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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26. 2023

'영원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 BEST 5

찰리 채플린 BEST 5


뮤직홀 가수 아버지와 연극배우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은 그의 자전적인 영화 <키드>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사실상 고아와 다를 바 없는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3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는데, 그마저도 어머니는 정신 분열 증세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했다. 결국 채플린은 당시 런던 뮤직홀에 만행했던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는 아버지에게 맡겨졌고, 6살의 나이에 보육원에 들어가야 했다. 아이러니한 건 그가 희극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그의 불우함에 지대한 지분을 갖고 있는 부모의 조력 때문이었다는 점이다. 채플린은 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도움으로 아동 극단 '랭커셔의 여덟 꼬마들'에 입단하며 찬란한 연기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재능으로 즉흥 연기를 훌륭히 소화했는데, 그러한 재능은 뛰어난 배우였던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유명 배우는 아니었지만 탁월한 팬터마임 솜씨와 관찰력을 지닌 배우였다. 이후, 채플린은 어머니의 분열 증세가 재발하면서 짧은 연기 생활을 뒤로 하고 잠시 극단에서 나와야 했지만, 어린 날의 연기 경험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은 그가 희극 배우의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결국 그는 의붓형 시드니의 권유로 새로운 극단을 찾아 나섰고, 마침내 <셜록 홈즈>의 급사 역을 따내며 배우로서 최초의 계약을 맺게 된다.


채플린은 17살 무렵 시드니를 따라 당대 최고의 희극단이었던 프레드 카노의 '무성 희극 배우단'에 합류한다. 그곳에서 카노의 지도를 받으며 팬터마임을 배워나간 채플린은 머지않아 극단의 간판스타로 떠오른다. 이윽고 미국에서 순회공연을 하던 그는 로스앤젤레스 키스턴 영화사의 대표였던 맥 세넷의 눈에 띄어 영화배우로 데뷔하게 된다. 예상치 않게 영화배우가 된 채플린은 높은 봉급을 받게 돼 만족해 했지만, 카노의 희극과 달리 즉흥 연출과 조급한 촬영 방식을 관행으로 삼던 키스턴 스튜디오의 작업 방식을 마음에 들지 않아 했고, 설상가상으로 데뷔작 <생활비 벌기>가 흥행에 실패하며 큰 위기를 겪는다. 키스턴 영화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채플린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내는데, 그것이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떠돌이'(the Tramp)다. 통 큰 바지에 꽉 끼는 상의, 작은 중절모와 거대한 구두, 짧은 콧수염과 대나무 지팡이라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결합한 희대의 부조화 캐릭터가 탄생한 것이다. 채플린은 <메이블의 이상한 곤경>을 시작으로 떠돌이 캐릭터를 발전시켜나갔다(관객이 떠돌이 찰리와 처음 마주하게 된 것은 <베니스의 어린이 자동차 경주>였다). 단숨에 자신의 위상을 드높인 채플린은 기존의 키스턴 영화사 감독들에게 갖고 있었던 불만을 늘어놓으며 세넷으로부터 영화 연출 기회를 얻어낸다. 채플린의 위대한 행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여러 영화사를 거치다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메리 픽퍼드, D.W 그리피스와 함께 독점적인 영화 배급 체계에 저항하며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영화사를 설립해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자율성을 얻은 채플린은 <파리의 여인>을 시작으로 <황금광 시대>, <서커스>,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살인광 시대>, <라임라이트> 등의 걸작들을 연이어 쏟아내며 그야말로 영원불멸의 전설이 되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고 적은 묘비명으로 유명한 영국 최고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는 채플린을 가리켜 "영화 산업에서 나온 유일한 천재"라고 설명했다. 그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찬사의 의미였지만 채플린은 결코 '천재'라는 단어로 쉽게 축약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천재성만큼이나 완벽주의적인 성격과 특유의 집념으로 악착같이 영화를 찍은 장인이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장면을 얻을 때까지 같은 장면의 촬영을 반복하였는데, 이는 허비되는 필름을 용납하지 않았던 당시의 필름 운용 방식을 완전히 저버리는 행위였다. 그는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라면 필름이 얼마나 사용되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20분간의 상영에 쓰일 2000피트의 필름을 얻기 위해 20시간에 달하는 6만 피트의 필름을 촬영하고 현상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채플린은 순간의 번뜩이는 재치에 의존하는 즉흥적인 예술가가 아니라 섬세한 터치와 치밀한 계획, 그리고 강인한 끈기를 근간으로 삼는 장인적인 예술가였던 것이다.


