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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l 12. 2018

내면의 '들개'를 깨워라

나는 진정 무엇을 원하는가..

가급적이면 아주 오랫동안, 최소한 원하던 소설을 탄생시킬 때까지 사회와 절대 타협하지 말라는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버려진 폐건물에 몰래 잠입해 근근이 생활을 이어나가며 치명적인 소설 한 편을 구상하는 그녀.. 고작 스물넷의 어린 여자는 폐건물이 무너져 차라리 생을 마쳤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브라질로 이민을 떠난 외삼촌이 유일한 가족이었던 그녀는 대학을 자퇴하고 지니고 있던 책을 팔아 차마 끊을 수 없는 모진 삶을 버텨나간다. 


'그녀가 갑자기 내 우산 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고전적이고 지루한 표현처럼 그런 그녀의 삶에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찾아들었다. 언어유희로 가득 찬 그녀의 수첩을 주웠다는 핑계를 대며 접근한 그.. 그림을 전공한 그는 현실에서 상업적인 그림 그리기에 지쳤고, 이혼으로 빈손이 되며 사회적인 삶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갔다. 


'예술'이라는 공통 지점에서 그렇게 두 세계가 만났다.  



고고한 예술가 그녀, 현실과 타협해 살아온 그..


어쩌면 이 캐릭터 둘은 작가 이외수의 내면을 둘로 나눈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팔아 삶을 연명하고, 줄어가는 책을 보며 압박을 느끼지만 결코 그녀와 상관없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겠다 다짐한 고고한 예술가의 모습. 그러나 때때로 현실이란 굴레 속에서 챗바퀴를 돌려야 살아갈 수 있는 잔인한 삶의 규칙들.. 

작가는 수시로 이 두 모습을 오가며 많은 고뇌 속을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길에서 걸어온 두 캐릭터는 만남의 지점에서 서로의 위치를 바꾼다.


그가 그리는 '들개' 그림에 완전히 매료된 그녀는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작품의 완성을 돕는다. 본인의 글을 완성하기 전까지 절대 현실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던 그녀는 그의 물감을 사고, 그림을 완성하려는 그를 돕기 위해 현실에 발을 딛는다. 남자들에게 몸을 내주면서도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적 없던 그녀는 들개를 그리며 점점 야생의 들개를 닮아가는 그를 사랑하게 된다. 둘의 접점에서 그녀는 점차 현실의 영역으로, 그는 점차 사회와 격리된 예술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사람들은 모두 인생의 목표를 앞에 두고 나아가면서 상황에 최적화된 자신을 만들어 나간다. 오직 그 자신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한계선들을 마음에 그어 놓고 그것을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천국을 희열 하고 지옥에 몸서리친다. 남들에겐 그 빌어먹을 예술이 그들에겐 한계선이었다. 그것을 떠나는 순간 그들의 인생은 먹고,  자고, 싸는 것 이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라고나 할까..


배고플수록 눈이 더 빛나는 들개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


그는 다시 만난 고고한 예술세계 속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들개를 커다란 캔버스에 탄생시켜 나간다. 털끝 하나에서도 야생의 감촉이 묻어나는 리얼한 작품을 위해 자신을 골방 안에 가둬버린다. 말린 쥐고기를 씹고, 그 안에서 배설을 해결하면서 하루 일과가 온통 그림으로 가득 차도록.. 작가 이외수도 그랬다. 극한의 고통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비극을 문학으로 써내려 갔다. 


현실과 격리된 얼마 간은 체내에 누적된 현실을 게워내느라 힘없이 비적 거리지만, 그것들을 다 게워내고 나면 눈빛은 더 빛나고 날 것 그대로의 본능이 깨어난다. 그의 작품을 위해 사다 놓은 개 한 마리가 점차 들개의 모습으로 변해가듯 그 역시 현실의 자신을 모두 벗어내고 손톱만큼의 다른 여지없는 예술가가 되어갔다. 더 이상 걸작에 대한 확신이 없을 만큼, 걸작과 수반되는 고통을 한 번 더 감당할 자신이 없을 만큼,  아주 처절하고 절절하게 모든 것을 다 내어놓고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 현실에서 점점 멀어지던 그는 결국 자신의 별로 돌아가 버렸다. 


한 가지를 맹목적으로 쫒기엔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다른 대체 수단이 돈을 쥐고 유혹하는 현실 속에서 어쩌면 너무도 무모해 보이는 그.. 그러나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단 한순간이라도 '들개'의 본성을 되찾으려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러면서 세상이 너무 가혹하다 말하고 있지는 않은지..



어쨌든 현실로 걸어 나오며 그를 통해 위대한 예술을 완성한 그녀..


얼룩진 그녀 인생을 집대성할 거대한 무언가를 쓰고 싶었다. 그렇게 탄생할 작품은 그녀의 아픈 기억들을 모두 치유해 줄 힘이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맘처럼 진행되지 않는 글 기둥을 부여잡고 그녀는 그렇게 현실과 멀어져 갔다. 인생의 희망이 되어줄 그 등대 불빛을 그의 그림을 통해 보게 된 어느 날.. 그녀는 그림의 완성을 목표로 부정하던 현실로 걸어 나왔다. 현실 속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끔찍한 사랑의 상실도 알게 되었다.  


이쯤이면 그녀 안에는 문학으로 녹여낼 많은 이야기들이 찰랑거리고 있지 않을까.. 


나와는 상관없다 늘 도망치고 싶었던 세계.. 그 세계 또한 예술의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인 것을.. 예술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져야 하는 감성과 감정들이 그 세계에서 태어나고 완성되는 것을..  그녀는 어렴풋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고 있는 사이 건물이 붕괴되어 조용히 생을 마감하길 원했던 그녀.. 그러나 어느 날 그녀는 두려움을 느꼈다. 진짜 건물이 무너져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면 어떡하지.. 

그녀의 문학은 그 힘으로 진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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