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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May 28. 2019

마음은 청춘이오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구나

어르신들이 '마음은 청춘이오'라고 말할 때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들이 '너희들은 아무것도 안 꾸며도 그대로 이쁘다'라고 할 때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살아가는 해가 더해갈수록 어르신들이, 선생님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점점 더 실감하는 나이가 되어가겠죠.


어릴 적 저는 목소리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업 시간이 거의 떠들지 않는 편인데 친구가 수학 문제를 물어봤다가 대답해주다가 걸려 선생님에게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도 못한 채, 귀싸대기를 맞았죠. 억울해서 그래서 계속 울었더니 결국 나오라고 하더군요. 그간의 그 선생님의 차별적인 행동은 물론 내가 왜 떠들었는지 이유를 물어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차근차근 따졌죠. 결국 크게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만약 목소리가 작았다면 그 정도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목소리 관련해 또 다른 일이 기억납니다.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 사정을 알고, 제 마음을 헤아려준 선생님이라 더 슬펐어요. 다행히도 임시로 오신 선생님이 너무 착해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 자리를 금방 잊고 잠시 오신 선생님에게 잘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함께 할 수 없는 일, 어느 날 선생님이 떠나가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소식을 듣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렇게 착했던 선생님이 떠나면서 제게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목소리를 줄이라고 했던 메시지가 떠오릅니다. 착한 선생님 마저도...


저도 목소리를 줄이고 싶었어요. 친구들도 이따금 대놓고 말하니까요. 수업 시간에 잘 떠드는 편이 아닌데 다른 아이들보다 큰 목소리로 인해 친구에게 대답하다가 잘 걸려 골마루에서 손을 들고 있었던 적이 한두 번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목소리를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했습니다. 저 자신도 제 목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나 선생님마저 제 목소리의 단점을 이야기하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나도 줄이고 싶다고'하며 항변했죠.

그러나 그들에게는 나의 목소리가 핑계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다큐멘터리에 목소리, 목젖 등에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 된 적이 있었어요. 제 기억은 그래요. 이 기억이 정확한지, 아니면 제 구미에 맞게 제가 가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목젖의 크기에 따라 목청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타인으로부터 상처, 스스로 상처를 내며 스트레스 받았던 일에 잠시나마 위로받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뿐. 오래가지는 못하더군요. 제가 본 내용을 설명해도 "그따위 논리가 어디 있어"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인가요. 자료를 찾아보고 싶지만 이제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목소리 관련 에피소드가 많다 보니 목소리로 인한 스트레스가 끊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목소리도 나이를 먹어가나 봐요. 요즘은 목소리 크다는 소리를 잘 안 듣는 편이네요.


최근 전화를 몇 번 했던 분이 다른 분하고 통화할 일이 있어 통화하다가 저와 통화해야 할 것 같아 저를 찾으면서 그분이 말하기를 '나이 먹은 분' 바꿔 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러오더군요. 속으로 '난 아직 어린데' 하며 전화 수화기를 건네받았고, 제 성격상 농담으로 그분에게 말을 던졌죠. '목소리에서 나이가 느껴지시나 봐요?' 그랬더니 그렇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는 목소리로 나이 때를 알아보는구나!', '난 아직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난 아직 미숙한 어른인데, 벌써 난 나이를 먹은 사람이구나'라는 이런저런 생각이 살짝 스쳐 지나가더군요.



Photo by Aron Visuals on Unsplash



세월은 하루하루 흘러 아기에서 아동으로, 청소년으로, 성년으로, 중년으로, 노년으로 넘어가겠지만 그 나이가 처음이니 그 나이에 맞는 현실에 적응해야겠지요. 매번 새롭네요. 이제는 제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에 대해 20대, 30대처럼 바락바락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구나'라며 인정하는 것들이 늘어나네요. 20대에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으면 벌컥 화가 치솟아 '저 아줌마 아니에요'라며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그 사실을 알려야 했는데, 지금은 별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희한합니다. 이제 조금은 내려놓은 것일까요.


머리에 새치가 나고, 지금까지 비슷한 체중을 유지하던 제가 나잇살이 찌고, 여러 가지 신체적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재작년부터 급격히 느끼고 있습니다. 목소리까지 나이 먹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 최근에 목소리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삶에서 자연스럽게 알아가네요. 사람들이 목소리로 나이를 파악하는데 솔직히 저는 제 목소리에 변화가 있는 줄 모르겠습니다.



정신적 변화, 신체적 변화는 언제 어디서든 올 수 있는데 그 순간을 받아들이며, 그 순간을 사랑하는 연습을 부던히 해야겠습니다. 한 살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것은 그 나이를 알아가는 일이며, 나를 알아가는 일이네요. 50대 저는 어떤 나일까요?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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