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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더언니 Jul 24. 2019

안정에 대한 갈구

그것 또한, 감사의 이유.

나의 가정은 많은 나날이 가난하였다.


엄마, 나 이거 먹고 싶어.

돈 없어.



그렇게 쌀밥이 아닌 좁쌀을 먹을 때가 많았으며, 어쩌다가 엄마가 좁쌀이 아닌 쌀밥을 해줄 때엔 언제 다시 좁쌀을 먹을지 모르기 때문에 밥을 세 그릇을 먹기도 하였다. 소풍을 갈 때엔 달랑 단무지와 햄만 들어있는 김밥이 너무 창피하여, 도시락을 휴지통에 다 버린 적도 있었으며, 중학교 입학할 때에 나에게 맞지도 않는 큰 교복을 중고로 물려받는 것이 너무 창피하여 며칠을 울었던 기억도 있다. 내가 아끼던 피아노도 팔아, 피아노를 치고 싶을 때면 나는 어두운 교회에 숨어 들어가 울며 피아노를 쳤고, 검정고시 최연소 수석 합격'이라는 타이틀도, 사실은 학비가 없어서 만들어진 타이틀이다. 아프다고 해도, 부모님은 병원에 나를 데려갈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꾹 참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네 식구가 단칸방에 살아서 나는 내 방을 갖는 것은커녕, 제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박스 저 구석에서 힘들게 꺼내는 것이 아닌, 옷걸이에서 혹은 장에서 꺼내는 것이 정녕 나의 소원이었다.







"스더 씨는 금방 또 어디론가 가버릴 사람 같아요."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이다.


나도 내가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돌이켜보니, 그렇지도 않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 인하여 떠돌아다닐 수 밖에 없었으나,

그 와중에 누구보다도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나날을 유학 생활을 하며, 많은 유학생들이 자신의 돌아갈 집을, 한국을 그리워하였지만.

나에게는 딱히 돌아갈 집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환경이 나에게는 당장 나의 집이었기에 왕복 티켓을 끊어본 적이 없고, 늘 편도로 끊었다. '어차피 집에 갈 건데, 여기 있는 동안은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라고 말했던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가능한 모든 것을 갖추며 살아가려 했다.




내가 빨리 결혼을 하려고 했던 이유,

여러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채워 넣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고,

내가 아끼는 옷을 예쁘게 걸어놓는 것,

내가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식물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모든 순간들.


나는 그렇게 늘 안정을 원하였다.







안정을 원하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감사와 불평을 선택해야 했을 때,

대신 최대한 불평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학비가 없어도 그저 그러려니. 감사해하려고 하였다.

좁쌀이 아닌 쌀밥을 먹게 되었을 때, 호들갑 떨며 기뻐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내려 마시는 순간이 황홀하여 눈물이 날 때도 있었고,

내가 그토록 원하였던 프랑스에서의 유학은, 매 순간이 기적이노라 틈만 나면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렇게 안정을 향한 갈구는,


어쩌면, 오늘의 나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는지 모르겠다.


어두컴컴한 교회에 숨어 들어가 쳤던 피아노는,

한 번도 피아노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 나에게 또 하나의 먹고살 수 있는 수단이며,

나의 마음을 쏟고 표현하게 해주는 큰 도구가 되었다.



돌아갈 곳이 없는 막연한 집에 대한 그리움은,

어떻게든 집밥이라는 것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으며, 집밥이 그리워서 하나 둘 시작한 요리는 다른 사람에게도 큰 기쁨을 주고 있으며,





내가 있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자 하다 보니,

'감각 있다.'라는 칭찬과 함께 주부들은 나에게 홈 스타일링을 묻기도 하고,

집주인들은 내가 살고 나가면, 꼭 다음 세입자들에게 집값을 더 올려 받았다.





외로움을 털어내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더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오히려 더 큰 위로로 채움 받게 되었고,

살기 위해 배웠던 나의 외국어는, 나의 특기가 되어 오늘도 굶지 않고 잘 살고 있다.




나의 곁을 지켜주는 반려동물과,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 친구 존재의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늘 감사한 기도제목이다.

 


결핍과 갈구에서 시작한 나의 모든 삶의 순간들.


불평이 아닌,

억지로라도 감사로 선택했던 모든 지난날들이 모아져 오늘의 내가 되었다.



나는,


오늘의 나에 감사할 것이고.

오늘도 최선을 다해,


감사의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려 한다.





Ps. 무릎과 허리가 다쳐 며칠 째 누워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나의 바쁜 삶을 잠깐 돌이켜볼 수 있게 해 주어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그래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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