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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pr 08. 2021

이제 억지로 기다리지 않기로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

오른쪽 아랫배에 불쾌한 느낌이 들어 잠을 깼다. 시간은 새벽 4시..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나 곱씹는 찰나의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아닥쳤다. 무서움을 넘어선 말 그대로 공포가 찾아왔다. 혼자 사는 내가 아픈 배를 부여잡고 뒹군다 한들 그런 나를 둘러업고 병원에 동행할 보호자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사스럽지 않은 통증에 다급히 119를 호출했다. 그렇게 입고 있던 잠옷 그대로 슬리퍼를 겨우 주워 신고 응급실로 실려갔다.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보호자는 없어요?"


통증이 이미 번질 대로 번진 배를 부여잡고 밀려오는 구토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의료진들은 급히 진통제와 안정제를 링거로 투여했다. 진통제가 효과를 드러낼 때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검사를 진행했다. 맹장인 줄 알았는데 요로결석이라는 의외의 진단이 내려졌다. CT상으로 요도관 끝부분에 작은 돌이 걸려있다고 했다. 하지만 담당 의사가 9시나 되어야 출근하기 때문에 두어 시간 동안 응급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강한 진통제를 투여받으며 시간을 기다렸고 약기운 탓에 깜빡 잠이 들었다.


검사실을 돌며 보호자가 없냐는 말을 두세 차례 더 들어야 했다. 응급수술을 요하는 상황이라면 수술동의서 때문에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부모님을 호출했겠지만 요로결석이라는 말을 듣고 나니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새벽 4시에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딸의 전화를 받으면 연로하신 부모님이 얼마나 놀라실까 생각하니 우선 이 상황을 혼자 잘 견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무릎 나온 수면바지 차림으로 그리 편하지도 않은 좁은 응급실 침상에 누워 혼자 통증을 호소하는 40대 여자.. 스스로 조금 측은한 생각이 들었지만 덤덤히 상황을 견디고 있는 내 모습이 의외로 놀라웠다. 아내의 이름으로 살던 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치면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자주 울던 지난 내 모습이 스쳤다.  



9시가 되자 의료진의 안내를 받아 내 키를 훌쩍 넘는 링거 지지대를 끌고 비뇨기과 외래진료실 앞에 대기했다. 진료과목 특성상 대기실은 중년 남성들로 가득했다. 그곳에 수액 지지대를 끌고 꽃분홍색 잠옷바람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여성의 등장! 병원 환자복도 아닌 요상한 차림의 여성을 사람들은 계속 흘깃거렸다.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것을 의식하기엔 새벽 내 통증에 시달린 몸이 너무 지쳐있었다. 의사 상담 후 초음파 파쇄술을 받고 수액을 제거하니 시간은 이미 11시가 훌쩍 넘었다. 통증이 사라지자 입고 있던 옷차림에 현타가 왔다. 서둘러 택시를 콜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어떤 흐뭇한 느낌이 가슴 언저리에 맴돌았다. 형체를 분명히 알 수 없었지만 '혼자서도 잘했다' 같은 안도감이랄까.. 40세가 넘었지만 생각해보면 '나 다 컸다' 같은 벅찬 감정은 삶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나이 값을 하라'는 말도 그래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실상 나이 먹은 사람들도 그 값을 하며 사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을 직접 나이를 먹어보니 알 수 있었다.


6년 전 이혼 후 앞자리가 4로 바뀌기 전 나는 참 무던히도 재혼을 하려 '노력'했었다. 돌이켜보면 사랑이 필요하다던가 현실적 필요에 의한 노력이기보다 막연히 혼자가 되는 두려움이 싫었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독립적인 인간이긴 했지만 정말 혼자가 되어 삶을 꾸려본 적은 없었다. 늘 반항심이 가득했지만 부모님과 한 집에서 식사를 함께 했고 대학시절 사귄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되어 30대 중반까지 함께 했다. 나이는 마흔을 넘었지만 제대로 된 독립을 한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지내는 삶이 막연히 두려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불혹을 넘기면서 여전히 혼자인 사람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사람 인연이란 결코 노력만으론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을 다시 함께 하고픈 사람이 생겨서가 아닌, 혼자인 게 두려워 재혼을 서두르는 일이 잘 될 리 없었다. 급하고 서투르게 갖게 된 몇 번의 만남은 마치 사건사고처럼 인생의 깊은 오점을 남기고 처절한 실패로 막을 내렸다. 그런 상흔에 점점 지쳐가던 난 마흔을 넘기며 '혼자의 삶'을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연한 의지나 각오처럼 마음을 다잡으며 미래의 배우자에게 기대려 했던 부분을 하나씩 혼자서 해결해 나가고자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자 거기에서 용기가 발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혼자의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전에는 그 고독한 삶이 포기에서 시작된 맥없는 결과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 세상에서 온전히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란 걸 마음에 새기고 나니 스스로에 대한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 어떤 일이든 막연한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었다. 나 스스로를 내가 지켜야 하니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도 결국 내가 직면하고 해결해야 하니까.. 그런 게 바로 진짜 나잇값을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맨살을 드러낸 골반을 초음파 기계에 대고 40분 동안 규칙적인 충격을 느끼며 이런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난 오늘 마흔 살 이혼녀 만나러 간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카톡창에 뜬 이 한 줄의 메시가 의아했다. 발신자는 다름 아닌 그날 오후에 만나기로 한 소개팅남. 지인 소개로 만나기로 했는데 친구들 단체 톡방에 소개팅 얘기를 한다는 것이 실수로 내게 전송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 사람을 만날 이유가 없어 약속을 취소하고 한동안 불쾌한 마음에 지인과도 서먹한 시간이 이어졌다.

'마흔 살 이혼녀'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 사람이건 생각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난 그렇게 통용되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런 나를, 나 스스로도 골드도 실버도 아닌 브론즈라 격하했다. 나잇값을 생각하며 혼자서 우뚝 일어서겠다 바둥거리는 내가 그런 취급을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나였다면 병원에서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집에 돌아와 북받치는 서러움에 눈물을 찔끔거렸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병원 냄새가 묻은 옷부터 벗어 세탁기에 넣고 맛있는 밥상을 차려 지친 위장들을 달랬다. 몸이 따뜻해지고 피곤이 조금 가시자 요로결석을 검색하여 앞으로 조심할 주의사항들을 숙지했다. 뒤늦게라도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새로운 국면의 글들을 써 내려갈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지금 나를 보살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으니까.. 설령 누가 옆에 있다한들 결국 스스로를 끝까지 보듬는 건 자신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 마흔에 진짜 어른이 되어본다. 남들 눈에 골드로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어떤 삶이든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니까.. 그 세상 안에서 골드가 무슨 대수랴, 골드도 실버도 다 내가 정한 기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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