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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r 19. 2023

가장 소중한 기억


가장 소중한 기억


외로운 청소년기를 거치며 내 마음에 굳건히 장착된 신조는 이외수 소설가가 적은 다음의 구절과 같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이 단단한 응어리 같은 부정적 심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사람들과 거리 두기를 일상으로 삼고 자기방어에 능한 고립된 인간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존감은 지극히 낮고 자존심은 억수로 센 사람이 되어 있었고, 주변에는 예전부터 알고 지낸 몇몇 사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원더풀 라이프>


영화감독을 꿈꾸며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영화를 보던 날, 내 어깨에 태산같이 무거운 질문이 얹어졌다. “당신의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일본의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작 <원더풀 라이프>는 이 무겁고도 곤란한 질문을 부드러이 건네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질문 앞에서 난 상당히 곤혹스러웠다. 기억이란 과거에 보존된 것인데, 과거는 내게 지워버리고 싶은 트라우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허구한 날 사랑의 매라는 닳고 닳은 레퍼토리로 내게 분풀이를 했다. 내가 맞는 동안 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간혹 어머니가 온몸을 던지기도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의 화를 더 증폭시키는 촉매제가 될 뿐이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는 폭력에 방관했고, 형은 침묵했으며, 나는 외로이 눈물을 흘렸다. 청소년기의 내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라곤 그 시기의 대부분이 그렇듯 친구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해보지 않은 대다수의 친구들에게 내 고통은 일시적인 화젯거리에 불과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의 청소년기는 어둠 속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이지 않는 울분으로 남았다. 내게 남겨진 선택지는 그 적막한 어둠 속으로 투신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영화는 내게 과거의 장면들을 헤집으며 어떻게든 소중한 기억을 찾으라는 일종의 협박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나의 가장 소중한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런 순간이 있기는 했던 걸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한 유명 평론가의 긴 해설이 끝날 때까지 나는 영화가 요구하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좋은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설 때 다시 시작된다고 했던가. 한동안 영화가 던진 질문이 뇌리에 박힌 채 떠날 줄을 몰랐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던 어느 순간 강렬한 어떤 기억이 빠르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소박하지만 무엇보다 뜨겁고 정열적인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초여름 무렵이었다. 나는 외로움을 타개하는 방법의 하나로 축구를 즐겼다. 외로움이라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치료제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진통제로 기능했던 것이 바로 축구였다. 어느 날, 풋살 반 대항전이 열렸다. 4강 상대는 우승 후보로 거론되던 5반이었다. 경기가 끝나기 직전까지 우리는 1점 차로 지고 있었고, 심판을 보던 당시 체육 선생님의 입술에는 휘슬이 물려 있었다. 결승을 문턱에 두고 그렇게 탈락하는가 싶었다. 마지막 공격을 앞두고 내가 찔러 넣은 전진 패스를 받아 우리 팀 공격수가 드리블 돌파를 강행했다. 그러나 상대 수비의 정확한 태클로 공격은 무산됐다. 패색이 짙어지는 순간, 데굴데굴 흐르던 공은 절묘하게 내 앞으로 굴러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강한 왼발 슛을 날렸고, 공은 정확히 오른쪽 하단 구석을 향했다. 골이었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나를 휘감는 사이 휘슬이 울렸다.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던 같은 반 친구들은 일제히 경기장 안으로 난입했고, 우리는 평생 질러보지 못한 굉음을 내며 포효했다. 아직 승부차기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이미 경기에 승리한 듯 서로를 끌어안았다.


<원더풀 라이프>는 내게 그 순간의 감격을 다시 재현시켰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라는 신조로 살아온 내가 친구들의 품속에서 동점골의 짜릿함을 만끽하던 순간을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떠올리다니. 어쩌면 나는 상처 위에 새살이 돋아나길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새살이 돋아나도 다시 그 위에 상처가 덧날 것이고, 어쩌면 그 상처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흔이 될지 모른다고. 나는 그러한 연유로 사람과 거리를 두는 삶의 방식이 한낱 자기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부정했는지도 모른다.


내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사랑과 환영이었다. 나에게 진심을 보이는 사람, 기꺼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고립된 나’가 아니라 ‘소규모 공동체 속의 나’로 머물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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