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영이의 책 파먹기
가끔 티브이, 혹은 온라인 채널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익살스러운 질문에 좌중을 웃게 만드는 스님의 재치 어린 대답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눈물 흘리는 누군가의 아픈 사연에도 얼핏 나무라는 듯 처방을 내려주는 스님이 좀 야속해 보일 때가 있었다.
인생수업이라는 책이 몇 년 전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고 한동안, 아니 요즘도 스님은 꽤나 바쁘게 강연을 다니시는 것 같다. 너무 많은 곳에서 스님의 강연 소식을 듣다 보니 '아니, 스님께서 종교활동은 어쩌시고 매일 강연만 다니시나..' 오해를 한 일도 있다. 혹시 급전이 필요하신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책을 읽다 알게 되었다. 강연하는 일은 법문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일로서 스님에게 너무도 즐거운 취미여서 돈을 받지 않고 강연을 하는 일이 많단다. 스님의 말마따나 내 기준으로, 내 눈이 보고 싶은 대로 딱 오해를 했다.. 싶다.
명절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서가에 꽂힌 이 <인생수업>을 발견했다.
사실 '하늘은 하늘이요, 땅은 땅이다' 싶게 당연한 소리를 하는 듯한 마음치유 서적은 읽고 나면 왠지 시간 낭비하는 느낌이 들곤 해서 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마음이 꽤나 복잡했나 보다 이 책으로 손이 뻗은 걸 보면..
당신은 행복합니까?, 생로병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사흘 슬퍼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픈 인연의 매듭을 풀다 등.. 인생의 고민 지점들을 놓고 스님의 조언이 책을 이룬다. 책의 반쯤 도그지어를 해 놓고 이따금 그어 놓은 밑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내 부모님은 이런 문구들을 마음에 새기셨구나.. 요새 이런 부분들 때문에 마음을 쓰셨구나.. 생각을 하니 괜스레 맘 한 구석이 저려오기도 했다.
목록을 쭉 훑어보다 마음을 훅 찌르는 장이 있다면 그곳을 먼저 펴 스님의 지혜를 얻는 방법도 좋다. 나의 경우엔 총 6개의 장 중 4장 아픈 인연의 매듭을 풀다에 가장 먼저 마음이 머물렀다.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기대서 외로운 것' 사실 우리가 바로 알지 못하는 진실이기도 하다. "내가 널 더 사랑해서 그래"라는 말은 사실 그 사람에게 사랑하기 때문에 더 깊은 관심의 범위에서 많은 것을 자신에게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것인지 모른다.
결국 이 장의 요는 이것이다. '남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나 자신의 마음'.. 비단 4장만 이런가? 그렇지 않다. 책 한 권을 통틀어 단 한 줄의 결론을 내리자면 그것 역시 '나의 문제'라는 것! '내 탓이오'하며 가슴을 치는 천주교 미사 의식이 떠오르는 걸 보니 역시 종교의 뿌리는 같은가 보다. 남에게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가르침에서..
오랜만에 애견을 무릎에 앉히고 눈이 오는 창밖을 바라다보며 한적한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앉아서 요즘 내 마음의 샘이 왜 이리 좁게 급경사를 이룰까.. 생각하니 '무조건 다 내가 해야 해'하는 생각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남들이 몇 년간 쌓아놓은 것을 한 번에 가지지 못해 안달했고, 행여 내 것을 뺏길까 불안한 마음에 휴대전화를 중독처럼 품에 안고 살았다.
가슴 한쪽에 까맣게 고여 썩은 물은 그들이 낸 상처라고 생각했지만 실상 그 물이 흐르지 않고 고이게 만든 것은 그 일을 되뇌고 또 되뇌어 흐르지 못하게 한 나 자신의 문제였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굽이굽이 진 그 물길의 발원지를 계속해서 따라 올라가니 천성, 성격이라는 내 마음속으로 이어지더라는 것..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문제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수 있게 변해가는 자신을 보면서 생각한다. 인생이란 답이 없고 계속해서 수양만이 필요한 수업과 같은 일이라고..
오랜만에 노트북과 휴대폰을 멀리 하고 눈 오는 흐린 오후를 쏟아지는 잠을 친구 삼아 늘어지게 보냈다. '아! 이게 뭐야 웬 시간낭비!'가 아닌 '참 잘 쉬었다. 눈이 참 이쁘게 오네'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