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없는 영 May 16. 2019

결코 당연하지 않은 행복

나의 젊음을 기억해 주세요.

이혼을 실행으로 옮기면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금전적인 현실도, 외로움도 아니었습니다.

제 가슴속을 안타까움으로 채웠던 것은 바로
나의 빛나는 젊은 날을 기억하는 역사가 사라진다는 것이었지요.

22살 대학생 때 만나 6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30대 중반에 각자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아함이나 세련미는 조금 떨어졌겠지만 젊다 못해 어린, 에너지로 가득한 그 앳된 시절을 모두 그와 함께 보낸 것이지요. 자연히 그는 20대 초반의 어리숙한 제 모습부터 30대가 되며 우아함을 더해가는 성숙미까지 여성으로서 저의 모든 아름다움을, 외적으로 가장 빛나던 순간을 기억하는 역사책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들어 그렇지 않아도 하나 둘 늘어가는 새치가 신경 쓰이는 마당에 밤새 잘못 누워 잤는지 한쪽 팔자주름이 눌려 깊게 파였습니다. 어릴 때라면 금방 탄력적으로 회복이 되지만 이젠 정말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 오전에 일이 있어 급하게 화장을 할 때까지 그 주름은 좀체 회복될 생각을 하지 않더군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30대 후반 들어 급격히 무너져 가는 젊음이 신경 쓰이고 있는 차, 그래도 아직 이런 나라도 여기서부터 기억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으련만.. 세월은 무심하게 계속 흘러간다는 것.. 저의 젊음도 모래성처럼 점점 더 무너져 내리겠지요. 뒤늦게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그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내 젊음이 그이의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많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당신 참 예뻤는데, 나 만나서 고생 많이 했어.."



물론 '예쁘다'는 것이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년에도, 노년에도 그만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있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저 더 욕심내서 정말 저의 배우자가 노년에 기억할 수 있는 저의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이 그의 기억에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터라 그 아쉬움이 더 큰 것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누군가와 "내가 마흔까지 혼자면 너랑 결혼한다" 장난처럼 약속이라도 해둘 걸 그랬나 봅니다. 마흔이 이제 정말 반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아직 이 모습이라도 담아줄 누군가가 곁에 없습니다. 내 나이 마흔이면 사랑하지만 원수 같은 남편과 올망졸망한 아이들로 가정을 꾸릴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강아지 한 마리를 벗 삼아 이야기를 주고받고 힘들었던 하루를 혼자 곱씹으며 잠자리에 들죠. 어린 날 이런 내 마흔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정말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모험인 것 같습니다.


그 옛날 제 역사책은 어디엔가 버려져 있겠죠. 혹은 다시 리셋되어 누군가의 기억으로 가득해졌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군가가 젊은 날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늘 지금의 내가 가장 맘에 든다고 말하던 나인데 오늘만큼은 20대, 젖살 빵빵하던 어린 날의 나를 만나고 싶습니다. 막 세수를 마치고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둘러 쓰고 나오면 이전의 그는 그런 저를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삶은 달걀 같다고 하면서.. 세수를 마친 오늘의 저는 눈두덩이 푹 꺼진 채 거울 속에 서 있네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잠시 잠깐의 세월이 참 야속합니다.


아이들에게 '엄마'소리 듣고 원수 같지만 살 비며 잠들 수 있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거.. 결코 평범하지 않은 위대한 기적인 것 같습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면.. 당신의 역사책 소중히 간직하시길요. 당신의 그 원수 같은 역사책이 부러운 1인입니다.   

이전 14화 희망의 고치 안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