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mforter
May 08. 2022
언젠가 막 결혼을 한 선배에게 물었다.
"결혼하면 어떤 점이 좋아요?"
"더이상 결혼할지 말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제일 좋다."
졸업도 비슷하다. 고대하던 박사졸업을 하고 학위를 받았으나, 가장 큰 장점은 더이상 '졸업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이걸 계속 해야 해, 말아야 해'하는 의구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일 뿐, 내 생활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졸업자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역시나 "너 졸업하고 뭐할 거니?"인데, 여지껏 나의 대답은 "글쎄요, 뭘 해야 할까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저 남들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가고, 중학교 졸업하면 고등학교 가듯이, 나에겐 대학원이 그런 의무교육의 연장처럼 당연하게 느껴졌다. 이 길로 들어섰으니 갈 때까지 가는게 수순이라 생각해서 이 길을 걸어온 것이지, 딱히 무엇이 되거나 무엇을 이루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생각하기를 피해왔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쩌면 매사에 목표를 정하지 않는 것이 나의 본성같기도 하다. 위험회피가 극심하여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지 않는 전략이라고나 할까. 덕분에 한 우물만 드립다 파서 나름 한 분야에 대한 자격요건을 갖추게 된 것이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성실함은 갖추고 있어서, 그 성실함을 좋게 봐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도전을 피하면서도 나름 좋은 기회들을 많이 얻었다. 하지만 이제 학교의 울타리를 완전히 벗어나 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고자 할 때, 그러한 수동적인 삶의 자세로는 더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멈춰있는 느낌이다.
임상심리학자로서 병원에서 오래 임상 경험을 쌓은 것이 나름의 장점인데, 학교에서 자리를 잡을 때 이러한 경력은 크게 쓸모가 없다. 일찍이 학교에 자리를 잡으려는 포부를 품었던 사람들은 그동안 좋은 논문을 쓰고, 실적을 쌓는 데 심혈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러니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겐 기회가 없냐고 푸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애초에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그 자리에 부합하지 않는 종류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지금부터 학계에서 요구하는 자질을 갖추기 위해 연구에 투신할지, 다른 길을 찾을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이 마흔이 다 되어서도 '너 커서 뭐될 거니'의 질문에서 자유로워 지지 못했고, 어쩌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 고민을 하고 있을 것 같다.
며칠 전에 엄마가 잠깐 다녀가셨다. 넘치는 에너지와 넉살로 무장하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둘째 외손주를 향해, "쌩쌩이는 커서 큰 인물이 될 거야. 장군감이다."하셨다. 나는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남달랐던 부모님에게 '엄마. 나 아무 것도 아니야. 뭣도 아니야. 그러니 제발 이제 그만 좀 포기해'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내내 부모의 자랑거리였던 딸내미가 늦은 나이까지 꾸역꾸역 공부해서 겨우 졸업하고, 애 낳고, 기르고, 일도 살림도 뭐하나 똑부러지게 해내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평범한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열이 뻗쳤다. 언젠가부터 나는 나의 성취에 대해 부모님께 언급을 삼가하였다. 혹시나 그게 단초가 되어, 남다를 것 없는 작은 성취가 부모님의 체면치레를 위한 요란한 포장지가 되고, 훗날 내가 뭔가 큰 인물이 되어 줄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지 않기 위해.
나는 아이들을 옹호한답시고 언성을 높였다. "되긴 뭐가 되. 그냥 땡땡이는 땡땡이가 되고, 쌩쌩이는 쌩쌩이가 되면 되는 거야." 그것은 아이들을 위한 발언이었다기 보다는, 해묵은 나의 자기주장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엄마가 바랐던 그런 자랑스러운 사람은 되지 못할 거라는, 희망고문의 폐기 조치였다.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뭔가가 되기 위해 사는 삶을 더이상 지속할 수가 없고,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관계 없이 내가 그럴 깜냥이 안된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받아들였다.
뭐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지난 경험들이 의미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처음 출판프로젝트에 응모했다 떨어졌을 때, 상당히 의기소침했다. 그게 첫번째 도전이었을 뿐인데도 좌절감이 밀려 왔다. 도전하지 않는 나에게 실패는 그토록 낯설고 두려운 무엇이었다. 돌이켜보면, 급하게 쓰느라 구조가 갖추어지지 않은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다. 여하튼 좌절을 뒤로 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글쓰기도 중단하였는데, 뜻밖의 기회로 전자책을 출간하게 되고, 그 여파로 종이책 계약도 하게 되었다. 한동안 종이책으로 출간할 원고를 다시 퇴고하며, 글과 글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가다듬는 작업으로 시간을 보냈다.
언젠가 한 tv 프로그램에서 발레리나 강수진님이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에게 조언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퍼포먼스의 완성도는 동작과 동작을 열결해주는 부드러움에 달려있다고. 한 동작, 한 동작을 수행하느라 조급한 상태에서 벗어나 전체 그림을 그리고, 리듬에 몸을 맡기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랜 시간 묵혀두고 여러번의 퇴고를 거치면서 중구난방이던 글은 정돈되고, 전체적인 흐름이 다듬어지면서 내가 전하고자 하던 말들도 더 분명하게 드러날 기회를 얻었다. 그러니까 출판프로젝트에는 당선되지 못했으나, 나의 도전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공들인 시간은 헛되지 않다는 것을, 꼭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형태로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내 안의 무언가 쌓이고 있고, 언젠가 때를 만나 빛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려고 한다.
또 어딘가에 자리를 잡기 까지, 내가 가진 자질이 어떤 쓰임을 찾기 까지, 앞으로 수많은 좌절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크게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크게 낙심하지 않고, '탈락하셨습니다'는 멘트는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안도하며 살던 날들과는 안녕을 고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탈락과 탈락과 탈락의 끝에 내가 있게 될 곳이 어딜지 겸허하게 기다릴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뜻밖의 이벤트가 일어나서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것이라는 공상을 내려놓고, 마음을 먹고,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가는 그 과정을 충분히 이행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