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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Sep 20. 2023

우울의 순환


우울의 순환



에세이스트 캐럴라인 냅은 본인의 유고 에세이집 <명랑한 은둔자>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고독은 차분하고 고요하지만, 고립은 무섭다. 고독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쬐는 것이지만, 고립은 우리가 하릴없이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고립에 대해 ‘자족감으로 가장한 두려움의 목소리’라고 덧붙인다. 그녀의 구분에 따르면 나의 진정한 문제는 고독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고립은 필연적으로 고독을 동반하지만, 고독이 항상 고립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고립은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채 방 안에서 쓸쓸히 글이나 쓰고 있는 나에게, 설사 사람들 속에 있더라도 폐소공포증을 앓는 환자처럼 그들로부터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는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단어였다.


인간이 자살을 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타인과의 관계 형성에 실패함으로써 자기 효능감과 소속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 우울증 판정을 받았을 때 우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립된 환경에서 벗어나 타인과 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이 지독한 우울감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무작정 말을 걸며 친해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결책을 강구하던 나는 얼마 후 ‘소모임’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알게 되었다. 특정 소재를 기반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아 하나의 소속집단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모임을 주최하는 애플리케이션이었다. 나는 용기를 내 모임 중에서 가장 에너지 소모가 덜할 것으로 예상되는 독서 모임에 가입했다. 그러나 나는 오프라인 모임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 모임을 탈퇴해버렸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내겐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항우울제가 본격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한 달의 시간이 지나자 닫혔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헬스와 관련된 모임을 찾아 가입했다. 그곳에서는 운동 인증을 단체 카카오톡 방에 올려야 하는 일종의 과제가 있었다. 나는 헬스장에 가서 어색하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은 뒤 단체 카카오톡 방에 올렸다. 큰 호응이 있지는 않았지만 사진 아래에 좋아요 마크가 몇 개 표시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했다. 강남역 인근에 있는 헬스장에서 모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파트너 운동을 진행한 것이었다. 모임원들은 내 예상과 다르게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외향적이지도 내향적이지도 않았고, 센 척을 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소심해 어색함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그들과 나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깨닫자 마음이 편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모임에 소속감이 생겼고, 모임원들과 느슨한 유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잠잠했던 핸드폰은 운동 모임의 단체 카카오톡 메시지로 온종일 노란 깜빡임을 보내왔다. 어느덧 우울감은 조금씩 가라앉았고 무기력했던 일상도 얼마간 회복되었다.



운동 모임은 예상했던 것보다 내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모임에서 만난 연상의 모임장과 사귀게 된 것이다.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내 삶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날처럼 느껴졌다. 든든한 아군의 엄호를 받듯 안정감을 느꼈다. 설렘과 흥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카카오톡 메시지가 오거나 전화가 걸려오면 언제나 각성 상태가 되었고, 데이트를 하는 날이면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오랜 시간을 써야 했다. 그렇게 내 삶은 우울감과 무기력증 대신 설렘과 호기심으로 충만해졌다. 정신과 의사는 밝아진 내 모습을 보고 항우울제 복용량을 줄이기까지 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우울증을 극복했다는 착각에 사로잡혔다.


문제는 이별 뒤에 찾아왔다. 막혔던 댐이 열리며 한꺼번에 물이 쏟아지듯 우울감은 단숨에 몰려와 나를 진창에 빠트렸다. 이 막막한 우울감에 저항할 길은 없었다. 모임장과 이별했기에 모임에서도 나오게 되었다. 한순간에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올랐다. 심각한 무기력증은 나를 내 안에 가두면서 좁은 방에 짓눌리는 듯한 압박감을 선사했다. 불면증은 더욱 심해져 신경안정제를 먹어도 도통 잠이 들지 않았다. 의사는 다시 항우울제 복용량을 늘렸다.


우울이란 심연에 내장되어 영속되는 감정이었다. 우울은 극복하는 게 아니라 익숙해지는 것이었다. 처음 이 깨달음을 얻었을 땐 정말 비참한 심정이었다.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편안해지는 면도 있었다. 극복할 수 없다면 극복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닐까. 우울을 내 것으로 완전히 체화시키면 어떨까.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았다. 이제 우울감을 하루라도 빨리 극복해야 한다는 조급함에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었다. 절실하게 우울감이 떨어져 나가기를 바라며 잠이 들 필요도 없었다. 다만 우울함에 지쳐 쓰러지지만 않으면 되었다.


문득 우울감이 몰려오거나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묘하게 위안이 되는 아이러니한 문장 하나를 되뇌인다. ‘나는 원래 우울한 사람이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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