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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10. 2018

인간실격, 그리고 타살

다자이오사무의 애절한 고백

인간실격 외 함께 엮인 단편소설을 보며 든 생각들


다섯 번의 자살시도, 결국 39세에 사망한 다자이 오사무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그가 다섯 번이나 자살시도를 했다는 사실은 늘 생활고를 염두에 두고 살아가는 내겐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심지어 고리대금업으로 신흥 졸부가 된 자신의 집안이 부끄럽단다.. 솔직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성(聖)자가 아닐 수 없다. 


<인간실격>, <달려라 메로스>, <잎>, <역행>, <어릿광대의 불꽃>, <그는 옛날의 그가 아니다>가 한 권으로 묶인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이만큼 외롭고 힘들었습니다'라는 절절한 고백이 담긴 유서를 본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책 속의 단편들은 각각 다른 제목을 달고 있지만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체가 조금씩 달라지지만 단편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중심인물은 모두 다자이 오사무 그를 말하고 있다. 요절한 그의 작품 대부분은 어쩌면 자신이 얼마나 지치고 외로웠는지를 고백하는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이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치부를 낱낱이 기록한 일기에 가까운 치밀한 심리묘사.. 그래서인지 그는 <어릿광대의 불꽃>에서 이런 표현을 드러낸다. 


"내가 장수를 해서 몇 년이 지난 뒤에 이 소설을 읽을 날이 온다면 얼마나 비참할까. 아마 한 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에 부르르 떨며 책을 덮어버릴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캐릭터 '요조'와 서술하는 '나'를 분리시켜 특이한 시점으로 전개시킨 소설 <어릿광대의 불꽃>. 작가는 자기고백적인 이러한 소설들을 써 내려가며 아마도 머지않아 생을 마감할 준비들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느 누구와도 교제가 없다. 어디도 찾아갈 곳이 없다"


그는 줄곧 타인이 두려웠다. 가족과 친구,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에게 가면 쓴 자신의 얼굴을 내밀었다. '익살'로 뒤덮인 가면이 아니면 그는 맨얼굴로 타인을 대할 용기가 없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공포에 떨게 했을까? 세심하게 읽어내리지 않으면 그 시작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릴 적부터 시작된 타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그는 성난 인간의 얼굴에서 그 어느 맹수보다도 더 무서운 동물의 본성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그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그 어떤 지점에서 인간에 대한 공포의 씨앗이 그의 마음에 흩뿌려진 것 같다. 모든 이에게 친절했지만 단 한 번의 '우정'도 경험하지 못했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능력이 있는지 깊은 의문을 갖게 되는 다자이 오사무.. 그는 세상이 개인들의 복(複)수일 뿐이란 생각에 이른다. 개인과 개인의 치열한 다툼. 대의명분, 정의를 앞세운 공동체를 그 밑바닥으로 내려가 낱낱이 파헤치면 개인의 이기적인 얼굴과 만나는 씁쓸한 현실.. 아마도 그는 신물이 나도록 그러한 꼴을 목격했을지 모른다. 추악한 인간의 민낯을 신물이 오르도록 경험했다면 그가 인간에 대한 극한의 공포를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증상인 것이다. 그러한 공포가 만들어 낸 상처가 그를 자살로 내몰았다면 그의 자살은 과연 '자살'이었을까..   


자신이 타인으로 인해 느끼는 공포 때문에 '인간'과 그 인간들이 엮인 '사회'에 대해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을 그는  소설 <인간실격>을 마무리하며 자신을 '진정한 폐인'이라고 인정하고 만다. 고뇌하는 능력조차 상실한 진정한 폐인.. 인간으로서의 실격.. 각기 다른 페르소나로 타인들을 속여가며 살아보려고 발버둥 쳤던 그는 결국 스스로의 나약함을 인정하며 무너진다. 깨달은 것이라고는 '그저 모든 것은 지나갈 뿐이라는 것'. 아비규환으로 살아왔던 그가 인간들이 얽혀있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배운 단 하나의 진리.


어려운 상황이 그저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견뎌내고 있는 그 자신이 변해간다는 뜻이 아닐까. 어제까지 심각했던 상황이 오늘 아침 내 각오에 따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타인이 마냥 두려웠던 그가 세월에 닳고 닳아 심지어 여러 번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더 이상 두려울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도 그렇게 변해갔을 것이다. 타인을 향한 그의 공포는 인간을 향한 실망으로,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 그리고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무기력한 허무함으로.. 그의 자살 원인은 공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무기력함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이야기하며 마시다 남겨둔 압생트를 떠올렸던 주인공..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가 떠오른다. 그 둘의 일생이 묘하게 닮아있다는 생각도 얼핏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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