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 않는 운명론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거부한 철없는 영의 성장 이야기

by 철없는 영

다시 하나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운명의 끈은 얼마나 단단하고 긴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 끈의 성질을 알 수 있는 건 언제나 그 인연이 다하고 나서야 알 수 있다는 것..

여러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얻은 교훈은 바로 그것이었다.


그 인연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을 땐 마치 그 상대가 인생의 종착지까지 함께 갈 사람이란 깊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연연하고 상처받으며 자신이 생각한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부분을 모조리 궤도 안으로 집어넣으려 눈물 나는 노력을 쏟는다.

그러나 그렇게 힘이 들었던 인연은 늘 허전한 이별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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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은 정말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관계가 끝난 후 상대에 대한 나의 진짜 감정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그렇게 연연할 필요가 없었던 사람"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 건 아니었다는 결론.. 그 순간엔 나 자신도 몰랐던 내 마음과 관계의 온도..


보이지 않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운명을 잊는 끈이 가로 놓여있다. 그 끈은 쓰임의 목적이 비교적 분명 하나 그 용도는 관계가 종료된 후에 비로소 명확해진다는 것. 그래서 더러는 다른 용도를 사랑으로 착각하기도 하고, 사랑을 다른 용도로 착각하여 흘려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만남을 돌이켜 보면, 쓸모없는 인연이란 건 하나도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치밀고, 두 번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지질했던 인연이라 해도 늘 그 만남엔 이유가 있었다.

지질함으로 놓쳐버린 그녀는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의 곁을 잠시 스쳤고, 집착에 질려 떠난 그는 사실 충분히 사랑의 끈 길이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남겨진 그녀는 그의 부재를 통해 사랑을 다시 배웠고 그들 간의 끈 길이는 그렇게 다시 조정되었다.


만남의 애초부터 이 끈의 길이와 성질을 알 수 있다면 굳이 아까운 시간들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 텐데..

이 또한 모두가 인연이 다 하고 난 후에 찾아오는 깨달음이었다.


되지 않는 연을 억지로 이어가다 늘 말썽과 사고가 끊이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노력이란 걸 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고통 속을 함께 허우적거리던 사람이 절대악의 영역에 있던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들은 앞서 언급한 사람 간의 끈 길이와 성격의 문제, 즉 '운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렇게 꼬이고 어렵게 진행되던 일들도 다른 누군가 앞에선 허망하리만치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순탄함 속에선 '운명'이란 단어를 좀체 부정할 수가 없다.


"운명? 그딴 게 어딨어!"라는 말에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나이..

사실 모든 일에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것일지 모르나..


난 아직 '운명'이라는 영향력에 자주 흔들린다.


그것이 순진한 이의 어리석은 착각이라 해도, 그 순간, 그 사람을 신이 내린 선물로 생각하는 진솔함.. 그 마음이면 행여 그 인연이 사랑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도 인연 뒤에 남은 여운을 소중히 간직하여 인생을 더욱 빛나게 만들지 않을까.. 물론 그것이 운명적 사랑이었는지는 아마도 그 인연이 끝날 때 알 수 있겠지만.. 적어도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에겐 그 시행착오의 경험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급기야는 나와 타인을 잇는 그 끈의 성격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진심을 연 사람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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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이 운명의 영향력 아래 살아가던 자신이 종종 어리석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미 그런 단어는 존재만 할 뿐 사람들의 생각에서 사라진 지 오랜데 혼자서만 값어치도 없는 구닥다리 소품을 고집하는 느낌.. 누구나 모든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의미를 잃는 만남이 '내 마음 지나고 나야 알게 된다'는 운명적 사랑론에 편승하여 그 색채를 유사하게 전환하는 상황들을 보며 혼란에 빠져가는 날들..


그래서 '처음'이란 말을 가책 없이 쓰고, 아닌 걸 알지만 또 귀 기울이는..

어쩌면 내게도 '운명'이란 색채가 점차 흐릿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이번 끈의 용도..

운명, 그런 건.. 없다..

그걸 알게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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