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혹은 에필로그

by 스더언니

매일 비가 내리는 상해에 오랜만에 해가 떴나 보다. 그러나 지금 창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은 반갑지 않다. 나는 더 자고 싶다. 더 잘 수 있다. 하아. 그 놈의 암막 커튼을 사야지 하면서도 왜 늘 까먹는 거냐고. 더워서 아무렇게나 걷어차여진 여름 이불을 다시 끝까지 내게로 끌어올리며 잔뜩 찡그린 한 쪽 눈으로 침대 한구석에 밤새 만땅으로 충전된 핸드폰을 슬쩍 눌러본다.


10시 53분.

민영이에게 메시지가 와있다. 숨이 가뿐 목소리로 “스더야, 전에 너 블로그에 올렸던 그 식당 어디었지? 거기 주소 좀 보내줘.” 독한 기지배. 누구는 11시까지 잠을 자도 부족한데. 7시 3분에 뛰고 있었단 말이지. 몇 번을 더 뒹굴다가 잠이 덜 깬 걸걸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왜, 남자 만나? 좀 이따가 링크 보내줄게.” 바로 답장이 왔다. “야, 너 아직도 자냐? 일어나 오늘 날씨 좋아.”

10시 58분.

그래, 더 자면 짐승이겠거니. 그러나 일어나서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내 이성과 나의 게으름이라는 본능은 이렇게 늘 사이가 좋지 않다. 뒤척거리는 인기척을 놓칠 리 없는 나의 조그마한 가족들. 어김없이 내 얼굴위로 점프하는 강아지 베베, 그리고 내 손바닥을 핥으며 뺨을 비비는 고양이 애기.


오늘도 하루가 시작됐다.

사료 옆을 맴돌며 비어있는 빈 그릇을 핥고 또 핥는 애기. 사료를 부어주니 베베가 달려 나와 일어서서 앞발로 내 다리를 안는다. “넌 안돼, 이따가 줄 거야.”

아직 몽롱한 정신에 커피를 붓자마자, 정신이 차려진다. 아, 맞다. 오늘 공연에 무슨 노래를 해야 하나. 혜리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오늘 우리 무슨 곡 해?” 그리고는 블루트스 스피커를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요즘은 아이유 노래와 볼빨간 사춘기 노래가 왜 이리 좋은지. 물줄기를 맞으며 “I’m twenty five~ 날 좋아한다는 걸 알아.” 파트에서 같이 따라 흥얼거리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넌 좋겠다. 25살이라.

몸과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샤워가운을 입었다. 화장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애기와 베베를 모른척 하며 다시 핸드폰의 홈버튼을 눌러 보았다. 혜리에게 아직 답이 오지 않았다. 혜리는 자고 있구나.


아까 민영이에게 보내주기로 했던 식당 주소와 링크를 알려주며 덧붙였다.

“오늘 남자 만나면 밥 먹고 아리네스로 데려와.”

“알긋다 가스나야. 효영이도 온대?.”

“아직 안 물어봤어. 물어볼게.”

곧 효영이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효영아, 오늘 민영이 남자 데리고 온대ㅋㅋㅋ 너도 올거지?” .

“언닝언닝, 잘 지내셨어용? 민영 언니 남자 데리고 온대요? 진짜? 오늘 저 야근 당첨 삘이긴 한데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가볼게요ㅋㅋ 10시 쯤에도 계실꺼죠? (꼭 계셔야 해요.ㅠ)”

“못 본지 며칠 됐다고ㅋㅋ 당연히 잘 지내고 있었징, 응 너 올 때까지 우리 아무데도 안갈게. 이따 봐~”


나, 민영, 혜리 그리고 효영이. 이렇게 우리 넷.


나는 오늘도 그녀들을 만난다. 솔직히 ‘몇 년의 우정’을 내세울 수 없을 만큼, 우리는 모두를, 그리고 서로를 알게 된지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지만, 그렇다고 많이 묻지 않는다. 울어도 ‘무슨 일 있어?’ 라고 먼저 묻기보다는, 그저 함께 와인을 마시며 토닥토닥 해주는 사이다. 누가 연애를 해서 연락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러려니 넘기는 쿨한 사이. 그러나 ‘헤어졌어.’라는 말 한마디에, 곧장 트렁크를 들고 와 그 놈 집에 있던 짐을 같이 빼주는 그녀들.

이 상해라는 땅에서 나를 더욱 나답게 해주는 소중한 그녀들. 나는 그녀들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