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욕과 죽음 사이에서
남한산성 이야기

철업는 영이의 책 파먹기

by 철없는 영

오랫동안 작가 한강의 작품 속에 빠져 있었던 날들이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의 책들을 모두 정독하고 처음으로 만난 다른 세계, 작가 김훈의 남한산성..

두 작가의 문장 느낌이 너무도 달라서 남한산성 초반 진입까지는 실제적이고 단조로운 문장 느낌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문장에 슬슬 적응하기 시작하자 가슴속으로 자꾸만 아픈 물을 들이는 무언가가 슬슬 전해져 왔다.

그동안 취재 문제로 여러 번 다녀왔고, 서문 야경이 예뻐 여러 번 다녀왔던 남한산성..

대략적인 병자호란과 인조의 이야기는 알았다만.. 책으로, 또 영화로 만나 사건에 몰입하고 느껴지는 남한산성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지난가을 남한산성이 경기도민에게 무료입장으로 전환된다는 소식을 알리려 취재를 갔을 때 찍은 영상이 생각나서 여기에도 잠깐 공유를 해본다.



지금 우리에게 남한산성이란 이토록 아름다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재인데 책과 영화에서 만나는 남한산성엔 온통 아픔이 스며있다.


치욕을 견디는 것, 그래도 살아나가야 하는 삶.. 혹은 절대 구부러져선 안 되는 올곧은 삶..

시대만 다를 뿐 현대 우리의 모습들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들..

무력한 중심,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회주의 정치세력들..

책과 영화 남한산성은 현재 우리의 그런 모습들을 빗대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여전히 식견이 짧은 내 눈에도 모든 게 들어 있었다.

대의와 명분. 먹물로만 인생을 살아온 자들의 유연한 혀놀림.. 국영수 지식으로 상위에 링크된 자들이 앉아 있는 수뇌부 그들만의 세상.. 천민의 자식이라 인간으로 대접받지 못해 결국 비뚤어져 청의 앞잡이가 된 정명수.. 부익부 빈익빈으로 일그러져 가는 우리들 모습.. 기회를 보고 아첨하는 김류의 빠른 상황판단력.. 국민분열을 일으켜서라도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세력.. 병자호란 그 시대와 지금 우리는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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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지 않고 담백하게 사실을 쓴 김훈의 문장은 비참했던 당시 성안의 붕괴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한자어와 과한 담백함이 직전에 읽은 한강의 소설들과 너무 대조를 이루어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책을 덮고 나서 그 답답한 마음은 무려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게 했고, 기존에 자주 가던 남한산성을 다시 한번 가 보고 싶게 만들었다. 책과 영화를 접하고 나서 가는 그곳은 또 어떤 느낌일까..


치욕을 견디는 일..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삶.. 최명길과 김상헌의 그것들 중 어느 것이 더 중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허나 그들에게서 '저 시대는 결코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는 희망을 보았다. 제대로 된 보수와 진보.. 그리고 시대적 충성심..


조만간 남한산성을 또다시 찾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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