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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스텔로 May 06. 2023

500원짜리 컵떡볶이


500원짜리 컵떡볶이



처음엔 대학교만 가면 뭐든 해결될 줄 알았다. 미성년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어른의 세계에 접속하고, 학업이라는 무거운 억압에서 벗어나고, 그러는 가운데 아름다운 사랑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세계는 내가 예측한 것과 항상 다르게 흘러갔다. 뭔가 달라질 줄 알았던 내 삶은 똑같이 어두웠고 암담했다. 누군가 나의 희망찬 바람을 일부러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가정의 불화는 그대로 이어졌고, 내 능력에 대한 세계의 인정은 자꾸만 미뤄졌다.


젊은 영화학도였던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 단편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게 촬영 현장은 고독한 사형대 같았고, 스탭들은 나를 저주하기 위해 태어난 악귀들 같았다. 감독인 나는 카메라의 미묘한 위치부터 작은 소품에 이르기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전부 알고 있어야 했다. 현장의 모든 인원이 날 주시했던 만큼 내가 짊어져야 할 책임의 하중은 상상 이상이었다. 더욱이 모르는 사람과의 끝없는 협업은 병적으로 낯을 가리는 내게 무엇보다 고된 일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촬영 현장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연유로 뒤늦게 진로를 바꿔 영화평론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이 역시 쉬운 길이 아니었다. 세상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즐비했고, 여러 방면의 잡다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 또한 넘쳐났다. 또 한 번의 좌절을 겪은 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마지막 결심을 다졌다. 그렇게 대학교를 졸업한 뒤 지금까지 무명의 작가로 활동하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카페에서 떡볶이를 배달하여 먹었다. 흥미롭게도 그 떡볶이는 내가 어린 날 사 먹었던 500원짜리 컵떡볶이와 유사한 형태로 담겨 있었다. 길쭉한 하얀색 컵 안에 붉은 국물이 가득 묻은 쫀득한 떡볶이. 나는 초등학생 시절 하굣길에 왕왕 사 먹곤 했던 컵떡볶이를 떠올리며 자연스레 그때의 추억에 잠겼다. 당시 축구선수를 꿈꿨던 나는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팀을 짜서 축구시합을 하는 것이 삶의 낙이었다. 그 수많은 날 가운데 특기할 만한 기억은 친구들과의 축구시합을 끝낸 뒤, 학교 축구부원들이 훈련하는 광경을 단짝 친구와 계단에 앉아 봤을 때다. 축구선수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그 꿈을 포기해야 했던 내게 또래 친구들이 훈련하는 모습은 참으로 부럽고 신기한 것이었다. 같이 있었던 친구 역시 나만큼이나 축구를 사랑했었는데, 그날 우리는 참 바보 같고 한편으론 순수한 대화를 나눴다.


“나중에 월드컵에서 만나자.”


우린 결의에 찬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고, 그 굳은 마음을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굣길에 컵떡볶이를 사 먹었다. 그날의 컵떡볶이는 그간 사 먹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우리의 순수한 열정과 결기가 담긴 것이었다.


이제는 그게 허황된 꿈이었다는 걸 안다. 또래보다 축구를 잘하는 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최상위권을 노릴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더욱이 몸집이 작고 힘도 약한 편이었던 데다 잔병치레가 많은 허약한 체질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친구와 나눴던 그 말을 정말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내게 실패란 없었고,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 과거를 떠올리니 작금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 돼버린 걸까. 현실 감각이 좋아진 것이라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한낱 자기합리화에 불과한 것 아닐까. 나는 왜인지 점점 두려움에 잠식되고 말았다. 이제 500원짜리 컵떡볶이를 찾을 수 없듯이 과거의 패기 넘치던 나를 되찾을 수 없는 건 아닐까. 혼곤한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그 심란함 속에서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저절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이후, 나는 이따금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과거의 대책 없는 자신감과 패기를 복기하곤 한다. 물론 시련은 언제나 닥쳐올 것이고, 때로 잘 풀리지 않는 나날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극복하지 못한다면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요즘도 가끔 외롭고 고단할 때, 카페에서 컵떡볶이를 시켜 먹는다. 그럴 때면 왜인지 삶의 새로운 국면을 향해 정진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내게 컵떡볶이는 삶이라는 추진체를 구동시키는 특급 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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