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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Oct 07. 2019

아이로부터 배운다

마음이 이끄는 데로



Photo by Ashton Bingham on Unsplash

주 5일 정도 비슷한 시간에 초등학교를 지나쳐간다. 지나가는 시간이 점심시간쯤이다. 그 시간에 보통 아이들은 운동장을 누비며 축구를 하거나, 운동장 끝 가장자리에 설치된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을 타거나, 그네를 타거나, 자신만의 놀이를 만들어 뛰거나, 나무를 주워 놀이로 승화시켜 친구들과 어울린다. 순수한 눈망울, 순수한 웃음,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젠 지나치는 길에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고,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머금게 된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이들은 모래 한 가지만으로도 놀이를 만든다. 아무거나 놀이로 만들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본다.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데로 깊이 없이 자신의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을 통해서 반성하게 된다.           



청소년 시기에 하루빨리 성인이 되기를 바라며 자랐는데 막상 성인이 되었을 때는 기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성인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었다. 어릴 적 많은 부분을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의지했던 것에 비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스스로 결정하고, 고민하고 해결할 일들이 잔뜩 쌓여만 갔다. 한 가지 생각에 온갖 잡생각들이 집어삼킬 듯 내 안으로 용솟음쳤다. 생각이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나가면 좋으련만 절대 그러는 법이 없었다. 생각은 수만 가지를 뻗어 결론을 이르지 못하게 하거나 주저하게 만들었다. 아이처럼 순수성은 없어지고, 안 되는 이유만 만들며 가짓수만 늘어났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나는 순전히 남자아이들을 이기고 싶어 제기차기에 열중한 적이 있었다. 학교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에도 제가 하나 들고나가 제기차기에 열을 올렸고, 방과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쉼 없이 제기차기를 했고, 밥 먹은 후 끊임없이 제기차기를 연습했다. 그저 제기를 차고 싶었고, 남자아이들을 이기고 싶다는 마음에 다른 생각이 치고 들어올 겨를 없이 제기만 열심히 찼다. 그렇게 열심히 하니 나중에 남자아이들을 쉽게 이겼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러지 못했다. 무엇을 도전하기 전, 수십 번 생각하고, 멈추기를 반복했으며, 무엇인가 도전을 하면서도 도전 속에서 그 이외의 것들을 고려하면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중간에 멈춘 일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면 실패자, 패배자로 스스로 결론지으며 부정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석연치 않아했다.   



  

지나쳐 가는 초등학교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아이들로부터 삶을 배운다. 아이들은 좋아하면 그 일을 그저 한걸음 떼 시작하고, 계속 반복적으로 한다는 것을. 미끄럼틀이 좋으면 수십 번 미끄럼틀 오르기를 반복하며, 모래가 좋으면 모래 놀이를 수없이 한다. 그저 다른 것이 들어설 자리 없이 오로지 그 시간에 몰입한다.         

  

한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올봄에도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는 그네 주변에서 늘 놀던 사내아이는 올가을도 역시 그네 주변에서 논다. 그 아이는 그저 그네가 좋은가 보다. 가까운 미끄럼틀에 가서도 놀지 않는다. 그네와 그네 주변의 모래에서 논다. 그 아이는 그네 주변이 자신만의 공간이다. 그네 주변에 노는 것이 그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마음이 이끄는 데로 다른 것이 들어설 자리 없이 그저 그네 좋아 그네 주변을 노는 것일 것이다. 그네 주변에 주로 여자아이들이 노는 데도 그 사내아이는 신경 쓰지 않고 그네 주변에 머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나는 그 아이를 통해 나 자신을 비춰본다. 주변을 많이 의식하며 사는 나에 대해. 남을 의식하다 보면 내 삶이 뒤떨어진 것 같고, 무엇이든 잘 못 할 것 같고, 장점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게 된다. 그런데 살다 보니 생각보다 타인은 그다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알면서도 잘 안 되는 나의 생활 태도, 생각을 사내아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이 사내아이를 언제까지 볼지 모르겠지만, 그네 주변을 지나쳐 갈 때마다, 습관적으로 그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나는 어쩌면 아이에게서 나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아이처럼 살고 싶고, 아이처럼 실천하고 싶은 마음을. 사내아이처럼 마음이 이끄는 데로 신경 쓰지 않고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선생님이란 나보다 어른만이 선생님이 아니다. 아이에게서도, 자연에게서도, 주변 여타의 모든 것들이 될 수 있다. 그네 주변에 노는 사내아이도 나의 선생님, 나의 인생 스승이다. 아이처럼 마음이 이끄는 데로 갔으면 좋겠다. 요즘 종종 불안이 찾아오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아이처럼 마음이 이끄는 데로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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