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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익스피어 Jun 20. 2024

[제단글] 호기심과 메뉴판의 상관관계

앱 제시단어 : 메뉴

[제단글 : '제시단어로 글쓰기'의 준말. 제시 단어를 앱(RWG)을 통해서 받으면 그 단어를 주제 또는 소재로 하여 글을 쓰는 것.]

- 앱 제시단어 :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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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일이다.


아는 동생과 점심을 먹으러 써브웨이에 들어갔다. 그런데, 메뉴에 재미있는 것이 생겼다. 썹픽이랜다. 참고로 광고는 아니다. 내돈내산!


영어로는 SUBPICK. 말 그대로, 써브웨이에서 고른 메뉴란 뜻이네. 재료를 하나하나 고르지 않고 써브웨이의 추천 조합을 고르는, 말 그대로 쉽고 빠른 메뉴였다. 


서브웨이는 내가 나름 좋아하는 샌드위치 가게이긴 했지만, 항상 어려웠던 것은 빵 종류부터 치즈 종류까지, 그리고 집어넣는 야채 종류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선택하는 것이었다. 뭔가 암기과목 공부하는 듯한 느낌까지 받곤 했다.


나같은 아저씨에게, 샌드위치나 햄버거 같은 음식은 모든 재료를 버무려서 한꺼번에 물어뜯어 먹는 비빔밥 같은 녀석. 그 음식에 들어가는 밥이 추청(아키바리)쌀로 만들었는지 해들미인지 알게 뭐냐! 음식점이 그 음식의 전문가이니만큼 니들이 가장 맛있는 조합을 고객에게 알려줘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하는 나에게 항상 써브웨이는 가까이 하기도, 멀리 하기도 참 애매한 곳이었는데, 이번에 생긴 저 썹픽이란 퀵 메뉴는 아저씨 종특을 200% 함유한 나에게도 편리한 메뉴였기에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꽤나 비싸서 누군가에게 대접받을 때나 먹을 수 있는 오마카세 라는 메뉴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오마카세는 아무것도 고를 필요가 없는 메뉴. 전채요리부터 메인요리, 그리고 디저트까지 그들이 추천하는 요리가 차례대로 줄줄줄 나오는 것이다.


웬만해선 자기 돈으로는 사먹을 수 없을 정도로 비싼 가격을 자랑하지만, 그 요리의 전문가들이 정해 놓은 맛난 음식들이 쪼로록 나오는 오마카세는 상당히 만족감을 주는 요리이기도 하다.


그 만족감의 이면에는 주문의 편리함도 포함된다. 초밥이 맛있다는 것 쯤이야 알지만, 그렇다고 그 재료와 요리법이 그토록 다양한 초밥의 세계에서 어떤 녀석이 제철이고 어떤 요리법이 가장 어울리는지는 요알못의 일반인들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오마카세의 인기는 그 편리함도 한 몫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나에게 그런 편리함이 가끔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위에서 아저씨 종특 200%를 들먹이기까지 했는데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할 것 같다.


물론, 적어도 위에서 얘기한 저런 음식들을 주문하는 것은 편리해야 한다. 그래야 고객들이 부담없이 주문할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 편리함을 얻은 대신 점점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서 맛있는 것을 선택해 주면 우리는 그 요리, 재료 등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질 필요도 없어진다. 단지, 그 음식들을 먹었을때 나를 만족시켜주는지에 대해서만 느낄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해외든 국내든 할 것 없이, 낮선 곳을 여행할 때 우리는 일상 생활이라는 익숙함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많은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매사가 불편해지지만, 우리는 그 불편함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 도리어, 익숙하지 않은 데서 오는 그 불편함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내곤 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준다는 것. 앞에서 말했던 써브웨이의 메뉴들로 생각해 보자면, 처음엔 어렵더라도 계속해서 여러가지 조합의 재료를 주문해 먹어보면서 나를 좀더 행복하게 해주는 맛들을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광고 아닙니다 ^^;)


바쁜 현대인들은 생계를 위한 일들에 매몰되어, 그 이외의 것들은 그저 호기심의 대상이라기 보다 자신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순간의 유흥 거리로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격무에 시달린 후 퇴근한 자기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는 순간적인 만족감에 도취된 채, 전쟁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또다른 내일을 위해 겨우 잠자리에 드는 건 아닐까?


일상에서 호기심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아이때의 호기심을 되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아주 조그마한 관심사라도 만들어 낮선 일들을 해볼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러한 데서 얻는 익숙치 않은 불편함이 우리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만들어 주진 않을까? 삶의 활력을 찾아주진 않을까?


그걸 위해, 난 조만간 써브웨이를 한 번 더 가봐야 겠다. 물론, 썹픽 말고!


P.S. 내 와이프는 물론 써브웨이 샌드위치를 자꾸 먹는 걸 싫어할 순 있다. 살찐다고.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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