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친구야!
그 시절 불안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럴 때 나는 계획표를 꺼냈다.
볼펜을 쥐고 시간을 나누며, 하루를 조각냈다.
계획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현재에 손잡이를 하나 더 만드는 일이었다.
이 습관은 아마 고 3 때 부터 였을것이다.
독서실 책상 앞에는 늘 이런 문장이 붙어 있었다.
‘사당오락, 하루 네 시간 자면 합격하고 다섯 시간 자면 불합격한다.’
엉덩이로 버티는 것, 오래 앉아 있는 것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불면증은 늘 곁에 있었다.
밤이 되면 잠은 오지 않았고, 누워 있는 시간만 길어졌다.
그래서 학원에서 말하는 공부량조차 이상하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어차피 깨어 있는 시간이라면, 차라리 뭔가를 하는 편이 나았다.
나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1.5배 속도로 듣고,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강의를 듣기 전, 반드시 그날의 계획표를 먼저 썼다.
이상하게 계획을 세우고 있으면, 마치 공부를 이미 끝낸 것 처럼 불안이 잠시 가라앉았다.
계획의 힘이 아니라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덕분이었다.
실제 하루 공부 시간은 네다섯 시간 남짓이었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학생이 되는 시간은 밤 여덟시.
새벽 한 시가 나의 또 다른 퇴근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직장인과 수험생을 오가며 이중생활을 일 년 반 가까이 이어갔다.
주말에는 밀린 잠을 몰아서 자고,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평일에
채우지 못했던 공부량을 채웠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아이들과 함께 보냈다.
사실 나는 이 시간을 위해 한 주를 버텼는지도 모른다.
책상 앞에서 버틴 시간의 보상처럼,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엄마였다.
불면증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수험 생활의 불면증은 옆에서 잔소리하는 하는 친구 같았다.
“아직 잘 시간 아니야”
“조금만 더 하자”
넘치는 공부량에서는 내 친구도 더는 힘을 쓰지 못했다.
나는 불면증을 없앤 것이 아니라, 다루는 법을 배웠다.
흔들리는 지하철은 요람처럼 편안했고, 옆좌석 사람들의 어깨는 폭신한 베개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내 어깨에 기대어 잠들면 기꺼이 어깨를 내어준다.
예전 내가 받았던 호의를 다른 사람에게 돌려 주고 있다.
이제 불안이 스물스물 기어 올라올 때면 밀어내기 보다 받아들인다.
책상 위에 계획표를 짜기 위해 볼펜을 올려 두며 생각한다.
‘아, 또 시작이구나’
계획을 세운다는 건, 완벽해지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더 나은 내가 될 준비를 하겠다는 신호였다.
그렇게 있는 내 모습 그대로를 바라 보게 되었고, 어디서든 눈만 감으면 잠들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불면증을 완전히 이긴 건 아니었다.
다만, 이 친구를 더 이상 부담스러워 하지 않게 되었다.
‘반갑다 친구야! 같이 한번 가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