그가 장인적인 퍼포먼스를 끈질기게 이어나간 토대에는 희극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카노의 비법이기도 한데, 비극적인 분위기나 감성적인 터치를 곁들일 때 희극의 품격이 높아지고 그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희극은 비극 속에서 발현되고, 삶의 희망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그는 고아의 삶(<키드>), 지독한 허기(<황금광 시대>), 실업자의 곤궁(<시티 라이트>), 노동자의 기계적 삶(<모던 타임스>), 전쟁의 끔찍함(<위대한 독재자>)과 같은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현실의 비극들을 질료 삼아 희극으로 승화시켰다. 허다한 희극인들이 민감한 소재를 잘못 건드렸다가 역풍을 맞았던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극적 소재들로 웃음을 유발해내는 것은 사실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각각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도중에 개봉한 <어깨 총>, <위대한 독재자>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서부 전선과 히틀러를 소재로 한 두 영화에는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조차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경험한 이들이 전쟁을 희화화한 영화에 열렬한 찬사를 보내는 것만큼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황당한 기적을 실현시킨 채플린은 자신의 희극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설적이지만 한 편의 희극을 창조함에 있어 그 희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이용되는 것은 비극성입니다. 희극성이라는 것이 반항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일 겁니다. 전지전능한 자연 앞에 선 우리의 미약함을 발견하고 취할 수 있는 대처 수단이란 웃음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면 미쳐버리고 말겠지요."


삶의 풍파에 시달릴 때 머릿속에 떠오를 영화는 셀 수 없지만 이름은 귀하다. 찰리 채플린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거대한 이름으로 기억된다. 나는 그에게서 개인적 비극과 시대적 비극을 우스꽝스러운 희극으로 승화하는 용기, 삶에 대한 긍정을 과장하지 않고 담아내는 절묘한 균형 감각과 절제력을 배웠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와 동시대를 살지 못한다는 것뿐이다.



5. 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 / 1925



<황금광 시대>에서 금광을 찾아 알래스카로 간 찰리는 눈보라로 인해 한 오두막 안에서 추위와 허기와 고독에 조금씩 지쳐간다. 마침내 그는 정신이 이상해져 구두를 삶아 먹는 지경에 이르고, 오두막에서 함께 지내던 맥케이는 그를 닭으로 오인하여 잡아먹으려 한다. 이들의 행위는 무엇보다 우습게 연출되었지만 그것의 근원에는 허기로 말미암은 끔찍한 비극이 잠재해 있다. 이러한 설정들은 채플린이 클론다이크라는 금광 지대로 금을 찾아 몰려드는 궁핍한 사람들을 담은 입체화들과 네바다 산맥에서 조난당한 이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먹으며 살아남은 조지 도너의 모험담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것들이었다. 그는 두 소재의 비극적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허기를 희극의 요소로 내세워 그의 영화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웃음을 만들어 낸다. 다만, 그가 누구보다 허기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를 보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그 웃음 끝에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질 것이다.


채플린의 영화에서 가장 행복하게 꾸며지는 대목은 찰리가 순수한 사랑의 환희로 충만해질 때인데, 이 환희는 언제나 그것을 얼룩지게 만드는 가장 슬픈 순간을 내포한다. <황금광 시대>는 <서커스>와 더불어 그러한 환희와 슬픔의 순간이 가장 아름답고도 처연하게 담긴 영화다. <서커스>에서 서커스단의 메르나를 짝사랑하던 찰리는 흑발 미남과의 사랑과 결혼이 보인다는 그녀의 운세를 듣고 그 주인공을 자신이라 착각해 행복해 한다. 그러나 이내 그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 곡예사 렉스였음을 깨닫고 힘없이 의자에 주저앉는다. 마찬가지로 <황금광 시대>에서 조지아라는 무희에게 빠진 찰리는 그녀가 새해 전날 자신의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겠다는 약속을 하자 집안의 사물을 모조리 부시고 던져버릴 만큼 기뻐한다. 그러나 그녀가 약속을 까먹고 오지 않자 그는 기다림 끝에 홀로 잠든다. 이내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그 소리에 쓸쓸히 깨어난다. 이 두 시퀀스는 어떤 하나의 상태가 그 대립항으로 옮겨갈 때 감정적 파장이 생겨난다는 것을 명료하게 드러낸다. 기쁨이 슬픔으로 전환되거나, 그 반대일 때 마음에 동요가 생기는 것이다. 채플린은 항상 부자와 거지, 힘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 공동체와 외톨이,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등의 대조를 이루는 항목들을 영화에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그런 연유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일방적인 구석 없이 적절한 균형 속에 전개된다. <황금광 시대>는 그러한 균형이 가장 정교하게 맞춰진 영화다. 기쁨과 슬픔이 섬세하게 다듬어진 찰리의 순수한 로맨스는 종국에 헤어나기 힘든 진한 여운을 남긴다.



