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26일이 되기 전까지는
2025년 4월 26일 토요일 제주의 야크마을이란 곳에서 블랙야크 트레일런 대회가 있었다.
트레일러닝이란 트레일, 또는 탐방로, 사람이 다니는 포장되지 않은 길을 달리는 스포츠를 뜻한다.
작년에 제주에 1년간 살면서 러닝을 많이 하고, 러닝크루 분들을 따라서 한라산 영실 윗새오름, 고근산, 머체왓, 한라산둘레길 등을 달려보고 그 재미를 알게 되었다.
한라산 영실에서 첫 트레일런을 했던 2024년 5월 1일만 해도 나는 일반 러닝화를 신고 올랐었다.
그 후 산에서 달리는 트레일런을 하려면 트레일러닝화가 필요하구나 생각만 하고 있다가, 머체왓 트레일런 일정이 6월 6일로 잡힌김에 급히 인터넷으로 적당한걸 하나 구매했다.
어느날은 고근산 트레일런 일정이 있다길래 거기도 몇번 따라가봤다. 그때까지도 그 재미에 빠지진 않았다.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근육도 생기고 숨도 더 가빠져서 일반 러닝할때 훈련이 되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트레일러닝을 해서 적잖이 놀랐다. 수요일 새벽 6시에 모이는데 런친자(러닝에 미친자)들이 이삼십명쯤 모이는것 같았다. 아니 그새벽에 산에서 달리겠다고.
생각해보면,
영실은 등산가는 개념으로 아무 생각없이 따라갔다가 꼭대기에서 갑자기 달리라니 달리게 되었고,
고근산은 러닝의 한 훈련으로 생각해서 갔는데 프로들이 많아서 꽤나 뒤쳐졌었다. 그래도 나는 런린이니까 억지로 따라가려 애쓰지 않고 적당히 돌다가 먼저 집에 왔다.
머체왓은 산을 올라가진 않았는데 생각보다 범위가 넓고, 앞사람만 졸졸졸 따라가야 하는 미로같은 숲이었다. 광경이 예쁘고 아름웠지만 그날도 엄청 재밌진 않았다.
그러다가 정말 그 재미를 알았던 날이 있었다.
네명이서 소규모 인원으로 한라산 둘레길을 가기로 했는데 그날 비가 꽤 많이 와서 원래 가려던 둘레길이 통제되어서 지리를 잘 아시는 한분의 인솔에 따라 근처 부근까지만 갔다가 내려오기로 했다.
비가 꽤 많이 와서 이거 가능한가 했었는데 금새 그치고 중간에 햇볕도 나고 개울도 지나고 풀숲도 지나는 동안, 산속 웅덩이에 물이 차서 그 웅덩이를 막 내질러 퐁당퐁당 밟아서 신발이고 양말이고 젖어가며 달리는 그 길이, 마치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강아지나 어린아이마냥 너무 재미있어서, 소리내어 재밌다 하하하, 재밌다,, 를 연발했다. 그리고 막 내달리다가 슥슥 지나가는 뱀을 밟을 뻔 하기도 했다.
내 삶에서 그렇게 입 밖으로 재밌다고 꺅꺅 거리며 말했던게 몇 번이나 있었을까.
40대가 넘어서는 아마 처음 아니었을까. 그날은 사진도 참 예쁘게도 나왔고 정말 잊지 못할 날이었다. 엄청 고되지고 않았고 1시간정도, 3.5K 코스였다. 그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트레일런이다. 아마 비가와서 재미있었던것 같다.
달리기 전 깨끗한 신발과 달리고 난 후 처참해진..
그 해 가을에 트랜스제주라는 글로벌한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었는데 제일 짧은코스가 20K 였다. 나는 20K까지 달려본적도 없고 아직 체력이 안될것 같아서 갈생각이 없었는데 크루에 아는 언니가 같이 가자고, 너 트레일러닝화도 샀는데 제주에 사는동안 한번 가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도전이 되어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그런데.. 우리 크루에서 아무도 그걸 접수한 사람이 없었다. 추가접수에 나만 덩그러니 접수해서, 안그래도 무섭고 걱정되서 갈맘도 없었는데 혼자라니.. 띠로리.
소심쟁이인 나는 취소해달라고 이메일을 보냈다. 얘네들은 국제적인 대회라서 본사가 어디인지 영어로 소통하고 홈페이지도 우리나라처럼 재깍재깍 돌아가지가 않아서 불편했다. 물론 신청도 영어로 하고 해서 그 불편함에 등록을 못한사람이 많았던것 같다.
