 눈 밖에 나 처참히 보복당할 때. 이 중에서 게이타노와 마리아는 죽음의 순간 컷이 바뀌며 인격을 존중받는다. 하지만 조직원들이 죽을 때에는 카메라가 총을 맞는 조직원 쪽으로 몸체를 돌려 죽음의 순간을 기어이 포착한다. 또한 돈 치로가 건물을 빠져나올 때 의도적인 직부감 카메라는 조직원들의 끔찍한 시신 이미지를 다시금 전시한다. 마테오 가로네는 그렇게 찍어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직부감의 화면 구도를 통해 다량의 피와 널브러진 시신을 포착한다. 마르코와 토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죽는 순간의 모습은 화면에 담기지 않지만 시신의 이미지는 줄곧 오래 담긴다. 카메라는 널브러진 시신과 시신이 보스들에 의해 초라하게 운반되는 광경을 집요하게 포착한다. 이때쯤 되면 의문이 든다. 게이타노와 마리아는 왜 죽음의 순간과 그 결과 모두를 화면에 제대로 담지 않았을까. 마리아는 그녀에 관한 전사가 구구절절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수긍할 수 있지만 게이타노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전까지 게이타노는 영화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름조차 소개된 적 없었다. 요컨대 마테오 가로네는 인물의 사연과 상관없이 죽음의 이미지를 다룬다(대체로 범죄자들을 더 가혹하게 다룬다). 죽음의 이미지를 다룰 때, 그의 카메라는 합일된 규칙이나 통제 없이 가변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마테오 가로네가 영화 내내 강조하던 것이 폭력적 구조 안에서 신음하는 인물들 간의 위압적 관계성 아니었던가. 마테오 가로네는 의아하게도 죽음의 순간에는 관계의 메커니즘을 도려낸다. 그는 카모라가 지배하는 폭력적인 사회 구조와 일상의 위압적 관계라는 거대한 세계 안에서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죽음의 필연적 숙명성은 인정하면서도 그것들 간의 직접적인 인과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마테오 가로네가 첫 장면에서 카모라 조직원들의 죽음을 폭력적으로 제시하고 희화화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이 문제의 카메라와 편집은 폭력과 죽음을 대상화하고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화면에 담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이 잔혹한 카모라의 조직원들이라면. 사회를 억압하고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인간성을 상실한 범죄 조직의 하수인들이라면. 우리는 범죄자에게도, 아니 죽은 범죄자에게도 인권과 존엄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가. 그리고 예술의 세계 안에서, 영화라는 환영 안에서 카메라는 잔혹한 범죄자의 죽음을 대상화하고 심지어 희롱할 수 있는가. <고모라>의 첫 장면은 감정과 이성 사이의 이상한 착란을 불러일으킨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혹자의 말처럼 우리는 타락한 범죄자의 인권과 존엄성을 일반인의 그것처럼 똑같이 대우하고 인정해주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것은 예술의 영역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하는가. 마테오 가로네는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그는 문제적 첫 장면을 통해 폭력 이미지의 제시에 관한 정당성 문제에 파격적인 전복을 시도한다. 마테오 가로네는 묻는다. 이것은 위험한 전복인가, 혁명적 전복인가. 모든 인간은 동일한 존재인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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