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발령 후 머무를 집을 찾아 동작구, 노원구 등을 발품 팔아 다녔다. 최종적으로 노원구에 집을 얻었고, 난 간단한 짐을 꾸려 원룸에 들어갔다. 그렇게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지방에 살면서 가끔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관람하기 위해 올라 온 적이 다였다. 그때 내가 느낀 서울의 시계는 내가 살아가는 시계와 사뭇 다르게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향하는 사람들만 봐도 너도, 나도 한시라도 빨리 남보다 빠르게 개찰구를 통과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가슴이 꽉 막히고, 조여 왔었다. 그런 내가 과연 적응하면서 살 수 있겠느냐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원룸에 있는 집기들이 대부분 빌트인으로 되어 있어, 별도로 구매할 값비싼 제품이나 도구는 없었다. 간단한 생활용품 구비만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밤이 돼서야 그 정체를 알아챘다. 늦은 밤에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내 방 창문으로 강렬하게 들어왔다. 거기다가 창문 가까이 가로등까지 있어 밤이어도 밤이 아니었다. 서울은 그렇게 늦은 밤에도 쉬지 않았다. 창문에 시트지를 붙여도 빛을 막을 수 없었고, 일반 커튼을 달아도 빛을 차단해주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실수 끝에 암막 커튼을 달고서야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잠자리 들기 위해 불을 끄고 누우면, 방안 가득 어둠으로 채워졌던 분위기에 익숙한 내게, 도시의 꺼지지 않는 불빛이 스며드는 방에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밤에 꺼지지 않는 불빛이 나의 외로움을 더했다. 원룸에서 한동안 텔레비전도 없이 지냈던 나는, 고독감, 두려움, 외로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렇게 외로웠던 도시의 밤도 이젠 적응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허전하다. 전원 스위치를 끄면 온통 검게 변하는 방 안에서 달콤한 꿀잠을 자고 싶다.
도시의 삶이 팍팍해 이따금 시골에 가서 살자고 운을 띄우면, 엄마는 손사래를 친다. 서울 큰 병원에 데리고 다닐 일이 많아지면서 60년 이상 시골에서 살던 엄마를 모시고 왔더니, 병원 가까이 사는 게 시골보다 좋은가보다. 도시 생활이 외롭고 적적한데도 불구하고, 시골로 가기 싫다고 말씀하신다. 나 또한 외롭고, 엄마도 외롭지 않냐며, 시골로 가자고 농담반 진담반 말해도 엄마는 싫다고 하신다. 당분간 도시를 떠나지 않겠지만, 언젠가 빛이 차단된 시골 방에서 고요하고 편한 잠을 푹 자고 싶다. 코로나가 종식되고, 한적하고 고즈넉한 시골에서 잠시라도 단잠 한번 거하게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