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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23. 2018

나의 속도대로 살고 싶다.

남의 기준에 나를 맞추는 일, 불행의 시작..

난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자그마치 13년 전, 우리는 모두 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었다. 더 잘나고 못나고 할 것 없이 한 회사에서 패기 있게 일하던 젊은 신입사원들.. 그때는 비슷한 속도로 나이를 먹고, 비슷한 모습으로 늙어갈 줄만 알았다.

13년을 돌아 만난 그때의 입사동기는 모 외국계 기업 과장 명함을 내게 내밀었고, 또 다른 동기는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이렇다 할 거창한 명함 한 장도, 번듯한 가정도 꾸리지 못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닌 듯 여겨졌다. 그들의 속도가 정상궤도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한참 뒤떨어진 불량품에 불과할지 모른다.


"야, 너는 자유로워서 참 좋겠다. 마음껏 여행도 하고 감성 차오르면 글 쓰면 되고"


맞는 말이다. 현재 나는 참 자유롭고, 그런 삶을 오래도록 갈망하다 10년 간의 '사회부적응 미아 생활'을 결국 청산했다. 그런데도 은근히 배알이 꼴리는 이유는 뭘까..


"부러워? 너도 할 수 있어. 매달 손에 들어와야 하는 월급만 포기하면 당장이라도.."


가볍게 던진 농담을 왜 당황스러운 다큐 버전으로 받느냐는 표정이 역력한 이전 입사동기는 자신이 어쩔 수 없이 매달 벌어야 하는 월급 활용도를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는 소비를 조금 더 선호하는 것이고, 나는 자유를 조금 더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선호하는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른 것뿐이다.


그렇게 인정해 버리면 될 것을 잠시나마 뾰족하게 날이 섰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아직 가고자 하는 길로 오르기엔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최저생계비를 겨우 버는 소득 수준에 열등감을 느낀 것인지, 많은 것을 손에서 놓고 내 심장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지만 불안과 우울은 끝까지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아직은 다소 느린 그 속도를 패배로 인식하는 마음 시스템이 나의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간 모두 집으로 돌아갈 텐데, 누구나 자기한테 맞는 시간이 있잖아..

 

마을 도서관 원화 전시를 취재하다가 이탈리아 작가 엠마누엘레 베르토시의 동화 <나비가 되고 싶어>를 만났다. 평소 예쁘고 화려한 나비를 동경하던 소녀는 꿈에서 나비가 되어 많은 곤충들을 만난다. 나비로 변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려 달팽이에게 다가가 '너는 왜 이렇게 느릿느릿 기어 다니냐'라고 묻는다. 소녀의 속도에선 느릿한 달팽이가 참 답답해 보였을 테니까.. 달팽이가 이렇게 대답한다. '언젠가는 모두 집으로 돌아갈 텐데, 누구나 자기한테 맞는 시간이 있다'라고.. 오히려 팔랑거리며 빨리 날아다니는 소녀에게 '너는 왜 그렇게 빨리 날아다니냐'라고 반문한다.


누구나 자기한테 맞는 시간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20대 후반엔 결혼을 하고, 30대엔 사회의 주역으로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모범적으로 짜인 일과표처럼 '이 시기엔 이래야지'하고 사회가 정해놓은 인생의 시간표.. 그 속도에 맞춰 사는 10년 동안 행복했던 기억이 많지 않다. '일반적 사회인'보다 박자가 다소 느렸던 나는 그들의 속도를 따라 사는 동안 늘 지쳤고, '나는 왜 사는가?'에 관한 질문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행복'을 따로 생각할 여유도 많지 않았다.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행복'이라는 단어가 삶의 목표처럼 특별히 인식되는 현대인들을 보면 아마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내 속도대로 살고 있지 않은 이유로 말이다.


비어 가는 통장잔고를 보며 고민했다. 다시 사회로 돌아가 9to6의 직장인으로 살 것인지(9 to 6도 힘든 요즘이지만..), 그래도 버텨가며 꿈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매달릴 것인지.. 그러나 난 여전히 천천히 걷는 오후 4시가 좋고, 단출한 찬이 전부인 밥상을 천천히 음미하는 게 좋다. 감성이 끌어오를 땐 자다가도 일어나 뭔가를 적어내는 내 열정이 아직 맘에 든다. 조금은 느리게 걷지만 나도 내 집을 향해 가고 있다.



언젠간 모두 집으로 돌아갈 텐데, 각자의 속도대로 컨디션을 유지하며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느리게 걷는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며 음미할 자유도 얻을 수 있으니 그렇게 손해 보는 인생 장사는 아닐지 모른다.


다음 입사동기 모임엔 당당하게 참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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