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0살까지만,

by 다정한햇살


"8년 만에 처음이야. 당신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그렇다. 8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부부 싸움을 했다. 그때마다 결국 먼저 사과하는 건, 남편이었다. 나의 주장은 "내가 이렇게까지 화를 낸 건 잘못이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내도록 원인 제공한 건 당신이야. 99% 당신 잘못이라고 생각해."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결혼의 과정이 늘 아프고, 가끔 지겹고, 꽤 지긋지긋했다.


우리 부부가 잘한 것이 있다면, 싸우고 화해하고, 화해하고 싸우는 이 과정을 지금까지 했다는 거다. 울며 소리치기, 침묵하기, 안경 던지기, 발차기, 집 뛰쳐나가기, 내가 또 뭘 했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고 보니 부끄럽다.


8년 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의 지랄맞음을 보고 겪은 우리 남편. 가장 큰 지랄맞음을 꼽으라면 "60살까지는 무조건 받아줘. 그 뒤엔 내가 받아줄게."라고 말해서 지금까지 이 약속을 방패 삼아 숨는다는 것이다.


호들갑이라고는 거의 본 적이 없는 남편이 얼마 전, 호들갑을 떨며 뛰어왔다. 한 손에 폰을 들고는 "여보 이것 좀 봐. 내가 당신을 더 이해하게 되었어." 내 눈에 그는 거의 유레카를 외치기 직전의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아닌데. 뭘 본 걸까. 그의 손에 들린 휴대폰 창에는 유튜브 영상이 있었다. 빨간 글씨로 '당신 옆 악마 절대 피해라' 내용은 '소름 돋는 소시오패스 8가지 특징' 자동으로 그의 멱살을 잡았다. 남편은 제발 한 번만 같이 보자고 했다.


부끄럽지만 영상을 보며 인정했다. 소시오패스의 특징이 나에게 많다는 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가 가장 심하게 고개를 끄덕인 지점은 '사과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다. 남편은 이날 이후, 가끔 나를 김소시라고 부른다.


오늘도 우린 냉전의 시간을 보냈다. 저녁을 먹다 투닥거렸다. 남편은 일단 아이들을 재우고 9시에 대화를 하자고 했다. 아이들을 재우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나는 이번에도 승리하리라.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자기 마음 말고, 상대 마음이 뭔지 이야기 나눠보자" 이 방법은 신혼여행이 이혼 여행이 될뻔한 사건에서 우리를 구해 준 대화 방법이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마음을 서로가 이야기했다.


남편의 상황을 생각해 보고, 그의 마음을 이야기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나도 신기했다. 남편의 마음을 오해하고, 그 오해가 진실인 것처럼 왜곡해서 생각하고 느끼는 치명적인 약점. 그 약점에 갇혀 남편을 비난했던 것을 사과했다. 남편도 당황했다. 진심 어린 사과를 처음 받아서.


이 밤을 기억하고 싶다. 물론 다시 김소시로 돌아가겠지만, 8년 만에 처음으로 다르게 반응하지 않았는가. 어쩜 이 반응은 8년 주기 설이 될 수도 있겠지만, 고무적인 일이기에 기록으로 남긴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던 9할은 당신 덕분이야. 고마워" 그 분위기에 휩쓸려 입으로 말할까 봐 가슴에 꾹꾹 눌러 둔 말이 있다. '여보. 이제 50살까지만 참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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