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책 파먹기
"작가님, 혹시 인간에 대한 실망과 혐오로 맘이 너무 힘들다면 어떤 책이 좀 위로가 될까요?"
내 마음 공간에는 좀체 그 분노의 총량이 작아지지 않는 미움의 대상이 몇 있다. 이따금씩 어떤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그 미움의 대상들이 유령처럼 내 앞에 줄줄이 소환되는 날이 있다. 그 대상과 연을 끊고 아주 오래도록 그 미움에 대한 정당한 이유들을 수없이 만들어 온 나는 그들이 실제로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늘씬하게 두들겨 패버리는 상상을 종종 했다. 그러나 기억으로만 소환된 그들의 얼굴에 주먹을 내질러 봤자 헛헛한 마음의 상처만 더욱 선명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어쩌랴.. 내 마음 상처 내가 다스리는 수밖에..
마을기자 활동을 함께 하는 작가님께 적절한 책 한권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책이 생각나네요" 라는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사이토 다카시의 <곁에 두고 읽는 니체>
머리에 쥐가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자동으로 연결되어 생각나는 니체.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허무하기도 하고, 관계에 대해 수없이 고민한 철학자임에도 정작 자신은 고독했던 천재.. 그는 증오로 들끓고 있는 내게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줄까?
들판의 무소처럼 혼자 살아라.
무소의 뿔은 불경에 등장하는 말로 깨달음의 길을 가는 것은 혼자서 가는 길이기에 무소의 뿔이 홀로 우뚝 서 한 곳을 향하듯이 혼자 나아가라는 충고를 담고 있다. 니체에게 우정이란, 또는 인간관계란 독립적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로의 나아감에 있어 향상성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건강한 관계.. 그것이 아니라면 차라리 고독을 즐기라는 그의 충고.. 인간관계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늘 관계에 까다로운 내 주위엔 '사람'이 없다. 때론 '내가 혹시 사회 부적응자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거슬림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우려를 조용히 잠재우는 한 줄.
"니체는 우정을 나눌 친구를 만나는 일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그와 얼마쯤 사귀다가 질려버리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 사이토 다카시, <곁에 두고 읽는 니체> 中 -
위대한 철학자도 늘 고독했고, 해탈의 경지에서나 나올법한 말들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그는 쉽게 상처받는 연약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정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괴롭히는 증오의 대상들, 그들은 나의 나아감, 니체가 말하는 '향상심'에 방해가 되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마음을 거두는 수밖에.. 쉽지 않겠지만..
나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니체는 현실에 집중하는 삶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는 형이상학적 철학자들을 실랄하게 비판하고 내세에 집중하는 종교도 혐오한다. 현실의 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내 몸의 언어에 집중할 것, 본능적인 욕망들을 사회의 통념으로 짓누르지 말라고 전한다. 술과 축제의 신, 디오니소스의 향기가 나는 그가 맘에 든다.
"하늘에 닿을 듯이 키가 큰 나무들에게 거친 바람과 악천후가 없었다면 그런 성장이 가능했을까? (중략) 탐욕, 폭력, 증오, 질투, 아집, 불신, 냉담, 그 밖에 모든 악조건과 장애물들.. 이러한 악과 독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그것들을 극복할 기회와 힘을 얻고, 용기를 내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단련되는 것이다" - 사이토 다카시, <곁에 두고 읽는 니체> 中 -
어쩌면 그 미움과 증오는 나의 감정 보따리가 고여서 썩지 않도록 작용했는지 모른다. 흔한 말이지만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떠한 이유들을 만들기 위해 현재는 또 그렇게 굴러간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바로 나. 그것도 잘 통제하지 못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타인을 좌우하려는 인간의 어리석음. 증오로 나의 귀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그냥 되풀이해도 상관없는 삶의 방식을 취해 보자" - 니체, <니체와 걷다> 中 -
이 말에 몸서리치지 않는다면, 그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의 의미를 찾으러 간 자, 인생의 의미를 찾으러 간 자, 자신의 의미를 찾으러 간 자는 사막에서 빈손인 채로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처음부터 의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가 없다고 해서 세계와 인생이 덧없는 것은 아니다. 의미라는 건, 무엇이 어떠하고 얼마만큼의 것이라는 건 스스로가 결정하는 일이다. 자신이 생기 있게 살아가면, 인생은 생기와 빛나는 의미로 채워진다. 어둡게 살아가면, 한여름 낮이라 하더라도 세계에는 어두운 구름이 드리울 것이다" - 니체, <니체와 걷다> 中 -
'이번 생은 아무래도 망친 것 같아'
윗돌과 아랫돌의 위태로운 균형. 흔들흔들 거리다가 이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돌무더기들.. 저걸 언제 다시 쌓나 생각하면 밀려오는 두려움과 허탈함. 내 인생이 혹시 시시포스의 돌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친구에게 털어 놓는다.
"주춧돌부터 잘 쌓아서 인생을 차곡차곡 계획한 대로 쌓아올리는 사람이 존재할까?"
단호하게 돌아오는 대답, "없어"
무너진 돌 무더기 속에서 다시 한 번 주춧돌을 골라내어 판을 다듬고 돌을 쌓는다. 의미라는 건, 스스로 결정하는 거라고 함께 걷는 니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