4.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 1936



1927년 최초의 발성 영화 <재즈 싱어>가 발표된 이후 영화 산업 구조가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완전히 변모하는 와중에도 채플린은 무성 영화를 고집했다. 팬터마임이라는 만국어가 대사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운 보편적 소통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성 영화에 대한 수요가 계속 사라지는 상황 속에서 채플린도 막무가내로 무성 영화를 고집할 수는 없었다. <시티 라이트>와 <모던 타임즈>는 기본적으로 무성 영화의 틀을 갖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사운드를 도입한 영화다. 흥미로운 건 사운드의 도입이 그것에 대한 순수한 찬동의 의미가 아니라 경멸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티 라이트>에서 호루라기를 삼킨 찰리가 말은 하지 못하고 딸꾹질을 할 때마다 목 안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나 조각상 제막식에서 축사를 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앵앵거리는 음향 효과로 표현된 것은 유성 영화의 별 볼 일 없는 음질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모던 타임즈>에서 카바레에 취직한 찰리가 셔츠 소매에 적어둔 노래 가사를 날려버려 즉흥으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노래를 부르는 장면 역시 대사로 의미를 전달하려는 유성 영화의 조악함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모던 타임즈>는 채플린의 (그리고 할리우드의) 마지막 무성 영화인 동시에 떠돌이 찰리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과도기적 작품이다. 거리를 배회하던 떠돌이가 난처한 상황에 연루되다가 어찌저찌 상황을 해결하고 쓸쓸히 그곳을 떠나는 찰리의 서사는 <시티 라이트>를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하다가 <위대한 독재자>에서 완전히 소멸된다. <모던 타임즈>는 그 간극에 놓여 있다. 영화에서 찰리는 떠돌이 복장을 하고 있지만 엄연히 직업을 갖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당시의 이민자를 대변하던 찰리는 1930년대 대공황을 통과하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몸소 경험하는 노동자로 변모한다. 찰리는 기계로 인해 실업자가 양산되고 노동자는 그 기계를 다루는 또 다른 기계로 움직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고발한다. 인간성이 상실된 사회에서 소외 계층은 절도를 하고, 감옥에 가고, 다시 실업자가 된다. 그러나 찰리는 그 각박한 산업화 시대에 아버지를 잃은 고아 소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최선을 다해 일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꾼다. 채플린의 정의처럼 찰리와 소녀는 "꼭두각시들의 세상에 오직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 살아 있는 영혼들"이다. <모던 타임즈>는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영혼이 되고 싶게 만든다. 그 선한 욕망이 무엇보다 숭고하고 아름답다.



3. 위대한 독재자 (The Great Dictator) / 1940



채플린은 <위대한 독재자>에 이르러 그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라 할 만한 두 가지 요소-'찰리'라는 떠돌이 캐릭터와 무성 영화를 전부 폐기한 다음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 그는 전쟁을 일삼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파시즘과 그것에 동조적 반응을 보이는 미국의 정서를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채플린에게 <위대한 독재자>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에 대한 항쟁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국 보수주의 세력의 본격적인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FBI의 확실한 표적이 되고 말았다. 이후, 매카시즘과 냉전 시대를 비판한 <살인광 시대>를 거치면서 그는 적대자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었다. 그가 <라임라이트>의 개봉을 위해 런던행 배에 승선하자 미국 법무부는 그의 입국 비자를 말소시켰다. 그렇게 채플린은 공식적으로 미국에 입국할 수 없게 되었다.


