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혼자 추워서 더 외로운 잔인한 계절
몇 해 전, 정말 시린 봄을 보낸 기억이 있다.
달력의 날짜는 벌써 3월을 훌쩍 넘어 여름을 향해 가는데, 작은 방 안에 갇힌 나는 여전히 한 겨울 속에 있었다. 너무도 춥고 잔인했던 봄, 혼자서 모든 걸 견뎌내야 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찬 얼음장 같은 느낌으로 가슴속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다. 배신, 기만.. 그러나 내가 발버둥 쳐봤자 어찌할 수 없는 잔인한 현실에서 난 늘 단두대에 목을 걸고 있는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당장 세상에 목숨을 부지할 길 없는 대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크게 억울하거나 아쉬울 것이 없다고도 생각한 날들이었다.
완전히 연소된 영혼 없는 상태로 며칠간 씻지도, 제대로 먹지도 않았던 내가 모처럼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봄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는 사실도 몰랐던 것 같다. 화사한 봄 옷을 입은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여전히 두꺼운 겨울 코트를 걸쳤던 나는 버스 안에서 그제사 따사로운 봄 볕을 느꼈다. 이미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쨍하게 부담스러운 늦은 봄 볕.. 그것이 그 해 내가 처음 느낀 봄 햇살이었다. 봄이었다. 왠지 나에게도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싹트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이분되기 시작했다.
파스텔 톤의 봄 세상은 아직 두꺼운 겨울 옷을 입은 나를 영역 밖으로 밀쳐냈다. 나를 제외한 봄 세상은 늘 그랬던 것처럼 화사하고 활기 있게 움직였다. 독립된 나는 그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봄 세상은 그저 나와 분리된 배경화면에 불과했다. 흑백의 내가 울거나, 웃거나, 좌절하거나 상관없이 파스텔 톤 배경화면은 그렇게 거기 외떨어져 환하게 존재했다. 사람들이 따사로운 봄 햇살 아래서 웃으며 걷는다. 그러나 그것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시 추워졌고, 나는 여전히 겨울 속에 있었다.
날씨가 스산해지는 날, 늦가을 즈음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고독해진다고 말한다. 커피가 생각나고, 안 보던 책장을 넘기고 싶은 날.. 고독은 그것들과 잘 어울리는 세트메뉴처럼 사람들의 정서 속에 스민다. 진짜 고독하기보단 입버릇처럼 터져 나오는 고독.. 그래서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추운 날, 자살률도 왠지 모르게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연결된다. 그러나 자살률은 실제로 화사한 봄이 찾아오는 시기, 쨍하게 맑은 날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때 급증한다고 한다.
온 세상이 활기로 가득 차 있는 그때,
그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만 아직 겨울인 것 같아서..'가 그 이유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웃는 것 같은데 나만 못나게 울고 있는 것 같아서.. 새로운 희망의 이미지를 가진 봄이 그 외로움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만개한 봄 꽃,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에 넘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직 겨울 속에 산다. 봄은 철저히 타인들을 위해 존재한다. 모두가 춥고, 모두가 움츠릴 땐 최소한 혼자라는 느낌은 없었는데, 잔인한 봄은 철저히 혼자라는 느낌을 강하게 인식시킨다. 그 외로움, 패배감이 한계에 달했을 때 세상은 더 이상 살 곳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세상을 등진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 중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고통을 느끼는 뇌의 부분과 시련을 당했을 때 아픔을 느끼는 뇌의 부분이 유사하다는 것. 그래서 시련을 당했을 때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있었다고 한다. 이 말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해 외상을 입은 환자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상처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인간의 배신으로 충격을 경험한 사람의 상처가 계단에서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환자의 상처보다 심각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엔 늘 '정신력 강화'라는 똑같은 처방이 내려진다.
이게 적절한 치유 방법일까?
아마도 이들에게 봄은.. 추운 겨울보다 더욱 잔인한 계절일지 모른다.
몇 해전 그 겨울 속의 나는, 봄 세상의 누군가로부터 프리지어 한 송이를 선물 받고 싶었다. 아직 봄 세상으로 나가지 못한 내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