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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21. 2018

꿈을 가진 존재

단, 꿈을 위한 꿈은 되지 않을 것..

3년 전, 꿈으로 유명한 강연자의 파티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다. 

연말을 맞아 심신과 영혼이 피폐 헤진 신청자들을 열 명 정도 모아놓고 힐링 파티를 진행한 것. 나이도 사연도 제각각인 신청자들과 사진, 메이크업, 음악 등의 전문가들이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뒤섞여 복작복작 시간이 흘러갔다.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그 강연자는 당시 내게 산처럼 보이는 큰 존재였다. 어린 시절과 꿈에 대한 그의 생각을 담은 저서를 보고는 더욱 열광하는 팬이 되었다. 그 사람처럼 행동하고 싶었고, 그 사람처럼 유명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파티를 다녀온 후부터 그 강연자를 향하던 선망의 마음이 반감하기 시작했다. 


"제가 화장품 다 가져오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렇게 가만 계시면 어떻게 해요. 따라 하셔야지.."


앞에서 열심히 메이크업 시연을 하고 있는 전문가를 멍하니 바라만 보던 참가자들은 강연자의 말에 안절부절못하였다. 전문가의 화장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엔 가지고 온 화장품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거니와 그들은 평소 자신을 치장하는 메이크업이란 세계에 발을 들여본 적이 없는 듯했다. 저마다 다른 아픔으로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참가자들에게 동일한 처방전을 쥐어주는 강연자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모든 이의 아픔에 객관적인 참견을 하기에 30대 중반이란 나이는 아직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물론 생각의 체계와 깊이가 나이와 비례하여 성숙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며 느끼는 건,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사람일지라도 그 상황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건 딱 그 연륜만큼 쌓인 내면의 도구들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깨어있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내면의 도구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정교해진다. 따라서 같은 고난의 상황을 받아들였을 때에도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 통증을 X-ray로 촬영하던 것이 MRI로 업그레이드된 상황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도구들이 반짝반짝 더욱 윤이 나도록 가꾸는 것은 노력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덜그럭 소리를 내며 구식 기계로 전락하고 마니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요는 이것이다. 그가 말하는 꿈, 막막한 현실에서 나를 숨 쉬게 하는 꿈, 없다고 하면 왠지 나태해 보이는 꿈, 그래서 실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울지라도 홍보용으로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꿈..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더구나 현실 속 볼품없이 쭈그러진 나를 올곧게 세워줄 가능성이 있는 그 꿈에 코칭이란 칼질을 감히 들이댄다는 데, 두 번 생각하면 나와 일면식도 없었던,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란 존재가 자신의 불완전한 경험으로 내려주는 처방전인 그 코칭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지.. 사주단자를 밀어 넣고 적어도 몇 분 대화를 나눈 명리학자의 이야기에 더욱 신뢰가 갈 것이란 생각이 끼쳐온다. 



꿈이 없어 고민이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요즘이다.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 곁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불안감과 박탈감.. 그러나 이 또한 두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당신은 꿈이 없는 삭막한 삶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력으로 대변되는 현실 속 자신이 도태될까 두려운 것일지 모른다. 당신이 가져야만 한다는 그 꿈은 더 나은 직업, 경제적, 권력의 수단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꿈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존재할 때 아름답다. 치열하게 경쟁해야 살아남는 현실에서 우리는 늘 무언가가 되기 위해 살아왔다. 대기업의 사원이 되어야 이름이 생기고 타인의 머리 위에 군림해야 존재감을 느끼는 삶의 방식.. 그런 삶은 우리에게 목적과 꿈을 혼동시켰다. 당신의 꿈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눈치 보지 않아야 한다. '최소한 밥 굶지 않고 글을 쓰고 싶다' '죽기 전에 누군가로부터 용서받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사랑하는 이와 정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그딴 게 무슨 꿈이냐 할 것들부터 아주 멀고 원대한 목표까지..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알고, 그런 나를 위해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고 탄생시킨, 혹은 일상의 소소한 작은 기쁨들을 위한 이벤트까지 오로지 주인공인 내가 만들어 낸 나를 위한 계획들.. '꿈'이란 거창한 단어에 짓눌려 숨 쉬지 못하는 진짜 나의 꿈들..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출발부터가 강박이다. 

하루하루 경험을 통해 흘러가는 것,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그저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나의 의지가 반영된 '나아감'이다.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꿈들이 다리 놓아 흐르는 변화..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명료하게 보이는 간판을 걸면 찾아가기 조금은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꿈에 의해 어딘가로 늘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지점에서 겪었던 레퍼토리를 수 년째 반복하며 꿈을 이야기하는 강연자들.. 그것은 단지 그들의 삶이다. 그들 나름의 꿈을 위한 과정.. 잘 한 것을 손뼉 쳐주고 조금의 영감을 얻었다면 충분하다. 


나의 꿈이 합당하냐고 남에게 묻지 마라. 나의 꿈은 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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