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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r 25. 2021

프리지어향기가 나는 사람들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항상 장밋빛 희극이다. 겨우 내 얼었던 마음속 한기를 슬며시 몰아내는 따뜻한 봄볕 아래서 사람들은 유유히 평일 낮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직장에 얽매이지도, 무언가에 쫓기지도 않는 듯 평일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저들에겐 어떤 비극적인 일 따위는 없겠지.. 덮어두어도 자꾸만 솟구쳐 오르는 오만가지 걱정들을 꾸역꾸역 잡아내리며 산책하는 사람들을 관찰자마냥 바라보았다. 그들의 봄날에선 노란 프리지어 향기가 났다.


공원 벤치에 앉아있던 내 모습 역시 사람들에겐 그리 보였을 것이다. 손에 잡은 건 애써 진땀 빼며 달래야 할 아이가 아닌 예쁘게 치장한 반려견 리드 줄, 멍한 정신을 깨우려 손에 든 커피는 여유를 즐기는 자의 사치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요즘 악마 같은 인간과 치졸한 법정다툼을 벌이며 가진 것도 없이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결되지 않는 숙제들을 가득 안고 하루씩 늙어가는 중이다. 그런 내게 사람들의 희망적인 시선이 와 닿는다. '먹여 살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유로운 인생.. 참 팔자 좋다.' 남의 인생은 역시 멀리서 보면 장밋빛 희극이다.


'영끌'이란 단어를 새롭게 습득했다. 영혼을 탈탈 끌어모으듯 숨이 턱턱 막히는 대출을 받아 내 집 마련을 하는 젊은이들을 일컬어 사람들은 영끌족이라 칭했다. 영혼을 끌어모은다 해도 수억 정도는 뉘 집 애 이름인 요즘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난 유튜브 부동산 전문가들의 콘텐츠를 오가며 출처가 불분명한 자책감을 느꼈다. 유튜브 화면에서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이 문득 한 지점에서 멈췄다. 고시원에서 홀로 지낸다는 40대 후반 여성의 인생 이야기. 부동산 재테크 콘텐츠들 속에 마치 이물질처럼 섞여 들어간 돌을 골라내듯 무심한 호기심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화면을 채우는 건 좁은 1인 침대와 거기에 붙은 작은 티테이블 정도. 여자는 주로 자신이 만들어 먹는 음식 먹방을 공유했다. 간단하게 재료들을 손질해두었다가 새벽녘 아무도 없는 공동주방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고 했다. 음료를 몇 개 넣으면 가득 차는 작은 냉장고 속에 여자의 요리 재료들이 나름의 질서대로 차분히 놓여있었다. 별다방에서 가장 싼 커피 가격 정도가 여자의 하루 식비라고 했다. 여자는 이따금씩 작은 창을 열어 동이 터오는 푸르스름한 새벽 풍경을 보여주었지만 어쩐지 그런 화면에도 슬픈 느낌이 필터처럼 깔려있었다.


수억 단위의 돈과 부의 창출을 생각하던 시간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의 콘텐츠는 마치 필연적으로 만나야 할 운명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실체 없는 자책감을 느끼며 꼭 그렇게 살아야겠냐고 의문을 던지듯이.. 여자는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버티는 자신의 삶과 미래를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불안 속에서도 여자의 목소리는 조금 기가 죽어있을 뿐 어둡거나 찌들어있지 않았다.  조금은 특별한 자신의 삶을 마치 시처럼 노래하는 느낌이랄까.. 50이 가까운 중년 여성의 음색 치고는 소녀 같은 분홍빛 감성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왠지 모르게 마음에 위안을 주는 여자의 콘텐츠를 하나씩 열어보게 되었다.



어쩌면.. '그래도 이 여자보다 내가 낫네'하는 교만한 마음이 나를 위로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완성도나 깊이를 가늠하는데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그 기준을 '돈'으로 삼는다. 굳이 서로 묻고 따지지 않아도 돈이란 걸 알게 되는 그 시점부터 우리는 암암리에 그 기준을 자연스레 체득한다. 게다가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참 단순하지 않은가.. 삶을 덤덤히 고백하는 여자에게 사람들은 뭐라 말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져 댓글창을 살피다가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 그러니까 어쩌다가 돈을 다 날려먹었는지 얘기를 해야 도와주지. 우울증이 있다고만 말하지 말고 왜 그렇게 됐는지 말해봐요 - 단순해 보이는 남의 인생, 거기에 자신의 기준을 멋대로 휘두른 누군가의 무례한 끄적임에 여자는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도와달라 말 한적도 없는데, 그저 그렇게라도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었을 뿐일 텐데.. 남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참 단순하게 보이는가 보다.


비혼인 여자는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남겨졌다고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회상하는 영상에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천하의 나쁜 년'이라 칭하며 스스로 형벌을 내리기도 했다. 울음을 억누르며 멘트를 이어가던 여자의 음성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여자는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자신에게 형벌을 내리고 있을지도, 아니면 돈을 포기한 대가로 주어진 시간의 사치를 누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삶을 내 맘대로 정의한 기준으로, 이를테면 '딱하다'거나 '한심하다'거나 하는 등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으니 그 좁은 공간이 때론 아늑하게도 보이고 뚝딱 만들어낸 특별할 것 없는 그 음식들에 군침이 돌기도 했다. 삶을 고백하는 영상이 아닌, 봄의 산책길에 여자를 봤다면 그녀 또한 곡절 없이 평온한 삶을 사는 타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녀에게서도 노란 프리지어 향이 났을 것이다.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불안감, 나만 못난 것 같은 자책감.. 어쩌면 봄 햇살 아래 걷는 모든 사람이 그 우중충한 마음을 바싹 말리기 위해 노력 중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경제지표,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주택 가격 등 미디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은 사실 경제 상류층의 의견과 상황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다. 실상 대다수의 우리 이웃들은,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내가 아는 누구와 비슷한 삶의 범주 안에서 그렇게 비슷한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 뒤쳐진 나를 제쳐두고 다들 앞서 열심히 달리는 듯 보이지만 실상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들의 인생도 내 것만큼이나 힘들고 아프다. 


최근 한 달간 내가 언제 가장 많이 웃었는지를 생각해본다. 사료를 잔뜩 먹고 안아달라 조르는 반려견을 안아 올렸을 때 내 면전에 시원하게 트림을 쏟아놓던 녀석을 보고 박장대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문득 삶은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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