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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pr 03. 2019

정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들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거부한 철없는 영의 성장 이야기

퇴마의식을 치르듯 방바닥에 모로 누운 몸뚱이가 찢어지는 비명 속에 방향을 잃고 휘둘리다 여기저기 부딪힙니다. 곧 질식해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꼈죠. 제발 이제 그만 나를 가만히 뒀으면 좋겠는데 귀를 뚫고 들어와 심장에 난도질을 해대는 그의 말은 멈출 줄을 모릅니다. 


"니가 하는 행동이 지금 정상이라고 생각해? 니가 한 말과 행동을 돌아봐!"


네, 아침에 눈을 떠 회사를 가고, 퇴근을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저녁을 보내는 소위 평범한(평범하리만치 무난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하나.. 일반적으로 큰 걱정 없이 정상궤도를 걷고 있는 삶을 말하자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나는 좀 많이 특이한 삶을 살고 이따금씩 자주 마음이 아픈 사람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심리상담을 받았고.. 최근엔 힘겨워 찾아간 신경정신과에서 우울증을 진단받고 약의 힘으로 잠이 들곤 합니다. 


마음의 감기로부터 시작해 의지로 극복이 가능한 병, 호르몬 이상으로 개인의 노력과 무관해 반드시 병원을 거쳐야 하는 병.. 누구나 걸리는 이 마음의 감기가 유전적인 영향도 있다 하고, 나라별 인종의 선천적인 특징이 원인이 된다고도 합니다. 꼭 처해진 환경이 불행해서가 아니라 사실 태어날 때부터 유전자에, 운명에 따라 우울증행 당첨권이 예약되어 있다는 것이죠.



이야기가 삼천포로 잠시 빠졌습니다. 어쨌든.. 소위 평범한 궤도를 걷고 있을 당시엔 나도 내가 분노조절에 실패한 영혼이 몸뚱이의 본능적 반항에 그대로 무너져버릴지 예상하지 못했죠. 나는 그게 아니라는데, 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데, 내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에 대해 잠시만 역지사지를 느껴달라는데 "아니야, 넌 아파! 넌 치료를 받아야 해!" 그와 나 사이에 가로 놓인 보이지 않는 벽에 나의 처절한 외침들은 그대로 반사되어 다시 나의 귀를 찢고 들어와 심장을 난도질합니다. 


치덕치덕 피를 흘리던 심장이 그대로 멎을 것 같아 이번엔 맨바닥에 그대로 이마를 세차게 찧어봅니다. 이렇게 하면 정신을 놓지는 않겠지 하면서요. 몇 차례의 거친 타격에 가르마가 시작되는 윗 이마가 붉게 물들어 옵니다. 시각과 청각과.. 어쨌든 머리에 붙은 모든 감각이 잠시 마비가 되는 순간 그의 차가운 한마디가 깜빡이며 꺼져가는 청각을 잡아 일으켜 깨웁니다. 


"왜 저래? 초딩이야?"


그러게요..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좋은 일은 쉽게 사람의 몸에 체화되지 않지만 나쁜 일은 어찌나 쉽고 빠르게 사람의 몸에 스미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들은 그 몸의 주인이 뇌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까짓, 그럴 수 있지..'  쿨하게 털어버렸다 생각한 일들이 나도 모르게 몸속 어딘가에 저장되기도 하고, '그일.. 이제 다 잊었어..' 생각한 일들이 유사한 상황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 방어기제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의 모습은 때론 향락과 쾌락에 눈멀어 나를 짓밟아 버린 누군가의 모습과도 비슷했고, 결혼을 운운하며 없는 돈에 엄마 집을 사줘야 한다던 또 누군가의 모습과 가까이 닮아 있었습니다. 내 몸에 스민 그 나쁜 기억들이 유사한 상황을 만나자 이성을 마비시켰죠. 그의 말대로 난 그와 싸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누군가와 다투고, 또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서러워 눈물을 흘렸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 

거기에 서서 이건 네 모습이 아니야, 너는 아파, 너는 치료받아야 해..라고 말하는 당신..

나의 아픈 그 모습을 보듬는 얼굴을 하고 서서 나의 그 못난 아이를 채찍질하고 난도질하는 당신의 그 오만함은 나의 몸 어딘가에 또 어떤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을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피 흘리는 이 날 선 싸움은 내 몸 어딘가에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만들어 내고 있겠죠.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세상으로 난 창을 하나 더 닫고 커튼을 드리우고 싶습니다. 


어두운 방안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 생각합니다.

정말 내가 이상한 걸까요? 내가 정상이 아닌 걸까요?



누구나 각자의 기준과 생각으로 이 잘난 세상을 살아갑니다. 이타적인 사람들도 종국에는 모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죠. 그런 존재가 어찌 타인의 생각을, 행동을,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있는 걸까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인데 말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그러던데.."

"대한민국 정서가 그렇잖아.."

나의 비이성적임을 정의 내려버린 그의 이유는 이런 것들과도 줄이 닿아 있습니다.


괜한 고민을 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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