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영화 파먹기
"영화를 만들고 있다면서 왜 사전작업을 또 영화로 제작한 거야? 완전 돈 벌려고 혈안이네.. 자본주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웃음기 쫙 뺀 다큐영화가 돈을 벌 만큼 흥행한 적이 있던가?
극장을 나오며 볼맨 소리를 하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조금은 거슬렸다.
한국전쟁고아들이 동유럽 국가들, 특히 폴란드로 보내졌던 이야기..
영화를 보기 전, 나도 몰랐다. 그런 사실을..
정규 교육과정을 밟는 동안 나름 전 과정을 착실히 따랐던 내가 이 이야기를 들었던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한국전쟁고아들이 동유럽으로 건너갔다는 사실을 모른다.
직접 기획하고 감독한 추상미 씨의 의도는 그가 영화에 여러 번 언급했듯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을 기록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돈 벌려고 혈안이 된 자본주의.. 누군가가 말한 자본주의.. 우리가 사는 사회..
생존하고 있는 국민 대부분이 이 자본주의 하에 태어났고, 북한 사람들이 공산주의 사상교육을 받듯 우리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자본주의에 충실한 사고방식을 장착하고 이웃과 피 터지게 싸우며 생존했다.
난 여기에서 정치체제를 논할 생각도,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도 논하고 싶지 않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을 보는 내내, 추상미 감독이 강조한 '순수하게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만약 다른 대륙의 전쟁고아들이 우리나라, 아니 자본주의가 만연한 국가에 들어와 길러졌다면.. 폴란드의 그들처럼 아이들을 순수한 인간적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었을까.. 사실 긍정적 답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배우로 유명한 추상미 감독은 탈북 청소년들과 극영화를 제작 중이다. 이 영화는 자신의 영화에 출현하는 탈북소녀 송이와 현지조사차 한국전쟁고아들이 양육되었던 폴란드 교육기관에 방문한 여정을 담은 기록이다.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 영문도 모른 채 고아가 된 순수한 영혼들..
1,500명 그들을 선생님이 아닌, 엄마 아빠로 품어준 폴란드 교육자들.. 그들 역시 나치 정권 아래서 핍박받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대 인간의 조건 없는 사랑은 아마도 그 유사한 배경의 뿌리에서 씨앗이 발아한 것 같다.
이것이 정말 다큐인가 싶을 정도로, 폴란드 교육자들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자신들이 품었던 북한 아이들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눈물지었다. 아이들이 자주 쓰던 말, 노래.. 그것은 여전히 그곳 폴란드 교육자들의 가슴에 한 치의 빛바램도 없이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제2의 조국, 폴란드에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아이들은 다시 전원 북송되고 만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폐허가 된 북한을 다시 재건하려는 사업에 인력동원을 위해서였다.
북에서 아이들은 철저히 국가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폴란드에서 아이들은 '인간'이었다.
아이들이 북한으로 전원 이송될 때, 딱 한 명이 돌아가지 못했다. '김귀덕'..
그 아이는 폴란드에 8년 체류하다 백혈병으로 생을 달리했다. 폴란드의 한 작가에 의해 김귀덕의 이야기는 한 편의 기록으로 남았다.
작가가 책에 싣지 않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다큐에서 밝혔다.
한국전쟁고아들이 폴란드에 도착했을 때, 영양이나 위생상태가 너무 불량해 기생충 검사를 실시했단다.
아이들의 몸에서 나온 기생충은 남한에서만 발견되는 종류도 있었다. 그 말인즉슨, 우리가 북한 전쟁고아라고 알고 있는 아이들이 실은 남측 고아들도 섞여있었다는 것..
북한이 한반도를 거의 점령했을 당시 데려간 고아들 속에는 남쪽 아이들도 상당했다고 한다.
하긴, 그 당시에는 남과 북이 둘로 갈라지기 전이었으니.. 우리 아이, 남의 아이 할 것이 있었겠는가.. 실상 동유럽에 건너간 전쟁고아는 '우리의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작가의 마지막 말이 자꾸 기억에 선하다.
"그런데 남한은 한 번도 아이들을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에 참여하는 동안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관련 기사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1992년도 MBC에서 송출된 뉴스에서는 폴란드로 간 전쟁고아를 놓고 북한을 비난하고 있었다. 뉴스 속에선 그 아이들이 철저히 '북한 아이들'로 타자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희미해지는 역사 속에서 점차 지워져 갔다.
북으로 돌아간 아이들 중에는 곧바로 탈북을 시도하다 죽음을 맞은 아이들도 있었지만, 차후에 북한 고위급 간부나 상류층이 되기도 했단다. 탈북한 아이들 중 누군가는 남한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하기도 했단다. 그가 나이를 먹어 생을 마감하기 전, 계속해서 폴란드 이민을 준비했다고 한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삶이 자신의 기억 속 폴란드에서의 삶보다 못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모르겠다.
눈동자 색깔도, 머리 색도 다른 이방인이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줬던 사랑.. 내가 속한 요즘 사회에선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을 그런 사랑.. 역사적 배경의 공통 원인 말고도.. 숭고한 어떤 무언가가 원인이 되었을까? 어떻게 하면 세상이 그런 사랑, 인류애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던 늦은 밤 지하철 안.. 주위를 보니 늦은 시간까지 고되게 하루를 산 지친 사람들이 시체처럼 의자에 기대 쉬고 있었다.
인류애 같은 원대한 것을 생각하기에 우리는, 사회는 너무 지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