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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15. 2019

어른이지만 소아과에 다녀도 되는거겠지

엄마처럼 따뜻한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마음도 병도 치료받았다.

Photo by pina messina on Unsplash


어릴 적부터 내과, 이비인후과, 치과, 한의원 등을 줄기차게 다녔다. 기관지가 약해 한의원을 여러 군데 다녔고, 위와 장이 안 좋아 수시로 내과를 들락날락했으며, 세수할 때마다 코피를 흘려 급기야 코를 때우려 이비인후과도 다녔다. 하여간 잔병치레를 좀 했다. 그런 내가 최근 2~3년 정도 병원을 거의 가지 않는다. 알레르기성 비염 외에 병원을 찾지 않는다.      


서울에 상경해 한 지역에서만 9년 넘게 정착해 살았다. 그곳에 살며 주변 한의원, 내과, 치과, 정형외과를 두루두루 다니다가 난생 처음 소아과도 다니게 되었다.   

     

  



감기 증상으로 내과를 내방했다가 기관지가 약하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처방 내리기를 주저했다. 왜 그랬는지 딱히 모르겠다. 약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것으로 생각해 조심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이 병원은 나하고 안 맞는가 봐’.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는데, 내 눈앞에 소아과 입간판이 들어왔다.  

    

소아과는 어린이만 다니는 것으로 생각해 미처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릴 때도 소아과를 간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소아과에서 진료받고 싶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올라가는데 초조했다. 아이들을 진찰하는 소아과에 과연 어른이 들어가도 될까 싶어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진찰받고 싶은 욕심에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저런 병원에 다녔지만 돌이켜보건대 소아과는 다녀본 적이 없어 더 호기심이 불끈 달아오른 지도 모른다.   

   

Photo by Shitota Yuri on Unsplash


문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도넛 모양의 소파, 미끄럼틀, 아이들이 즐겨보는 만화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분위기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진료를 기다리는데 여느 병원들과 다른 느낌이었다. 나쁘지 않았다. 신발 벗고 들어가는 병원이 그저 좋다. 신발을 신은 체 진료하는 것보다 쾌적한 느낌이 든다. 접수하고 기다리는데 환자들이 아이라 내심 소심해지고 미안해졌다. ‘과연 어른이 진찰을 받아도 되는가?’ 그런데 나와 그리 멀지 않은 자리에 할머니가 보였다. 안도가 되었다.     



진찰 시간이 돼 선생님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우리 엄마보다 조금 젊으신 의사 선생님이지만 엄마처럼 느껴져 마음이 편안했다. 엄마처럼 포근한 느낌의 선생님을 만난 기억이 없다. 대부분 남자 의사 선생님이었으니까. 대부분 의사 선생님은 무뚝뚝하거나 병명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안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서도 도무지 진찰을 받는 것인지, 상태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선생님은 달랐다. 미소 지으며 이것저것 살펴보신 후 설명해줬다.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한다는 느낌이 전달되었다. 내과에서 처방 전을 내릴 때 망설였던 그 의사 선생님과 달리, 알약 개수도 훨씬 적게 처방했는데 금방 회복이 되었다. 그렇게 콧물이 주룩주룩 흐르거나 감기에 걸리거나, 기관지가 약해 기침을 자주 하거나 아픈 날, 소아과를 찾았다. 꽤 몇 년간 소아과를 다녔다.


   

몇 년간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꾸준히 진찰받으니, 간단한 설명만 해도 나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절한 처방을 내렸다. 어느 날에는 자녀분에 대한 고민도 나에게 털어놓았다. 의사 선생님하면 딱딱하고, 범접할 수 없고, 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치부해버렸는데 그 소아과 선생님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은 엄마처럼 포근한 소아과 선생님한테 진찰을 받을 수 없다. 그곳으로부터 이사했기 때문이다. 이사를 와 이사한 지역병원에 찾아갔지만 회복되지 않아 결국 지하철을 타고 소아과에 가 진찰을 받있던적에 있었는데 금세 좋아졌다. 지금 거리가 좀 있어 거의 가지 않는다.


그 소아과 의사 선생님에게 굳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나의 과거 이력을 아시고 금방 치료하는 것을 보면서 주치의 선생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곳에 정착해 오랫동안 산다면 나만의 주치의를 찾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내과에 가 처방을 내릴 때 주저하던 의사 선생님 덕분에 소아과를 갔고, 그곳에서 따뜻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지금도 열심히 진찰하고 계시겠지. 궁금하다. 언제 아프면 한번 가야겠다.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은 무뚝뚝하고, 말이 없고, 병명을 잘 설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소아과 선생님을 만나고 ‘이런 의사 선생님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소중한 분이다.     


소아과를 어른이 가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 소아과를 다녀본 적이 없어 어른이 소아과를 가면 안 되는 줄 알았다. 만약 어릴 때부터 다니던 소아과를 성인이 돼도 계속 다닐 수 있다면 굳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환자의 상태를 잘 알지 않을까. 만약 어릴 적부터 환자와 의사 관계가 이어져 온다면 의사 선생님을 낯설어하기보다는 친구처럼 대하지 않을까. 병원이 병을 치료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치료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환자와 의사 관계는 중요 부분이라 생각한다. 난 소아과에서 병도 마음도 치유하였다. 같이 진료를 보던 아이들에게서도 마음을 치유받았다. 병원 진료 후 대개 병원 바로 아래 약국에서 아이들을 종종 다시 만나는데, 어느 날 한 아이가 나를 쳐다보며 뚜껑이 있는 과자를 열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내 안에서 잔잔한 감동의 파도가 너울처럼 번져나갔다. 마음이 치유받았다. 타지 생활의 외로움이 일순간 무장 해제되었다. 소아과에서 만난 아이로부터...


     

소아과에서 진찰하면서 마음도 병도 치료받았는데 이런 내가 소아과를 다녀도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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