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월급으로 만든 연금저축
벌써 회사에 들어온지 20년이 지났다.
입사하고 난 지역 영업기관으로 발령이 났다.
첫 월급을 받은 날, 은행에 갔다.
연금저축계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시기 젊은 나이에 연금을 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적금'이나 여행을 이야기 했지만, 나는 '노후'를 먼저 생각했다.
세제 혜택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금저축은 내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보증서 같은 거였다.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가게가 경매에 넘어갔다.
건물주가 가게를 담보로 도박을 했고, 빚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부모님은 보증금 하나 받지 못한채 하루 아침에 생계를 잃었다.
성실히 살았다는 사실은 아무런 보호막이 되지 못했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이 속담이 무색해 보였다.
부모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 독서실에서 생활했다.
그때 나는 삶은 언제든지 통제 불가능해 질 수 있다는 걸 배웠다.
가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언제가 제일 힘들었어요?"
엄마는 늘 같은 대답을 하신다.
"난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못살것 같아."
TV속 드라마였다면 그 끝은 해피앤딩이겠지만,
현실은 굉장히 냉정했다.
열심히 살아 오신 부모님이지만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늦은 나이까지 일을 멈추지 못하게 했다.
나는 바로 옆에서 그 시간을 보며 자랐다.
젊어서 돈이 없는건 버틸수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줄어드는 노후의 가난은 버티기 어려울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법적으로 쉽게 꺼내지 못하는 연금저축을 가입한 것이다.
미래의 내게 지금의 나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선택은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노후를 일찍 준비했다는 건 잘한 일이었다.
하지만 은행에서 알아서 돌려주겠지 믿고 방치했던 건 나의 무지였다.
수익율은 저조하다못해 처참했다.
예금, 채권 중심의 원금 보전에 집중했던 결과였다.
돈공부를 시작하고 연금의 중요성을 알았을때야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걸 배웠다.
불안은 나를 저축하게 했지만, 공부하지 않은 책임까지 져주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