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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담아 Dec 31. 2022

해방기원일지-아부지편

대한민국 현대사 속 우리들의 이야기(1)


아버지와 쟁기


“아이고, 아이고!”

외로 누웠다 모로 누웠다 안방 구들장에서 아부지가 앓는다.

인기척이 있으면 ‘아이고’ 소리는 좀 더 커지고 잦아진다.

오늘 일 좀 했나 보다.


“오살헌다!”
머릿수건으로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며 밭일하다 말고 점심준비를 하러 들어오는 엄마가 구시렁댄다.
죄 없는 정지(부엌) 바닥만 부지깽이로 작살 날 판이다. 

“명종이는 새복부터 일어나 쩌 꼬랑밭을 뽈새 다 갈았드만 ...”

그리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무쇠팔 무쇠다리의 소유자 동네 삼촌들을 줄줄이 소환될 것이다. 

밭을 갈아야 뭘 심을텐데 쟁기로 댓고랑 갈고 안방에 댓자로 뻗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화풀이였다.

 

지리산 잔숨마저도 남김없이 바다로 잦아드는 곳, 21세기가 되자 바다가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 펜션들이 들어앉았다. 하지만 20세기 나의 고향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1929년 생 뱀띠의 청춘


울 아부지는 1929년 뱀띠 생으로 여수시에서도 한참 들어가는'면'단위에서 태어났다.

17세에 해방, 20세에 여순사건, 22세에 한국전쟁을 겪었다.

해방 후 경찰이 되고부터 아버지 인생은 꼬였다. 

곧 제주 4.3 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이 줄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슴을 조이며 지내던 할머니는 전쟁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산 넘고 배타고 또 산을 넘어 순천시내로 달려가 아부지를 끌고 내려왔다. 

삼대독자 목숨을 지켜 대를 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1948년 여순사건. 이 일대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가장 영향을 미친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오히려 한국전쟁보다 더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쳤다. <자료사진-헤럴드경제>


아부지는 말이 없는 분이었다. 경찰이었을 때 경험을 듣고 싶었지만 속시원히 듣지 못했다. 

아주 가끔 빨치산 토벌을 하러 갔던 지리산 이야기며  

북한군이 보잘것없는 화양면 골짜기를 샅샅이 훑을 때 토굴을 파고 숨어 지냈던 이야기며

사회주의자였던 문중에서 제일 똑똑했던 형 도움으로 총살을 면한 이야기며

지원도 없이 토벌을 명령한 상부지시로 지리산에서 뱀 잡아먹고

한겨울 감발하고 자연굴에서 토끼 잡아 연명하던 얘기며

조각 같은 이야기가 퍼즐이 맞춰진 것은 다 커서 현대사를 배우면서였다.


그렇게 아버지의 청춘은

총알이 빗발치는 대한민국 굴곡진 현대사 10년과 함께 

겨우 몸숨 부지한 것만도 천운으로 여기며 훌쩍 지나가 버렸던 것이다.


'오살헌다' 어쩐다 하면서도 어머니는 사기그릇에 반찬 하나하나 담고 따신 밥을 해서 안방에다 바쳤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욕은 아부지를 향한 것이라기보다 

댓고랑 갈고 남은 앞으로 갈아엎어야 할 남겨진 고랑들과 짠한 자신들의 신세에 해대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유산은 지독한 가난으로 고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단련된 정신과 아버지보다 나은 시대에  우리를  낳아주신 것이었다.





시대를 이길 수 없었던 개인의 삶


“그래서 아부지 빨갱이는 많이 잡았어?”라고 물으면

“뽈갱이가 어딨 다냐? 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성이고 동상들이제.”

섬진강이 끝나며 사람들의 터전을 만들어 준 구례, 광양, 순천, 여수는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

  공부할 사람은 순천으로, 돈 벌 사람은 여수로 모이던 곳이었다. 

그 사람들이 국군이거나 경찰로 북한군과 맞서 싸웠고,

토벌대와 빨치산으로 마주했던 것이다.

누가 그 사건과 전쟁과 사상의 편가르기와 빨갱이라는 프레임으로

희생당하거나, 희생을 강요하거나, 그것을 밑천으로 잘 살기를 원했을까?

적어도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니었다.


암울한 시대를 이기는 개인의 삶은 드물다.

이기는 방법은 타고나길 금수저로 나거나, 시대를 배신하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해방 후 78년 중 민주당이 집권한 15년을 빼면 대한민국의 나머지 63년은 보수정권이었다.

그것도 1987년까지 거의 42년이 독재정권이었다.

언감생심 본 대로, 생각한 대로, 아부지의 경험을 다 말할 수 없는 삶이었을 것이다.


신난 했던 자신의 청춘을, 

정신차려보니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훌쩍 지나버린 꿈 많았던 시간들을, 

되돌아 가긴 늦어버린 중년의 나이를, 

시대를 뚫고나가지 못했던 회한을, 

산골 농사꾼으로 '글렀구나'하며 술로 달랬을 울아부지를 나는 다 커서 이해했다.

그 시절, 흔하고 흔하게 만났던 아버지들의 무능과 무기력과 술주정을 

대한민국 현대사를 배우며 가슴 아파했다.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 빨치산이었던 아버지를 냉정하게 서술해 긴장감을 더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주인공과 우리 아버지는 서로 총부리를 맞댄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적'이었을까? '적'의 딸로서 얼른 사서 읽은 것은 나도 우리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서였다. 

아버지의 청춘이, 중년이 다시 그려졌다. 

그리고 그들의 청춘에 시대가 훼방을 놓았으나 꿋꿋하게 살아온 아버지 세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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