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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섀도우 May 09. 2021

아기천사

J. Y.


소아 환자를 보는 건 부담되는 일이다. 성인과 다른 정상 바이탈 수치, 조금만 가래를 뽑아도 훅훅 떨어지는 산소포화도, 개미 더듬이마냥 마이크로그램 단위로 희석하는 약물 용량, 예민한 교수님과 보호자, 남의 소중한 아기라는 중압감까지. 장기간 중환자실을 떠도는 환아를 처음 인수인계 받으면 생전 처음보는 소아과 전문용어가 간간히 적힌, A4용지 몇장을 채우는 대하소설 대본같은 인계장을 마주하게 된다.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경력자'라는 듬직한 이유로 몇 달 만에 소아 환자를 보게 됐다.


조엘(Joel)은 선천적으로 심장과 혈관 기형으로 숨이 찬 아기였다. 상대정맥이 좁아 혈류량이 적고 심장기능이 떨어져 폐순환이 약해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그 작은 몸뚱아리로 벌써 두번의 수술을 하고 기계환기와 기관내관을 하다가 어제 발관하고 고유량산소요법 - 흔히 Airvo2라 불리는 기계를 달았다. 흰 모포에 둘러싸인 어린 아기는 제법 자란 암갈색 머리카락이 선풍기 바람에 흩날렸고, Airvo2 기계가 강제로 밀어내는 따뜻한 바람을 들이키며 침대에 누워 있다. 가끔 힘없이 소리없는 울음을 터트리긴 했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얌전히 누워있는 귀여운 아기는 이목을 사로잡을 줄 알았다. 금세 수많은 중환자실 이모들의 이쁨을 받았다.


소아과 교수님은 아기가 빠는 힘이 약하다고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교수의 지시대로 세시간마다 젖병으로 분유를 타서 입으로 먹을 만큼 먹이고 나머지는 입에서 위까지 연결된 G-tube로 천천히 분유를 먹인다. 혹여 입으로 삼키다 사래가 들릴까, 청색증이 생길랴, 입술이 파래지는지 모니터의 산소포화도 수치와 뚫어져라 쳐다본다. 포대기에 쌓인 작은 아기를 팔에 안으면 EKG 리드와 코에 붙은 Airvo 산소줄과 발바닥에 붙은 산소포화도 센서, 대퇴정맥에 잡은 중심정맥관과 제일 작은 24G 바늘로 간신히 잡은 동맥관이 버드나무처럼 드리워진다. 솔로인 내가 분유를 타서 어정쩡한 자세로 아기를 안아 젖병을 물리고 있는 폼새가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열시 반 면회시간에 번갈아 오는 환아의 부모는 짧은 면회시간동안 아이의 얼굴을 읽는다. 이모들의 손을 타서 혹여 부모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까 걱정이다.

보호자와 나, 교수님 셋이서 아이의 상태에 대해 의논한다. 폐대동맥과 상대정맥 협착으로 숨찬 증상이 지속되었기에 다시 수술이 결정되고, 아이는 수술을 위해 SICU로 떠났다. 앞으로 몇번의 험난한 산이 조엘에게 남았을 지 모르겠지만, 무사히 치료 마치고 건강하게 자라렴.


중환자실의 수많은 이모, 삼촌들이 널 엄청 이뻐하고 성심껏 돌봤다는 걸 말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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