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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n 18. 2018

마흔에야 새로워진 가족의 이름

그 나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뭘 해도 마음이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벌게진 눈을 하고 다시 이불로 기어 들어가는 찰나 울리는 휴대폰 알림음.


-네 맘 다 이해한다. 엄마도 젊은 시절 보냈으니까-


퇴근길, 5월의 붉은 장미가 유난히 쨍하고 얼굴을 내민 풍경을 담아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엄마. 벌게진 눈가가 이내 눈물로 그렁그렁 차오른다. 알 수 없는 마음이 뒤엉켜 머리가, 곧 안면 전체가 무거워진다. 이불에 그 무거운 덩어리를 파묻고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미안해요. 마흔이 가까운 딸이 여적 너무 못나서-



출발선이 다른 경제적 환경을 굳이 또 '수저'로 구분 짓는 비참한 수저 논쟁을 좋아하진 않지만, 따져보자면 난 빼도 박도 못하는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덕분에 자라는 동안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걸 고집하는 대신 숨기는 법을 먼저 익히며 일찍 철이 들었다. 어른의 탈을 쓰고 외롭게 자라던 나를 주위 사람들은 대견하다 칭찬했지만 그 여린 속은 채워지지 못한 욕구들로 병들어 갔고, 이따금씩 내 입에 흙수저를 물려준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조금 더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사는 내내 끌어다 쓴 허울 좋은 변명거리. 그렇게 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실패를 가난한 가정환경 탓으로 돌렸다. 짐을 그렇게 덜어내면서 그 뒤에 딸려가는 나의 오만함, 게으름이 함께 묻어가는 것을 보기도 했지만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어쩌면 나는 '내가 방황을 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 한 가지를 정당화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뒤로 인생이 순탄하게 잘 흘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흙수저가 실은 금수저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더라' 따위의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가정환경을 탓하던 원망의 고리를 끊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던 인생 그래프가 삼십 중반에 가서는 결국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겪지 않을만한 큰 사건들이 연달아 뻥뻥 소리를 내며 폭음을 울려댔다. 사방으로 튄 파편을 온몸으로 맞은 나는 정신이며 육체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해졌고, 할 수 있는 거라곤 그대로 눈을 감아 생을 끝낼지,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구조요청을 외쳐댈지를 결정하는 것뿐이었다.


'살자, 살아서 내 두 눈으로 봐야겠다. 내 인생이 대체 어디로 흘러갈지..'


구덩이를 헤쳐 나오는 동안 다시 밑바닥으로 미끄러지길 여러 번. 아무라도 좋으니 잡고 올라갈 동아줄을 뻗어주었으면 했다. 발을 딛고 올라 설 틈조차 없는 막막한 암흑 속에서 난 습관처럼 나의 가정, 가족들을 원망했다. 대체 가족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피의 진득한 농도가 내겐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감촉이었다.


그 지옥 같던 시간들을 그래도 옛말이라며 할 수 있게 된 어느 날, 엄마에게서 걸려 온 전화,


"가끔 쉬는 시간에 이렇게 앉아서 보고 있으면 젊은 엄마들이 아기들한테 얼마나 잘 하는지.. 아, 저렇게 하는 거구나 싶은 게.. 이제 환갑이 넘어서 그런 걸 깨우치고 있으니 참 우습지. 너희들에게 못해준 게 자꾸 생각나서 너무 미안해. 엄마도 뭐 아무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는데 대체 그 엄마 노릇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지.. 미안하다"


당신은 모르셨겠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던져버린 실패의 짐덩이들을 고스란히 껴안고 엄마는 그렇게 벌써 환갑이 넘어 있었다. 그 가녀린 팔과 다리로 내 원망을 받아낼 힘이 더 남아 있을까? 괜스레 미안한 맘이 들어 운동 열심히 하라는 핀잔을 건넨다.


"너 그렇게 됐을 때 다니던 등산도 다 그만뒀지.. 이제 하도 오래 다니질 않아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몰라. 네가 그렇게 된 게 혹시나 엄마 아빠 죄가 많아 그런 거 같아서 밤마다 매일 일어나 앉아 울었단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행복해야 돼, 알겠지?"


처음부터 내 부모에겐 동아줄 같은 건 없었다는 걸 알면서 왜 난 그토록 가족들을 원망했을까. 내가 힘들었던 만큼 고스란히 같은 아픔을 느끼며 세월을 보냈을 내 부모님.. 아픔이 그 크기를 줄이지 않고 고스란히 전이될 수 있는 관계, 가족의 의미가 마흔 줄에 다다른 내게 새롭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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