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제작자 데이빗 O. 셀즈닉의 스카우트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히치콕은 <레베카>(1940)를 만들며 할리우드에 첫발을 내딛는다. 비록 <레베카>를 두고 셀즈닉의 영화라 칭할 만큼 그의 지나친 간섭에 녹초가 된 히치콕이지만 결과적으로 히치콕은 미국에 정착한 이래 수많은 걸작들을 쏟아내며 명실상부 영화 역사상 최고 거장 중 한 명이 되었다. 아마 영화팬들이 동경하는 히치콕은 미국 영화를 만들던 시기의 히치콕일 것이다. <오명>, <이창>,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등 수많은 걸작들을 미국에서 만들었으니 사실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히치콕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 이미 완성된 상태였다.
히치콕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하숙인>을 만들고 나서부터다. 누명 쓴 남자와 금발 미녀, 살인 사건과 집요한 수사, 스릴러와 멜로드라마의 결합, 감정의 서스펜스 등 히치콕을 수식하는 거의 모든 요소가 담겨 있는 <하숙인>은 무성영화 시대와 영국 시기의 히치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살인 장면에서 피해자 여성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그녀의 비명과 함께 거친 현악기의 불협화음이 들리는 대목은 <싸이코>의 그 유명한 샤워실 장면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자막의 흥미로운 변용이다. 자막 편집기사로 활약한 적 있는 히치콕은 무성영화에서 그저 서사 전개와 장면 설명을 위해 도구적으로 쓰이며, 쇼트와 쇼트의 단절로 극의 흐름을 방해했던 자막을 완전히 다른 영역의 것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는 자막에 색깔을 입히고, 움직임을 부여하고, 주위에 도형을 삽입하고, 심지어 조명 폰트에 가깝게 모양을 획기적으로 변형시킨다. 자막에 부여한 움직임과 이펙트가 리드미컬한 편집의 템포와 영화 전반의 시각 스타일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자막은 더 이상 읽어야 할 문자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시각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히치콕은 자막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며 경탄스러운 리듬감을 획득한다.
그러나 히치콕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 '데이지'를 자막 화면으로 제시하면서 그 옆에 삼각형 그림을 삽입한다. 이는 작중 연쇄살인마가 피해자 몸에 남기는, 종이에 그려진 삼각형을 연상시키며 그녀에게 닥칠 불길한 미래를 암시한다. 자막 하나에 질긴 서스펜스를 축조하는 지경에 이른 히치콕은 이때부터 관객과의 심리 게임을 벌이며 혁신에 대한 패기 넘치는 도전을 행한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하숙인>이 더욱 흥미로운 것은 무성영화의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노랫말이 삽입된 음악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랫말은 단순히 하나의 언어, 하나의 음정에 머물지 않고 장면을 묘사하는 설명적 장치로 기능한다. 노랫말이 포함된 음악은 하숙인이 데이지에게 사랑을 느낄 때, 연쇄살인마로 인해 누나를 잃은 하숙인의 가슴 아픈 사연이 제시될 때, 그리고 그를 데이지가 위로할 때 흘러나온다. <하숙인>의 노랫말은 사랑과 절망이라는 영화의 극점에 재생됨으로써 (이미) 충만해진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활용된다.
<하숙인> 이후 히치콕은 본인의 첫 발성영화이자 영국 최초의 발성영화 <협박>을 연출한다. 애초에 무성영화로 기획되었지만 촬영 도중 계획이 수정되어 엉겁결에 발성영화로 선회하게 된 것이었다. 워너브라더스가 1927년 <재즈 싱어>로 촉발시킨 발성영화 붐에 수많은 평론가들과 감독들이 반대했던 것처럼 히치콕도 초기엔 회의적이었다. 당시 영화이론가 루돌프 아른하임은 발성영화의 음향을 두고 '영화의 예술을 파괴하는 암'이라 칭했고, 대사의 도입은 무성영화가 가졌던 세계에 대한 관심을 축소시키고 인물에 대한 관심을 돌아서게 만듦으로써 시각적 행동을 무력하게 만든다고 호소했다. 몽타주 기법을 정립한 거장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사운드의 도입이 쇼트의 충돌로 상징적 의미를 도출하는 이미지 예술에서 후퇴하는 길이라고 지적했다. 위대한 예술가 찰리 채플린 역시 "사운드가 침묵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파괴한다."며 비판했다. 그는 발성영화의 제작 편수가 무성영화의 그것을 뛰어넘은 1929년이 한참 지난 뒤에도 계속 무성영화를 고수하다 마침내 1936년 <모던 타임즈>에서 얼마간 사운드를 도입하고, 1940년 <위대한 독재자>에 이르러 온전한 발성영화로 완전히 돌아섰다.
이들이 발성영화에 반대했던 것은 그것이 이미지의 시각적 감흥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대사가 서사 전개를 위한 종속적 수단으로 사용됨으로써 관객이 인물의 심리에 접속하지 못하고 외려 멀어질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운드 도입에 따른 시각 이미지에의 관심 축소는 피할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인물의 심리와 멀어지는 길이라는 비판은 히치콕의 <협박> 앞에서 붕괴된다. <협박>에서 히치콕은 자신을 강간하려던 남자를 '나이프'로 찔러 살해한 여인 앨리스의 죄책감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이때 앨리스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두고 잡담을 떠는 주변 인물들의 대화는 대부분 웅얼거리는 소리로 대체되고, 그 가운데 '나이프' 발음만 유독 큰 음량으로 날카롭게 들려온다. 히치콕은 듣기 괴로운 트라우마적 사운드를 앨리스의 청점으로 창조하며 이를 공유하는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가 얼마나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는지 체감하게 만든다. 히치콕은 <협박>을 통해 사운드의 위상을 대사와 노래, 주변 소음을 처리하는 작은 도구가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정교히 추출하는 획기적인 형식으로 격상시킨다. 발성영화에 반대했던 게 맞나 싶을 정도로 히치콕은 태초부터 사운드의 독창적 변용을 추구했던 탁월한 사운드 슈퍼바이저였다. <협박>은 화음의 충돌(불협화음)을 메인 테마로 가져와 그 아래 이미지의 충돌, 쇼트의 충돌(충돌 몽타주), 서사의 충돌, 자아의 충돌을 결부시켰던 위대한 영화 <싸이코>의 초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