채플린은 사람들이 제1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에 대해 분개했다. 전쟁이 불러일으킬 참상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던 채플린은 파시즘의 광기를 막기 위해 찰리를 소멸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끝내 입을 열고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작중 인물을 분신으로 내세우지 않고 직접 연설자가 되어 아이 레벨로 맞춰져 있는 카메라에 대고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 정신의 위대함에 대해 연설하는 마지막 장면은 그 비장한 결의로 인해 더 아름답고 뭉클하게 느껴진다. 다만, 채플린은 영화를 제작하던 1930년대까지만 해도 나치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당시 나치는 그들이 강제 수용소에서 저지르는 포악한 만행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그는 훗날 <위대한 독재자>를 두고 이렇게 얘기한다. "만일 나치의 집단 수용소에서 벌어지던 잔악상을 사실 그대로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위대한 독재자>를 연출할 수 없었을 것이고 나치의 살인광증을 조롱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위대한 독재자>에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 바로 전쟁에 참전한 이발사 역할을 맡은 채플린이 부상당한 슐츠 장교를 구해 전투기를 타고 달아나는 장면이다. 이때 전투기는 생사를 오가느라 제정신이 아닌 슐츠 장교 때문에 위아래가 뒤집히게 되는데, 두 사람은 그러한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하늘을 날게 된다. 이 장면에서 굉장한 것은 뒤집힌 그들의 모습을 다시 뒤집어 보여준다는 점이다. 중력으로 인해 그들의 머리와 옷깃, 사물들은 위로 향하게 되지만 그들의 모습은 위아래가 바뀐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연출은 그들이 세상을 잘못된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드러내는 동시에, 더 중요하게는 그들을 감싸고 있는 세계 자체가 잘못 뒤집혀져 있음을 암시한다. 파시즘의 광기에 미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부조리, 그리고 그러한 모습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세태를 이 두 번의 상하반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대개 채플린을 뛰어난 배우로 기억하지만 그는 훌륭한 감독이기도 했다. 위의 장면은 감독 채플린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 시티 라이트 (City Lights) / 1931



<시티 라이트>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가득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찰리와 눈 먼 소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눈 먼 소녀와 사랑에 빠진 찰리는 술만 마시면 자신과 친구가 되는 백만장자의 도움을 받아 그녀에게 눈 수술비용을 대준다. 그러나 술에서 깬 백만장자가 찰리를 강도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시켜 찰리와 소녀는 서로의 소식도 모른 채 이별하게 된다. 이후, 출소한 찰리는 어느 꽃집을 지나다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녀와 재회한다. 그는 자신을 부자로 알고 있던 소녀에게 자신의 남루한 처지를 들킬까 초조해하고, 소녀는 마침내 그의 손을 더듬으며 정체를 알아낸다. 위대한 엔딩에 이르러 찰리는 "이제 보이시나요?"라고 묻고는 어색하게 웃는다.


위의 엔딩 장면에서 드러나듯 <시티 라이트>는 떠돌이 찰리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영화다. 환상 속에서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찰리에게 투사시켰던 소녀는 그의 맨 얼굴을 목격함으로써 환상에서 깨어난다. 이는 찰리라는 인물에 욕망과 감정을 투영한 뒤 그를 각자의 분신처럼 여겨왔던 관객들의 환상과도 연관된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실 소녀가 아니라 관객에게 향하는 것이다. 채플린은 관객들에게 가진 것 하나 없는 찰리의 남루한 실체를 눈 먼 소녀라는 대리자를 통해 확인시킨다. 말하자면 채플린에게 <시티 라이트>는 찰리에 대한 관객의 환상을 깨부수는 작업인 것이다. 그는 대공황과 파시즘, 그리고 유성 영화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떠돌이 캐릭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심하고 있었다. <시티 라이트>와 <모던 타임즈>는 떠돌이의 소멸을 받아들이는 채플린의 가슴 아픈 용단이 담긴 영화들이다. <시티 라이트>의 마지막 장면이 그토록 애처롭게 느껴지는 건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시티 라이트>에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권투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그간 채플린이 선보였던 팬터마임의 절정으로 그가 등장하는 역대 모든 장면들 가운데 가장 웃기다. 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복싱 경기에 참여하는데, 끔찍이도 운이 없어 결과를 정해 놓고 시합을 하기로 한 파트너 대신 눈치 없는 거구의 새 파트너와 정식 경기를 하게 된다. 겁에 질린 왜소한 체격의 찰리는 심판 뒤에 숨어 악착 같이 상대를 피해 다닌다. 그렇게 찰리는 상대 선수와 심판, 두 사람과 함께 절묘한 호흡으로 군무를 추듯 움직이다가 틈이 생기면 교활하게 주먹을 날린다.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주먹을 얻어맞다가 심판과 찰리를 헷갈려 하기도 하고, 어느새 싸움에 말려든 심판은 선수가 되어 상대와 싸우기도 한다. 세 배우의 기막힌 합이 인상적인 이 장면은 폭소는 물론이고 스텝과 펀치, 그리고 회피로 이어지는 황홀한 리듬감으로 최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1. 살인광 시대 (Monsieur Verdoux) / 1947



