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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Aug 04. 2020

자유로움을 더해지면 어떨까

창의적인 교육보다 정형화되고 획일화된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오히려 학교 밖에서 자유로웠다. 흙과 자연을 놀이 삼아 해 질 녘 까지 친구들과 놀이를 만들어내기 여념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모든 놀이 활동은 창조적인 활동의 일환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장난감이 충분하다. 아니 이미 넘쳐있다고 표현해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유년 시절은 장난감이 턱없이 부족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한 내가 기억하는 장난감은 병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고민 끝에 사준 “강아지 인형”과 “퍼즐 맞추기”뿐이다. 그 외에 별다르게 장난감을 가져본 생생한 기억이 없다.     



늘 흙먼지를 달고 살았고, 겨울이면 보통 얼음판에 나뒹굴다 물속으로 풍덩 빠져 추위에 부들부들 온몸을 떨며, 집으로 들어가 혼나기 일쑤였다. 친구들과 동네 한복판에 어김없이 만나 숨바꼭질, 비석 치기, 제기차기, 원하나 그려 넣고 “원피스” 하면서 하는 놀이, 얼음 땡 놀이, 고무줄놀이 등 정말 다채롭고 다양한 놀이로 하루를 충만하게 보냈다. 혼자보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놀이가 대부분이었고,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놀지 연구하고 적용해보고 했었다. 이렇게 자유롭게 놀이를 하면서 자라서인지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유로운 영혼이 자연스럽게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는 성장하면서 어렵고, 답답한 시간을 점점 더 많이 가지게 되었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못하지 싶어' 주눅이 들곤 했었다.      



일례로 고등학교 미술 시간이 그러했다. 항상 노력해도 높은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미술 선생님이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점수 평가를 해 이 부분에 두말을 할 수 없었다. 모든 학생의 그림을 교단 앞에 펼쳐 놓고, 가장 좋은 점수의 그림부터 골라 차례차례 점수를 채점했다. 내가 그 미술 시간 한 해 동안 받는 점수를 난 여전히 선명하고 뚜렷하게 기억한다. 'CDCC'. 절대 잊히지 않는다.      



왼손잡이라고 핑계를 대보고 싶다. 예를 들어 사과를 그린 뒤 사과 안에 반듯한 사각형으로 영역을 구분한 뒤 채도와 명도를 조금씩 달리해 선을 벗어나지 않게 채색해야 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은 그림만 달랐지 같은 형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반복했었다. 그것은 내가 1년 동안 겪어야 할 지옥같은 시간이었다. 오른손으로 쓰는 것을 배웠지만 왼손잡이라 단 몇 줄도 힘겨워하는 나이다. 몇 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글은 지렁이가 땅을 훑고 지나간 것처럼 글씨가 커졌다 작아지는 것은 물론 칸을 벗어났다가 칸 안으로 들어왔다가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를 보였다. 그런 내가 네모반듯한 칸에 오른손으로 붓을 들고 채색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작업이었고, 이런 정형화된 미술 시간은 곤욕스러웠다.



그런 내게도 좋은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나의 미술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다양한 활동을 했던 초등학교, 중학교 때의 미술시간은 나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단 초등학교 때 반공 포스터를 그리라고 할 때 빼고는. 아무튼 초등학교 때 한 반이 6년 내내 같은 작은 시골 학교지만 방학 숙제로 그린 그리기를 대표로 상받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고등학교 와서 미술 실기 점수를 안 좋게 받으니, 잠깐씩 자존감이 무너질 때가 있었다.      


         



왜 우리는 어떤 틀을 만들고, 그 속에 구겨 넣은 행위를 하려고 할까? 사람마다 다른 특성이 있고, 다른 성향이 있는데 네모반듯한 것을 잘 못 한다는 이유로 “네가 그렇지”라는 뉘앙스의 말을 들었던 그때를 생각해보면 참 어이가 없다. 어떤 이는 네모반듯하게 색칠을 잘할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 곤욕스러운 것일 수 있다. 더 문제점은 그 미술선생은 1년 내내 비슷한 미술교육만 진행했다는 것이다.


창조직인 일은 어떤 틀 안에 만들어놓은 규정이나 규칙 속에서 잘 만들어지는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창의로운 발상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이 모두에게 다 다르다. 그래서 규정이나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잠재적인 것들을 발현할 수 있는 무수한 시간과 행위들을 많이 가지고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노력해도 결과가 잘 나오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막막한 물음이 뜬금없이 찾아왔었다. 지지부진한 결과를 마주하는 매일매일,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그 현실을 꽤 오랜 시간 마주하고 있는 나, 도대체 언제 탈출할 수 있을까 싶어 공포가 엄습했다.



갑자기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어떤 하루, 그 옛날의 미술 시간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나도 어쩌면 나만의 획일화된 사고와 규칙을 정해놓고 그 안에 갇힌 사고만 하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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