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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항아리 Jul 23. 2021

범인 잡는 소설을 좋아하게될 줄이야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다른 만남이다. 조용하고, 고요한 시간이 내 안으로 찾아 들어와, 오롯이 책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몰입의 정도에 따라 몇 시간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흠뻑 빠지는 경우를 종종 경험한다. 그렇게 몰입을 주는 책을 만나는 일은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동안 총 6만 3,476종의 책이 발간되었다고 한다. 이를 하루로 환산하면 약 170권이 넘는 책이 매일 출간된다는 소리다. 이것은 비단 한국 출판시장에 국한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세계로 확장해 보면, 하루에 출간되는 책의 양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 많은 책들이 매일 독자를 만나기 위해 출판시장으로 나오고 있다. 과연 그 많은 책 중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책이 몇 권이나 되며, 그 몇 권 중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만나는 일이 또 얼마나 될까. 만만치 않는 일이다.


그렇게 많은 책들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환경에서 다양한 책을 두루 섭렵하면 좋으련만, 나는 소설, 에세이, 경제 등을 중심으로 책을 읽는 편향성이 강하다. 역사, 미술, 교양 등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위해, 다양한 분야로 독서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는 일이 지지부진하다.




넓고, 다양하게 책을 읽지 못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나 자신조차도 알지 못하는 나를 알았다. 그리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공포,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를 별로 선호하지 않아 나도 내가 추리 소설을 좋아할지 전혀 몰랐다. 오래전 방송에서 여름이면 '전설의 고향'을 했었는데, 소스라치게 무서워서 제대로 시청한 적이 없을 정도로 공포물을 싫어했다. 거기다 칼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도 선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총으로 나오는 장면은 보는 편이다. 왜 그렇게 칼과 총이 다른지에 대한 기저의 원인은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총과 칼이 나오는 것에 따라 극명하게 갈리는 나를 보면서, 어느 날에는 문득 전생에 칼을 맞고 죽었나 싶은 의심을 했을 정도이다.     

 

이런 내가, 추리 소설을 좋아할지 책을 읽기 전까지 까마득히 몰랐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하고는 다르게 책을 읽으면서, 오싹할 정도로 두렵거나, 무섭거나, 살기를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각적인 자극이 없어서일까? 소설 속에 나오는 사건의 조각을 퍼즐 맞추듯 맞추는 과정이 나에게 흥미진진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해 읽는다. 그것이 나에게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로지 텍스트로으로만 되어있지만, 난 소설 속의 공간을 상상하고, 인물을 상상하는 그 시간이 절대 지루하지 않다. 영화는 책에서 줄 수 없는 시각적인 자극 요소가 많으니, 더 두렵고, 더 악랄하고, 더 무섭게 느껴진다. 거기에 감정이입이 풍부한 내게는 가끔 그런 요소가 고통을 줄 때가 있다.


오히려 책은 내가 상상할 만큼 상상하다가, 멈출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즉 통제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나에게 추리소설이 괜찮았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비해 지금은 방송에서 범인을 잡는 잔인한 장면이 연출되어도 좀 보는 편이지만, 심하다 싶으면 바로 채널을 돌리거나, 그 드라마를 끊어버린다.      


아무래도 시각적인 요소가 덜한 것이 나에게 맞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나는 나도 알지 못하는 나를 만났다. 책을 만나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던 나처럼, 좀 더 많은 사람이 책을 만나, 책을 통해, 자신을 만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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