1942년 오손 웰즈는 프랑스에서 과부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질렀던 앙리 데지레 랑드뤼의 생애를 다큐멘터리적으로 다룬 이야기를 구상했다. 이 이야기에 매료된 채플린은 5000달러와 '오손 웰스의 구상에 따름'이라는 자막을 넣어주는 조건으로 그의 아이디어를 양도받아 냉전 시대의 편집증적 광기를 맹렬히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를 만든다. 채플린은 이 영화에서 냉소적인 살인마를 연기하며 그간의 동정 받는 이미지에서 완전히 탈피했는데, 그러한 변화 때문인지 영화는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아마 채플린의 영화는 폭소를 자아내면서 뭉클한 장면이 포함된 정통 희극이어야 한다는 일차적인 관성과 냉전의 바람이 불던 1940년대 미국의 시대성이 작용한 탓이었을 것이다.


<살인광 시대>에서 채플린은 지독한 염세주의 살인마로 분하지만 결코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는 특유의 슬랩스틱과 우스운 상황들을 적재적소에 집어넣으며 절묘하게 극의 분위기를 잡아나간다. 예컨대, 베르두가 죽은 아내의 돈을 인출 받아 기쁜 마음에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에 맞춰 들려오는 동일한 멜로디의 타격음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장면이나 그가 또 다른 아내인 애나벨라를 살해하기 위해 독약이 든 와인을 건네다가 역으로 본인이 마시게 되면서 다짜고짜 죽은 사람이 된 듯 행동하는 장면, 또 나룻배에서 애나벨라를 강물에 빠뜨리려다 낚시에 열중인 그녀의 몸부림 때문에 마취약이 묻은 헝겊을 뒤집어쓰게 되고 심지어 물에 빠져 죽을 뻔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상대를 쉽게 죽이기 위해 베르두가 동물 안락사용 약품을 이제 막 출소한 부랑아 소녀에게 실험하는 장면이다. 그는 탁월한 솜씨로 소녀를 거처로 데려와 약품이 든 와인을 마시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사랑의 위대함과 그로 말미암은 삶의 희망에 대해 설파하는 그녀에게 돌연 감화되어 버린 그는 약품이 든 와인을 진짜 와인으로 바꾸며 살인 계획을 철회한다. 그는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는지 소리 내어 웃는다. 이 장면은 염세주의자에게 삶의 희망이 전달된다는 점에서 뭉클하지만 훗날 그가 이 특별한 만남을 제대로 기억조차 못한다는 점에서 보다 절망적이다. 그는 순간의 동요로 치밀한 계획을 수정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간의 진실에 머문다. 머지않아 그녀와 재회한 그는 그녀가 돈을 목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한다고 오인하기까지 한다. <살인광 시대>는 염세주의자가 낙관주의자로 변모하는 영화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끝까지 유지하다 마침내 (표면적인) 전락을 맞이하는 영화다.


베르두의 비관적 태도의 바탕에는 전쟁을 저지르고, 불황을 일으키는 국가에 대한 한탄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명을 죽이면 악한이 되고 수백만을 죽이면 영웅이 되죠. 숫자가 정당화합니다(One murder makes a villain, millions a hero. Numbers sanctify)." 형장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에는 슬픔도 회환도 담겨 있지 않다. 영화에서 형장은 언제나 죽음에 대한 공포로 상대를 질식시키는 장소였다. 그러나 베르두는 "머지않아 여러분 모두와 만나게 될 겁니다(I shall see you all, very soon)."라는 법원에서의 최후의 발언처럼 마치 환생해 돌아올 것이라는 듯 당당하다. 실제 그가 피닉스처럼 죽었다 살아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그의 확신에 찬 언행은 국가의 잘못이 이어지는 한 또 다른 베르두들이 계속 생겨날 것이라는 예견처럼 보인다. 씁쓸하지만 그의 예견은 지독한 염세주의와 냉소적 살인이 흔하게 목격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르긴 몰라도 베르두는 인류의 운명과 함께 할 것이다. 베르두가 사라지는 날 인류도 끝날 것이다.






'영원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 영화 BEST 5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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