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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Dec 03. 2019

꿈이 뭐예요? 왜 자꾸 물어요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을 갖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으레 아닌 자주 타인의 꿈을 서슴없이 물어볼까? 인생에서 꼭 꿈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일까? 나 스스로에게도 자주 질문했던 물음이다. 굳이 꿈이 있어야 하는가. 평생 자기를 알아가는 것이 한 사람의 여정인데 꿈이 있다면 좋겠지만 꼭 있어야 하는가는 물음표이다. 꿈이 있으면 목표를 정할 수 있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며 성장할 수 있다. 또한 목표를 이뤘을 때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꼭 목표를 향해 달린다고,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사람들이 묻는 그 꿈에 대해서 강박관념이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에게 대해 잘 모르고, 경험도 많지 않아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이 세상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이 꿈이 뭐예요? 물어보면 당당히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사람들의 질문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재능을 알고,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고,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사람들과 왜 같지 않을까부터 시작해 결국 나는 무능한가라는 질문을 하며 나를 점점 가두었다.         


 

그런데 살아보니 사람마다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못 찾을 수도. 아니면 이른 나이에 찾을 수도 있다. 이른 나이에 찾았다면 그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못 찾았다고 좌절하거나 의기소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꿈. 그것은 나를 찾는 과정에서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싫어했던 것이 어느 날 좋아하는 일로 바뀌는 경우도 있고, 못했던 일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잘하는 일로 둔갑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만나는 시간이 저마다 다를 뿐인데 우리는 너무 어릴 적부터 타인의 꿈에 대해 거침없이 묻는 것은 아닐까. 더 안타까운 일은 그 꿈이 대게는 직업과 연결되는 물음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면 나 자신에 대한 탐구와 나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학교가 끝마치기 무섭게 자연을 벗 삼아 산으로, 들로, 냇가로 가 하루 종일 놀다가 지쳐 집으로 돌아와 저녁 먹고 잠자리 들기 바빴다. 그런 나에게. 피아노를, 태권도를, 미술을, 독서를, 여행을 할 기회가 없었다. 나를 알려면 다양한 체험을 해야 하지만 그다지 폭넓은 경험보다 주변 환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이나 자연을 가지고 노는데 흠뻑 취해있었다.      



땅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은 돌이 아니라 최애의 장난감이었다. 놀이에 안성맞춤인 돌을 골라 친구를 이겨보겠다고 온 힘을 다해 비석치기나 구슬치기를 즐겨했고, 비닐봉다리를 뜯어 십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비닐 사이에 돌돌 말아 박카스 뚜껑에 꾹꾹 눌러 담아 동년배 남자를 이겨보겠다는 심사로 부지런히 제기를 찼다. 발에 힘을 주고 정성스레 선을 긋고 ‘동서남북’ 놀이며, 공기놀이며 항상 놀이에 미쳐있는 아이였다. 그런 내가 보이는 세상은 놀이 외에 그 어떤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일을 해본 적이 많지 않다.      



가난한 집안살림으로 학원 다니는 것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아이들의 환경은 대부분 비슷했다. 방과 후 학원을 다니는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 집과 학교, 친구 집을 오가는 일과로 하루 바삐 돌아갔다. 그러니 다른 세상에 대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집에 책이 많은 친구도 별로 없었다. 더욱이 가난했던 나는 학교 이외의 책을 구입해서 읽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꿈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을까. 그런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것은 혹시 잔혹한 일이 아닐까. 꿈을 물어보기 전에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그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경험을 더 늘려주는 것이 어른의 일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꿈에 대해 강박관념이 지나쳤다. 그렇게 자란 나는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중반까지 꿈이라는 단어에 속절없이 피폐해졌다. 그러나 지금 나는, 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을 살포시 내려놓게 되었다.      





꿈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먼저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가고자 하는 길,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보이기 시작할 때 그때 꿈을 정해도 늦지 않다. 왜 사람들은 응당 청소년, 아이들에게 꿈을 물어볼까. 그것은 청소년, 아이들뿐만 아니라 마흔, 오십, 육십 그 어느 나이를 막론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꿈을 발견하는 순간은 수많은 도전과 실패 속에서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늦은 나이에도 언제든 꿈은 다가올 수 있다고…….


특히 나 같이 많은 영역에 두루두루 비슷한 관심과 비슷한 능력을 보이기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늦은 나이에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수많은 실패와 도전 속에서 나는 한 가지 꿈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이는 말도 안 된다면서 하지 말라 한다. 누가 볼 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나는 기꺼이 하고 싶고 할 것이다. 그 길을 가기 위해 나는 오늘 글을 쓴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청소년에게도 어른에게도 너무 꿈에 대해 물어보지 않으면 어떨까요? 저 같이 꿈이라는 질문에 숨막혀하는 이들도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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