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고자 현재를 대충 살 수는 없었다. 마냥 해맑게 꿈을 좇기엔 현실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어깨가 무겁다 느낄 때가 많았다. 일도 잘 해내고 싶었고 도전 또한 좋은 결과를 얻고 싶었다. 이를 통해 깨달은 두 가지가 있다면, ‘인생은 병행’이라는 점과 ‘주체적인 시간 관리의 중요성’ 이였다.
레벨업을 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의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 번에 큰 노력을 하려면 힘이 들지만 작은 노력을 쌓고 쌓아, 노력에 가속화가 붙으면 노력이란 것도 꽤 해볼 만해진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가 바라는 바에 집중하고, 작더라도 나만의 목표를 세워 하나씩 실천해 나갔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이뤄낸 것이 없는데도 꿈에 한결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내 나이 스물아홉, 승무원이라는 꿈을 손에 쥐어볼 수 있었다.
사실 너무 가고 싶었던 회사는 2차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매년 서너 번씩 뜨던 공채가 당시엔 가물에 콩 나듯 1년에 한 번 떴고, 그 시간만큼 나는 ‘나이 많은 지원자’가 되고 있었다.
인생은 언제, 어떤 순간으로 무슨 기회가 올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언제 뜰지도 모르는 공채를 마냥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면접 노하우를 쌓자는 마음으로 다른 항공사에도 지원을 한 계기가, 내게 ‘승무원의 삶’을 경험하게 해준 회사와의 인연을 시작하게 해주었다. 4년 전, 합격 문구를 보고는 눈물이 터져 나오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대학 입시 이후 처음으로 스스로 얻어낸 값진 결과라는 생각에 많은 것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단박에 붙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 붙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사함도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라 더욱 가슴 찡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당시 탈락의 결과를 전해야 할 때마다 ‘나이가 많아 그런 게 아니냐’는 엄마의 쓴 위로가 꿈을 좌절시키는 칼날처럼 느껴졌고, 믿을 건 오로지 포기하지 않는 나 자신의 의지뿐이었다.
팀 페리스 ⌜타이탄의 도구들 Tools of Titans⌟
“나 자신만 납득시킬 수 있으면 충분하다. 세상에 당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찾아 헤매지 마라. 당신의 삶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당신이다. 그러니 당신이 스스로 현명해지면 된다. 언제나 당신 스스로를 향해 걸어라.”
그렇게 바라던 승무원이 되었는데….
어찌 된 것이 고민은 줄어들지 않고 점점 더 커지기만 했다. 낯선 세상(승무원의 삶)에 대한 적응은 나를 많이 내려놓아야 하기도 했고,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가고 싶었던 회사)에 대한 갈증은 해소되지 않아 복잡한 머릿속이 더 꼬여만 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엉켜 버린 머릿속, 나만 겪는 고통이 아니었다. 인정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섰다는 명백한 사실을 통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 시간이 ‘결말’이 아닌 ‘과정’이라는 희망이 생기면서 꽉 막힌 답답함을 조금은 편안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런 시간을 보낼 때 두고두고 꺼내 읽게 되는 책, ⌜타이탄의 도구들⌟.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독자들을 빨려들어 오게 한다. 최근 재독을 통해 느낀 감정은 살아가면서 이 책을 읽어보지 못한다면 모태 솔로로 생을 마감하는 만큼 안타까운 일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느리게 가야 빠르게 얻는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무의식이든 의식적이든,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승무원의 삶에 적응해가면서도 끊임없이 갈증을 느꼈고, 가고 싶은 회사의 공채가 뜨면 자석처럼 온 생각과 마음이 그곳으로 쏠렸다. 스케줄 근무로 이루어지는 불규칙한 패턴에 적응하는 것도, 매 절차 합격과 함께 정해지는 면접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눈앞에서 한순간에 목표가 사라지는 경험은 실로 이별의 느낌과 흡사하다. 나는 연달아 두 번을 같은 회사의 최종면접에서 떨어지며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을 맛봐야 했다. 한 번의 공채가 최종합격까지 3개월간 진행된다고 보면, 나의 6개월이 통으로 날아가 버린 셈이었다.
처음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는 국내선 새벽 쇼업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때였다. 설상가상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이미 같은 회사에 4번째 지원이었고 노력의 결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싶게끔, 최종면접까지 무사히 마친 나는 발표 전날부터 행복한 생일선물을 받게 될 거라며 미리 축하를 받기도 했다.
4번의 국내선 스케줄 중 3번째 스케줄에서 확인하게 된 탈락 소식. ‘3개월간 맘 졸이며 달려온 끝이 결국 탈락이라니’, ‘내 차례가 아니었구나’ 오만가지 생각들도 잠시. 비행기에서 손님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내가 실패를 체감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평소와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에 맞춰 나도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금방 괜찮아졌다. 목표를 잡고 다시 도전하면 되니까. 그렇게 나는 다음 공채에 다시 도전했고, 또 한 번 밟게 된 3개월간의 여정 끝에 주어진 최종면접의 기회. ‘이번이 타이밍인가?’ 후회 없는 면접을 보고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또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것보다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며 주변에서 내 꿈을 좌절시킬까 봐 그 부분이 가장 마주하기 싫은 부분이었다. 이뤄내고 싶은 도전인데 다른 사람들 말에 주저 앉고 싶지 않았다.
왜 그 산을 넘지 못할까, 어떤 점이 호감을 얻지 못한 걸까, 피드백해보고 부족한 점을 메꾸려 해봐도 쓰린 마음이 쉬이 위로 되진 않았다.
고영성∙신영준 ⌜완벽한 공부법⌟
“목표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그 도착지에 언젠가는 꼭 도착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언가를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리게 됐다. 가보지 못한 길은 그저 그 길로 가지 않았을 뿐이다. 해 보지도 않고 어설픈 생각으로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회피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꽃은 언제쯤 필까? Late Bloomers는 늦게 피는 꽃이라는 뜻으로 내가 참 좋아하는 단어이다. 미국에서 사용되는 의미로는 대기만성형의 사람을 일컫는다. ‘늦게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 꼭 나를 향한 단어처럼 느껴졌다. 미국에 사는 언니가 써준 편지 중 “Late bloomers are often the best flower”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남들보다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단어를 속으로 한 번씩 되뇌곤 했다.
계속되는 실패. 그리고 도전에 대해 일말의 주저함, 거리낌도 없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스스로 힘을 얻으려고 참 많이도 고군분투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