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책 파먹기
불혹의 나이에 등단한 박완서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새침한 도시소녀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원숙한 나이의 작가에게서 삶의 연륜과 무던함을 느끼곤 한다지만 나는 작가의 소설들을 접할 때마다 아직 수줍음이 많고 다가서기 조금은 힘든 도시 여성의 차갑지만 세련된 무언가를 느끼곤 한다. <친절한 복희씨> 또한 그랬다. 이미 자식들을 모두 키워 출가시킨 노인으로서의 복희 씨에게서 젊은 여성 못지않은 섬세한 여성의 감성이 보였다. 작가는 생전에 아마도 감각적인 여성으로 삶을 이어갔을 것이란 막연한 확신이 든다.
"나는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착한 여자다" -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중 -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고 남에게 모진 소리 한마디 못한다는 복희 씨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여러모로 그녀의 삶을 편안하게 했다. 남편 곁에 머무르던 이전 부인의 가족들이 그녀의 이런 이미지를 믿고 전처의 아들을 두고 물러갔으며, 시장에서 알부자로 소문난 남편의 재산을 마음껏 유용하며 삶을 꾸려갈 수 있었다. 우연히 쓰게 된 가면의 생각지 못한 힘..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런 복희 씨의 결정은 결코 가볍게 마음먹는다고 이루어질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어릴 적 집을 뛰쳐나와 도시로 상경해 식모일을 시작한 그녀는 결혼 경험도 있고, 자식도 있는 나이 많은 남자에게 강제로 겁탈을 당한다. 충분히 저주스러울 수 있는 그 남자는 복희 씨의 남편이 되었고, 그녀의 삶은 그렇게 '살아진다'. 자식을 낳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은 복희 씨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어쨌든 독자로서 바라본 그녀의 삶은 '버틴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 왔다.
"집을 나올 때 나는 그 납작한 생철갑을 보따리 깊숙이 찔러 넣고 줄행랑을 쳤다. 아마 도시가 무서워서였을 것이다" -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중 -
납작하고 작은 생철갑 안에 들은 것은 아편이었다. 사용량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그 호신 무기는 복희 씨의 용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타인, 혹은 자신의 목숨을 비교적 편안하게 끊을 수 있는 강력한 호신무기. 그래서 그녀는 '친절한' 가면을 쓰고 삶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딱히 다른 선택지도 없으니 흐르는 대로 흘러가다 정말 이게 아니란 생각이 들 때, 그때 끝내도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닐까.. 사람, 혹은 사랑이 아닌, 죽음의 상자 하나를 믿고 유유히 흘렀던 복희 씨의 삶이 가여워진다.
"그와 나 사이의 착각은 바로 우리의 운명이다. 나는 더는 그 운명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 박완서 ,<친절한 복희씨> 중 -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였던 남편, 그때 느꼈던 불쾌한 시선은 평생 복희 씨를 괴롭혔다. 그 가해자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선은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만다. 불편한 몸으로 동네 약국에서 바이그라를 구입하려 수차례 노렸했던 남편의 흔적을 알게 된다. 약사는 "아내가 좋아하니 약을 달라"라고 한 남편의 말 때문에 복희 씨를 호출했고, 그렇게 딸 보다 어린 약사 앞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낀 복희 씨는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한강으로 향한다. 분노와 살의를 가득 담은 납작한 생철갑과 함께.. 아편을 품은 작은 생철갑이 큰 포물선을 그리며 한강 물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복희 씨는 남자의 허리를 감싸 안고 공중으로 솟구쳤다 이내 물속으로 떨어지는 여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삶을 '버티던' 여자는 분노의 원흉을 끌어안고 장렬히 사망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복희 씨의 마음은 가벼워졌을까?
착각인지도 모르고 착각 속에 '살아지는' 삶
친절한 가면은 어찌 보면 복희 씨의 진짜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일부러 교성을 내고 연극하듯 치러지던 남편과의 부부관계 속에서 때로는 쾌감이란 걸 느끼기도 했다고 고백하는 복희 씨. 인간의 내면은 한 가지 색깔로 설명될 수 없듯 그녀 안에는 많은 모습들이 각자의 방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착각이라 단언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저 어떤 가면을 썼을 때 극도의 불안이나 우울, 부정적인 감정들이 몰려온다면 그것을 '착각'이었다 말하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수없이 많은 가면들 중 어떤 것이 진짜 본연의 내 모습과 가장 닮아 있는가. 그것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지출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복희 씨는 그저 수많은 내면의 캐릭터 중 생철갑 하나에 의지했던 자신의 주요 캐릭터 하나를 한강에 투신시켰을 뿐이다. 절대적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결심..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자 하는 복희 씨의 근원적 물음은 그렇게 시작된 것 같다. 그러나 그녀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 그것은 인생의 다양한 곁가지들을 미련하게 잘라내는 행동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러한 현명한 깨달음을 나는 과감히 포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