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도 독백으로 끝나는 자리
떠나기로 결심한 건 처음엔 화가 아니라 피로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선 통보한 날 바로 계정을 끊어버리기도 하고, 미련 없이 사람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나도 당일 퇴사를 택할지, 관례대로 2주를 줄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선을 그을지 망설였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려다 쉬운 사람이 되는 건 미덕이 아니다. 화를 삼키며 결정을 남에게 미루는 건 배려가 아니라 회피다. 때로는 부정이 필요하고, 때로는 비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정함이 가장 먼저 향해야 할 곳은 타인이 아니라 스스로라는 사실—그걸 잊지 않기로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말의 뜻을 천천히 깨닫는 과정이었다. 젊을 때 정신이 맑고 머리가 잘 돌아갈 때, 의식적으로 자신의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분노와 과한 연민이 튀어나와 주변까지 상하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이 결정을 다잡는 의식을 스스로에게 치르게 했다. 울분으로 등을 돌리는 게 아니라, 내 삶의 질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이별이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그와 마주 앉았던 날, 대화는 끝내 독백으로 흘렀다. “퇴사하겠습니다.” 내가 꺼낸 문장은 그 한 줄이 전부였다. 그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개인 사정이라고만 말할 생각이었지만, 더 묻기에 유럽으로 간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의 과거가 쏟아졌다. 독일에서 3년을 보냈다던 추억, 그때 만난 사람들, 인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회사는 손해야, 그래도 너에겐 기쁜 일이지”라는 멘트로 스스로의 온정을 연출했을 뿐. 인수인계 문서를 남겨 달라는 요구도 잊지 않았다. “그냥 대충 하나 정리해둬.” 그는 내가 무엇을 쓰든 읽지 않을 것이다. 그 문서는 다음 번 비난의 방패가 되거나,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첨부파일로 남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최소한의 기록을 남기려 했다. 내 일의 무게가, 내 시간의 흔적이, 누구의 무책임에도 훼손되지 않도록.
절차를 확인하려고 다시 묻자 그는 또 이야기를 바꿨다. 자기도 다 해봐서 안다느니, 퇴사와 무관한 훈계를 늘어놓더니, 어드바이저와의 소통은 자신이 맡겠다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내가 직접 알려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소동을 피하려는 선택이었고, 동시에 그가 남기고 싶어 하는 ‘내가 주도했다’는 흔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체념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늘 하던 대사를 던지다 말고 벌떡 일어나 나갔다. 문턱을 넘으며 남긴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냥 이메일로 누구한테 보내.” 한 사람의 마지막 날을 위한 지침으로는 참으로 가벼운 문장. 이어서 다음 주에 퇴사하는 사람 점심에 오라는 마음에 없는 안내가 따라왔다. 한 사람의 마침을 기계적으로 묶어 처리하려는 태도, 그 무심함, 아니 무례함이 마지막까지 나를 밀어냈다.
퇴사 당일에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주에 끝난 이슈를 다시 들고 와 미팅을 잡더니, 점심을 먹고는 가족 일이 있다며 사라졌다. 기차에서 접속하겠다는 약속은 예상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만 모니터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의미 없는 캐치업을 흉내 냈다. 그 뒤에야 HR의 엑싯 미팅이 잡혔다. 계정이 꺼지기 30분 전이었다. 왜 나가느냐, 언제부터 생각했느냐, 회사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남았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는 담담히 말했다. 입사 두 달 차부터였다고. 남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마지막으로 회사와 리더들이 잘하는 점을 적어 달라 했지만, 입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내가 본 비리와 불법의 단서를 조용히 건넸다. 미팅이 끝나자 로그아웃이 떴고, 나는 더 이상 이 회사의 직원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하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육아휴직 중이라 인사를 못했다는 동료였다. 싱가포르에서 뉴욕까지 재배치되며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 “독이 가득한 환경이었다, 특히 너의 매니저는.” “너의 탁월함을 알아보지 못한 게 안타깝다.” 마지막 순간의 확인이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내가 과하다고 느낀 감정이 사실은 정상 감각이었음을. 그녀는 베네핏과 비자에 묶여 여전히 남아야 했다. 그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같은 주 목요일, 또 다른 동료가 복귀 없이 곧장 퇴사했다. 유연성을 자랑하던 회사가 재택근무일을 강제 지정하고, 분기별 재택 주간마저 없애버린 탓이었다. 갓난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사정에도 예외는 없었다. 그 사이 내 매니저는 전에 말했던 그 동료의 송별 점심에 나를 얹어 초대했다. “점심 먹고 가라.” 무엇을 위한 자리냐 묻자 “그녀를 위한 특별한 점심”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눈은 끝내 마주치지 않았고, 표정은 마지막까지 냉랭했다. 꺼져버리라는 기색—그것이 이 조직의 작별 인사였다.
돌아보면, 통보의 방식도, 마지막 미팅의 태도도, 끝까지 이어진 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말했고, 나는 나의 현재를 지키려 했다. 인수인계를 부탁하면서 책임은 감췄고, 축복을 가장하면서 무심을 드러냈다. 회사는 한 사람의 퇴사를 하나의 일정으로 묶어 처리했고, HR은 마지막 순간에야 절차를 꿰맞췄다. 그래도 나는 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질서를 지켰다. 일주일의 여백을 남기고, 해야 할 사실을 사실대로 알리고, 기록할 것들을 기록했다. 남은 건 허무와 더러움, 그리고 확신이었다. 이 사람과 이 조직은 마지막까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떠나는 것이 옳다. 계정이 꺼진 화면을 한참 바라보다 창을 닫았다. 이제 정말 끝났다. 앞으로의 내 시간은, 더 이상 그들의 독백에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