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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r 26. 2019

진정한 성공에 대해서

권력과 재력이 절대적인 성공의 기준은 아니죠.

"거기는 2인 1조가 되어 돌아야 할 것 같아요.."

"왜요?"

"대낮에도 너무 어둡고 후미져서.. 솔직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한 달 전부터 지역상권 살리기 프로젝트에 관련한 시간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글을 주업으로 하시는 분들은 너무도 잘 아시겠지만 명성이 알려지지 않은 다음에야 글쟁이 수입이 너무 뻔해서 사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때가 종종 있거든요.


우리가 조를 이뤄 하는 일은 현재 종이로만 유통되는 지역화폐를 곧 출시될 모바일 버전 사용을 앞두고 결제 어플을 설치하러 다니는 일이죠. 사실 40대 이하의, 혹은 모바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노년층이라면 설명서만 보고도 혼자서 설치가 가능한 일입니다. 시간 알바를 다니는 인력들도 단시간의 교육만 받은 채 다니는 사람들이지 결코 IT 쪽에 전문가들은 아니거든요. 지역 특성상 때로는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조차도 외지 못하는 고령의 어르신들이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직접 알바생들이 어플을 설치해드리러 다니는 것이지요.


며칠 전 OO시장을 돌아야 하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동 동선을 짜는데 그곳 지리에 밝은 조원 한 명이 말하더군요. 그곳은 2인 1조로 함께 도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목록에 있는 영업점을 찾아 헤매다 결국 혼자 시장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헉'소리가 날 정도로 시장 안은 어둡고, 후미지고, 냄새나고, 무서웠습니다. 시장 골목이 직선으로 정렬되지도 않았고 구불구불 이어진 길의 다음 모퉁이만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죠. 마약거래상이나 조직폭력배들이 등장하는 암울한 지하세계가 딱 그곳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가게를 찾다 그만 너무 무서워 다시 큰길로 나와야 했습니다.


저 역시 시장이 속해있는 OO시에 거주하는 시민입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OO시장의 겉모습을 수도 없이 보며 지나쳤죠. 겉모습이래 봤자 암울한 시장 내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저런 곳은 장사가 되려나?' 늘 그런 생각을 하며 그곳을 스쳐 지났던 것 같습니다. 막말로 냄새나고 불결하고.. 상인들도 대체로 초고령의 노인들이 많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카드 들이민다고 싫어하는 전통시장.. 참 무식하다..' 사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은 못 하겠네요.


그렇게 무시하던 곳으로, 무서워서 5분 이상 혼자 걷기가 두려운 곳으로 알바를 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참 괜한 시간만 허비하겠다.. 말귀나 제대로 알아들으려나..'

그곳을 늘 무시하던 시선으로 바라보던 저는 반 포기 상태로 가게를 찾으러 다시 시장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어디 찾으슈? 여기 골목이 복잡해서.. 말해보슈. 여긴 내가 다 아니까.."
용기를 가지고 다시 시장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좌판을 벌인 상인 한 분이 말을 건넵니다. 다행히 그분의 도움으로 지도 어플로도 잘 검색이 되지 않는 전통시장 작은 가게들의 위치를 단번에 파악합니다.


여기저기 설명을 하고 설치를 하다 한 생선집에 들렀습니다. 주인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 어플을 설치하는데 할머니께서 말을 걸어옵니다.

"다니다 보면 나같이 무식쟁이도 없지요?"

대뜸 들어온 생각지 못한 말에 무슨 대답을 해 드릴지 난감했죠.

"아니에요. 어르신.. 30대인 저도 핸드폰 결제는 어려워서 잘 못하는데요.. 그리고 다들 잘 몰라요. 어르신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식해서.. 하루에 몇만 원 팔지 못하지만 그래도 손님이 핸드폰 들고 와서 그거라도 한다고 하면 손님을 그냥 보낼 수가 없잖아.. 그래서 무식해서 몰라도 그냥 해요."

