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런 입문기
어느 날, 러닝크루에서 새벽에 영실 오픈런을 가자는 글이 올라왔다.
나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 궁금해서 따라가게 되었다.
"오픈런"이란 새벽5시에 영실주차장에서 만나서 올라가는 일정이었는데,
새벽 다섯시?? 너무 이른거 아니야?? 그래도 다들 가니까 나도 고고!!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그 한라산 영실코스를 한번도 가보지 않아서 새벽 깜깜할 때 운전해서 가기가 좀 무서웠는데..
어떻게 하지.. 남편이랑 상의하다가 결국은 남편이 태워다주기로 했다.
그리고 올때는 크루에서 우리동네 사시는 분이 데려다주시기로.
갈때도 태워달라기엔 왠지 미안하고 부담스럽고 해서..
아무튼 그렇게 꼭두새벽 4시에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움직여 남편이랑 같이 새벽5시 영실주차장에 도착했다. 이미 깜깜한 속에 형체도 잘 보이지 않는 크루 분들이 몇몇 계셨고 또 속속 도착하셨다.
2024년 5월 1일 근로자의날이었다.
아직은 새벽 5시가 무척 어두운 때여서 미리 준비해오신 분들의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졸졸졸 따라갔는데 캄캄한 산행을 처음 해본터라 그 자체로 너무 재미가 있었다. 발 밑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귀쫑끗 하면서.
나는 탐험가 재질인가보다. 하하
초반에는 총 여덟명이서 줄맞춰 비슷한 속도로 가다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부분에서 전문가급인 4명은 앞서서 선두로 가고, 나포함 민간인급 4명은 천천히, 아니 생각보다는 빠른속도로 헉헉거리며 뒤에서 쫒아갔다.
평소 러닝을 하는 분들이라 아주 날쌘돌이였는데 그중 지인을 따라서 참여하신, 러닝을 안하는 한 명은 그 빠른 속도에 적응이 잘 안되셨는지 울렁거린다며 토하고 낙오해서 그 두명을 제외하고는 잘 올라갔다.
우와... 이렇게 한라산의 한 면을 경험하는구나 하면서 중간중간 병풍바위와 그림같은 풍경을 보며 올라갔다. 영실을 올라가다보면 나무로 데크가 잘 만들어진 길이 나와서 꼭대기에 다다르면 내내 달릴수도 있다. 산에서 달린다니.. 또 새로운 경험이다. 영실 윗새오름에서는 그게 가능하구나.
전문가분들은 올라가는 길에 포토스팟도 알고계셔서 사진도 예쁘고 멋지게 잘 찍어주셨고
꼭대기에서는 윗새오름 1700m 라고 적힌 비석이랑 나무 앞에서도 찍어주셨다.
우리는 그곳에서 각자 사진을 찍고 잠시 쉬었다가 내려가려고 보니, 저만치서 낙오했던 두분이 포기하지 않고 올라오고 있었다. 먼저 빠르게 올라가셨던 네명은 우리보다 더 멀리 달려서 남벽을 찍고 돌아오셨다. 대단하다. 우리랑 비슷한 속도에 더 멀리 다녀오시다니. 나도 언젠간 저 멀리까지도 다녀오고 싶다.
제주도에 여행오는 러너들에게 진짜 꼭 추천해보고 싶은 코스이다.
새벽5시, 깜깜할 때, 헤드랜턴 켜고 올라가서, 꼭대기에서 내달리는!! 영실코스
나는 이 후에도 몇 번 더 영실을 가보긴 했지만 곧 여름이 되었고 금새 밝아져서
역시 5월의 그 깜깜했던 첫 산행, 첫 번째 트레일런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혼자서는 절대 알수도 없고, 할수도 없었던 산행이라 너무 즐겁고 감사했다.
제주에서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될줄은 몰랐는데..
러닝크루와 새벽에 한라산을 뛰어다니다니
인생이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