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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n 30. 2020

버티는 힘이 필요할 때

21번째 도전 끝, 당첨

Photo by Trym Nilsen on unsplash


경영을 전공한다고 경제신문을 정기적으로 구독할 때였다. 매주 경제 지식에 대한 낱말 퀴즈가 조그마한 지면을 채웠다. 상금은 무려 당시 1등 30만 원, 2등 15만 원으로 당첨되면 바로 현금으로 입금되는 이벤트였다. 나에게는 대단한 이벤트였다.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쉴 새 없이 해야 했으며 더불어 장학금을 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 기억은 별로 없다. 수업과 수업 사이의 빈 시간은 분주히 도서관으로 달려가 무언가를 해야했으며,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병행했다. 그렇게 나는 돈이 필요했다. 그런 내게 교내에서 하는 마라톤 상금이나 경제 신문에 나오는 상금은 탐낼만한 것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 공모전 활동을 할 생각이나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 아쉽다. 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벅찬 하루였다.



어쨌거나 상금에 눈이 어두워 매주 경제신문지의 낱말 퀴즈에 과몰입했었다. 지금은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이벤트에 참여한뒤 온라인으로 당첨 결과를 알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신문에 나온 낱말 퀴즈에 정답을 적어 가위로 자른 후 우편엽서에 정성껏 풀을 붙여 해당 이벤트 주소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내가 하는 참여하는 이벤트는 항상 다음 주에 당첨자가 신문지면에 발표되었다. 그렇게 매주 나는 열과 성을 다해 낱말 퀴즈에 임했으나 번번이 탈락의 고비를 마셔야 했다. 언젠가 꼭 한 번은 내게도 기회가 주어지리라는 믿음으로 한 주 한주 빼먹지 않고 도전하려고 애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경제지에 나온 낱말 퀴즈를 친구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답도 알려줬다. 친구와 나는 낱말 퀴즈 종이를 엽서에 붙여 해당 이벤트 주소로 발송했다. 그런데 다음 주 울적한 일이 내게 벌어졌다. 당첨자 명단에 글쎄 친구의 이름 떡하니 1등으로 올라와졌었다. 낱말 퀴즈의 답을 알려준 것도 나인데 "나는 왜 이리 운이 없지"하면서 짜증이 섞어 올라왔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있구나”라며 몹시 부러웠다. 당시 나는 20번 도전을 했었던 때였다. 그런데 친구는 손쉽게 내가 가르쳐준 답을 적어 단 한 번의 도전에 1등이라는 당첨 결과를 손에 쥔 것이었다. 그것도 30만 원이라는 거금을 말이다. 나는 기쁘게 축하해주지 못했다. 찌질했다. 시기와 질투는 물론 아무런 노력 없이 빛을 발한 친구가 괜히 싫었다. 결과를 보고 나는 기가 껶였다.



한편으로는 “그래, 그러면  때까지 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친구가 당첨된 주에 나온 새로운 낱말 퀴즈를 포기하지 않고 풀고 다시 이벤트에 참여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황당하고 기쁜 일이 있을  있단 말인가. 다음  당첨단 명단 발표에서  이름  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에 친구가 되었는데 그다음  내가 2 15 원이 당첨된 것이었다. 2등이라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간의 나의 노력이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노력의 결실을 보았다는 성취감 때문에 나는  이름  자가 박힌  날의 낱말 퀴즈 부분을 가위로 정성스럽게 오려 코팅을 해뒀다. 지금도  오래된 앨범 속에는 그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친구가  번의 도전에 당첨된 일이 속상했지만 포기를 모른  도전해 밀고 나갔던 것이 행복의 진한 자국을 남겼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여기저기 곡소리가 나온다. 나 역시 쉽지 않지만, 작년에는 이보다 더 심했다. 성과가 없어 매일매일 쓴맛을 맛봤다. 지금도 여전히 성과는 없지만 조금씩 희망을 품고 이겨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투잡 생활을 한 지 벌써 2년. 괄목할 만 성과가 없어 여전히 지치고 힘들다. 요즘 자주 포기하고 싶다라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데 막상 다른 길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느 때는 순간적으로 “내 인생은 왜 여전히 이 모양인가, 잔꾀도 부릴 줄 모르고 그저 성실히 사는 한 인간인데 언제 빛을 보려고 이러는가, 정말 빛을 볼 수는 있는 것인가,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런 삶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문득문득 찾아와 지독히 나를 괴롭히지만 삶은 계속되니 다시 털고 일어나야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된다. 경제지의 낱말 퀴즈에 도전했던 나의 태도와 자세를 끄집어내 잠 못이루는 여러 날들을 이겨내, 굳건히 이 땅에 발을 딛고 이생을 살아가는 존재로 존재할 것이다.        


  

그날처럼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누군가 먼저 성취했다고 마냥 부러워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밀고 나갔던 것처럼 지금의 현실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잘 헤쳐나가야겠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누군가의 목소리보다 나만의 목소리를 잘 듣고 내면의 근력을 키워 어려운 현실을 잘 극복할 힘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지금 나는, 버틸 힘이 필요하다. 버티는 것이 과연 중요한가 싶지만 지금 내게, 잘 버티는 게 필요하다. 젊은 날 내가 처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했고 늘 다른 것을 찾아 헤맸다. 지속성의 힘이 없었던 나에게서 벗어서나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지속하고 싶다. 아직 성과가 없어 좌절 속에 꼬꾸라지지만 더 깊게 파고들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성취해내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모두가 어려운 현실, 모두가 힘든 시기, 버티는 게 능사는 아니지만, 때론 버티는 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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