그래서 그 대회는 취소하고 후회도 없었는데, 아니 사실 남들은 신청자체도 못해서 못나갔던 그 대회가 아주 약간 궁금하고 아쉽던 차에.. 야크마을에서 하는 블랙야크 트레일러닝 대회가 다음해 4월에 있다고, 접수를 시작해서, 내년이면 나는 제주를 떠나고 없을텐데.. 뭐 일단 사람일은 모르는거니 신청이나 해보고 올수없는 상황이면 취소할 생각으로 신청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예정대로 나는 1월말에 제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왔고, 3월부터 풀타임 근무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는데.. 그래서 블랙야크 트레일러닝 대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서울오면서, 남편에게 이 대회를 작년에 신청해놨는데 갈수있음 가고 아니면 취소하려고 한다고 몇번 언급하며 눈치를 살살 봤더니 딱히 해라 말아라 말이 없길래, 오, 긍정적이다 싶어서, 그럼 나 항공권 끊어야겠다 하고 말하고 얼씨구나 하고 끊어놨다.
제주에 살면서도 안가본 트레일러닝대회를 서울사는 사람이 비행기까지 끊어가지고 온다고?
이게 무슨일이냐. 나는 그렇게까지 트런에 미친자는 아닌데.. 나 그냥 아직 10K 마라톤만 하는 런린이인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력이 좀 좋아지면 좋은 장비를 구매하기로 하고, 일단 싸구려 트레일러닝 베스트를 사가지고 내몸에 맞게 옆구리에 고무줄밴딩을 넣어서 리폼도 하고, 플라스크 물병도 사고, 어떤 화려한 옷을 입을까 이것 저것 꺼내보고, 그 옷도 리폼하고, 모자는 뭘로 쓰고, 썬글라스는 뭘로 쓸까 고민하고, 양말은 어떤게 좋을까.. 이런 저런 재미나는 고민을 많이도 했다. 아, 당근으로 꼭 필요한 필수품인 방수자켓도 장만하고, 은박블랭킷도 꼭 필요하다고 해서 쿠팡으로 구매해놨다.
트런대회는 그게 재미있는것 같다.
대회를 기다리면서 용품들을 준비하는 재미, 설레이는 재미, 게다가 비행기까지 탄다면 금상첨화다.
완전 여행아니니. 럭키비키 아니니. 게다가 나 혼자라고? 가족들 없이? 애기엄마가? 워킹맘이? 아하핳하하. 실성한 자처럼 실소가 마구마구 새어나온다. 아마 나의 기쁜 실소가 보인다면 핑크색, 주황색, 노란색, 초록색 싱그러운 풋풋한 색일것 같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트레일러닝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소풍같다는 말을 한다.
마라톤은 한시간 이상 본인이 낼수있는 최고속도로 지속적으로 계속 달려야하는 고된 일정이라면, 트런은 오르막은 걸어가고, 내리막은 달려가면서 그것도 무조건 자연속에서 진행되는거라 산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그 숲내음과, 비오면 비맞고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숲속에 약간 고된 소풍을 다녀온 느낌이다.
강인한 으른들의 소풍이랄까.
얼마전에 나는 작년에 접수한 그 블랙야크 트레일런을 다녀왔다.
그 과정들은 다음에 다시 기록하겠지만 생각했던만큼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다.
무릎부상이 아직 덜 회복되어서 내려올때 고생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충분히.
나는 블랙야크 트런 대회를 다녀오기 전까지는 나는 아직 트런쟁이는 아니었다.
블랙야크 트레일런 대회를 경험하고 와서야 비로소, 그 재미에 흠뻑 빠졌다.
비행기타고 혼자서 다녀오는 그 여행중에 내가 좋아하는 산을 달리는 소풍같은 대회라니.
어찌 기쁘지 않을수 있으랴. 표정에 행복이 뭍어난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다음에 가고싶은 두가지 대회를 또다시 살짝이 언급했는데,
있지있지 하반기에 내가 가고싶은 대회가 있는데, 9월에 태백트레일이랑, 10월에 트랜스제주(작년에 취소한.. 그것) 가 있거든,
나는 일부러 밑밥깔고, 약을 좀 치려고, 친구가 같이 간다고 하면 태백트레일을 같이신청하고, 친구가 그거 안한다고 하면 트랜스제주를 할까 생각중이라고 했는데
두개를 다 하란다. 오마, 왠일로? 아싸뵹!!
왜이러지? 내가 이번에 블랙야크 다녀오고 하는게 정말 신나보였나보다.
우리남편은 내가 행복해하면 제일 행복한 사람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번주에 그 두가지를 다 신청했다고 한다.
트랜스제주는 이미 마감됐었는데 태백트레일접수 후에 다시 들어가봤더니 어떻게 갑자기 접수가 되는가 싶더니 결재까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아는 지인에게 트랜스제주 마감됐었는데 나 접수가 된것같다고 말했더니, 자기가 취소한거 내가 접수한거 같다며, 와우, 그분은 20K 취소하고 70K 접수 성공했다고 한다. 와우 이런 기적이!!!
9월, 10월이 또 너무 기다려진다.
이제 부상이 없도록 엄청엄청 신경써서 준비해야겠다.
남편에게 나의 행복한 표정을 또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