느닷없는 할머니의 고해성사에 괜스레 측은한 마음이 들어 더 다정하고 쉽게 설명을 드렸던 것 같아요. 요즘 휴대폰 결제시스템이 다른 세상 얘기처럼 낯설게 들리실 텐데도 손님 한 사람을 그냥 보내는 게 미안해서 본인이 불편함을 감수한다 하십니다.



생선가게를 나와 OO시장의 잡화점, 기름집 등을 돌며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 지역에 대한 편견을 점점 반성해야 했습니다. 고령의 상인들은 하나같이 딸처럼 손녀처럼.. 자신들을 위해 시간을 내서 일일이 걸음 하는 일바생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득한 곳을 겉으로만 보고 지나치며 그동안 저는 무슨 편견의 돌을 그들에게 던진 걸까요?


여전히 같은 알바를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OO치과를 방문했어요.

이 거래 시스템의 특성상 첫째는 무조건 사장님을 만나야 합니다. 치과도 예외는 아니죠.


그런데 사실 작은 병원이라 해도 원장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환자가 대기하는데 한가하게 지역화폐 설명이나 듣고 있을 시간은 없죠. 하는 수없이 간호사에게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시스템 특성상 원장님을 직접 만나야 하는데.. 병원은 사실 그게 쉽지도 않고.. 이런 곳은 저희가 방법을 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네요. 설치를 원하시면 그래도 제가 지금 도와드리겠습니다."


간호사가 진료실로 들어가 진료 중인 원장에게 메시지를 전합니다. 간간히 둘의 이야기가 조금씩 새어 나올 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밖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을 보낸 뒤 이윽고 밖으로 나온 간호사.. "원장님이 생각해보시고 전화드린데요"

안내서와 해당 지자체의 콜센터 번호를 알려주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하루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버스 안에서 지자체에서 해당 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혹시 OO치과에 가셔서 '시스템이 복잡하니 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셨나요?"


황당했습니다. 굳이 그 말을 할 거면 왜 힘들게 두 다리 발품 팔아 점포들을 돌아다니는 걸까요, 전화로 그런 소리 돌리고 손쉽게 일을 마치면 될 것을..


요는 이랬습니다.

제게 설명들은 간호사가 원장에게 전하고, 원장이 다음 타임 간호사에게 전달하면서 제가 하지도 않은 문장이 하나 만들어져 담당 공무원의 귀에 들어간 것이죠. 그러고는 사실 확인차 다시 치과에 전화를 건 제게 처음엔 대뜸 미안하단 말도 없이 본인 원장이 수요일 오후 1시 40분에 시간이 되니 그때 맞춰 오라는 말을 전합니다. 한 건이라도 더 올리려 영업하는 사람 대하듯.. 저희는 상인들에게 서비스를 판매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건당 수수료를 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단지 지역상권을 살리는 서비스를 홍보하고 노령의 어르신들을 도와 어플을 설치해드리는 업무가 주가 됩니다. 그렇게 헌신짝 대접을 받을 이유도 원인도 없지요. 어찌 보면 본인들이 지자체의 복지지원금을 받는 일을 도우러 다니는 고마운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참으로 재밌는 것은.. 대체로 돈 많은 고객들을 상대하는 고가 서비스 업종의 가게들, 소위 배운 사람이라고 하는 지식층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이런 경우들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또 하나의 편견을 만드는 일일지 모르나 근 한 달간 겪은 경험 속에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룰을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잘나서 내 권리가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그것만 쳐다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의 인격이나 기분을 철저하게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날아오는 자신의 공을 받으려고 남의 꽃밭을 함부로 짓밟는 그런 느낌이랄까요.. 

며칠 전 OO시장에서 만난 생선가게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내가 너무 무식해서.. 이렇게 와서 다 해주면 우리는 고맙지.. 미안해요. 여러 번 걸음 하게 해서.."


모르겠습니다.

누가 더 배운 사람인지..

누가 더 민주적인 이 땅에 상호존중의 개념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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